사람들은 ‘무슨 날’을 왜 챙기는 걸까? 아마도 기억하고 싶어서 일게다.
좋으면 좋은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끄집어내는 기억들이 내일을 위한 오늘의 기록이라 여기기 때문일 게다.
오늘을 위한 과거의 기록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나도 그랬다.
날마다 뜨는 해고, 해마다 오는 달력의 그날이지만 그 설렘과 마음가짐을 떠올리고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일을 위한 오늘의 기록으로 과거를 기억했다. 결․혼․기․념․일.
아침상을 차렸다.
상추, 쑥갓, 셀러리. 들깨머위탕. 두릅 순 무침. 곤포무침. 묵무침 따위로 결혼기념일 아침상을 차렸다.

아침 일찍 텃밭에 나가 채소 걷어 들이며 명륜당 은행나무 밑, 사모관대 불편하고 어색하던 신랑을 떠올렸다.
원삼 족두리 차림으로 합환주에 입만 대었다 때는 신부를 보고 집례를 맡은 진행자가 “합환주는 다 마셔야 백년해로 한다”고 놀렸었지. 그 말에 신부는 억지로 못 먹는 술 인상 쓰며 마셨었지. ‘5백년 되었다’는 은행나무 밑 여기저기 앉아 구경하던 어른들 신부의 술 곤욕이 재미난 듯 깔깔 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곤욕을 치르는 신부가 안타까우셨는지 “아가! 시늉만 해도 되는 것이다. 다 안 마셔도 돼야!” 큰어머니 외치셨다. 들깨가루 얹어 머위탕 끓이니 5월의 그 웃음소리 들리더라.
미역 무치듯 초고추장 만들어 곤포 무쳐내고 그 양푼에 두릅 향 물씬 풍기는 두릅 순도 조물조물 무쳤다. 베란다 화분에 심어둔 실파 얼른 꺾어다 양념간장 만들었다. 어제 밤 미리 쒀둔 도토리 묵 담긴 접시 위에 뿌렸다.





물에 불려 싹 띄운 현미에 메밀, 깐 밤을 넣고 지은 밥까지 퍼내니 제법 상차림 모양이 나온다.
신랑이 먼저 입장하고 신부를 건네받는 결혼식이 싫었었다. ‘신랑신부 손잡고 동시 입장할까.’ 생각했지만 가뜩이나 말 많은데 ‘별난 결혼식’한다는 소리 보태기 싫었다. 그래서 찾아낸 게 전통혼례였다. 집안 어른들이고 친구들이고 볼거리 있고 한가한 야외 결혼식이라고 모두 흡족해 했지만 정작 우리 둘은 후회했었다. 우선 옷이 너무 불편했다. 그냥 한복만 입는 것이 아니더라. 또 웬 절은 그렇게 많이 하는지……. 게다가 여자는 남자의 두 배수 절을 한다는 걸 몰랐었다. 좀 평등해보자는 시도가 제대로 폭탄 맞은 격이었다.
이다음에, 나는 딸아이 건네주는 결혼식도 싫지만 ‘음양이치 어쩌고.’하며 두 배 절하는 결혼식 풍경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딸! 넌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에 선물도 없냐?”는 물음에 축하 노래 불러주고 ‘커피 타오고 설거지 한다.’하더니. 설거지는 결국 내가 했다.
“언제 이렇게 준비했어. 잘 먹었어요.” 하기에
“마음 있으면 다 해, 시간 없어 못하진 않아.” 심상하게 대꾸했지만 기분은 좋더라.

스스로 차린 아침상 양가 부모님 빈자리가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