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심란해 일산 시장통을 구석구석 훑고 다녔어요.
저는 무수리과라 돈을 쓰기보다는 시장에 가거나 빨래를 해서 푸는 스타일이예요.
보통은 다니는 길목만 훑고 지나는데 그날은 그냥 하염없이 구석구석 다녀봤어요.
17년전,
일산에 처음 이사오던 날,...아, 그때는 강촌마을 밖에 없었는데 버스도 903번 한대만
다녔고 병원도 목욕탕도 제과점도 슈퍼조차 없던 그때
이사온 첫날, 철물점 찾으러 간 곳이 일산시장이었어요.
그때는 규모가 괭장히 컸어요. 거기서 밥먹고 못이랑 망치, 호스 같은 것 사왔었죠.
그 무렵 일산신도시 주민들은
극장, 수퍼, 병원, 제과점 같은 문화시설(?)을 이용하려면
구일산이나 원당, 능곡까지 가야했어요...
저 그때 큰애 임신했는데 병원이 없어 신촌까지 다녔잖아요...
요즘도 장이 서면 일산시장에 나가보긴하는데...시장이 너무 작아졌어요.
아파트랑 학교 짓고, 도로 넓히느라...그것보다는 대형마트들이 큰 원인이겠지만요. 5일장이 서는 날은 그나마
봐줄만 한데 자꾸만 축소되는 장을 보면서 웬지모를 서운함이 밀려오곤합니다.
제가 일산시장에 가는 이유는
순대국밥집(여기 무지 유명하고 맛있어요), 그 앞에 족발집(일산에서 제일 맛있는데 테이블 없고 포장, 배달만 되요) 두 곳때문이라 다른 골목은 잘 안가보거든요.
오랜만에 시장통을 돌아다니는데 너무 재미있는거예요.
보세,수입,명품이라고 쓰여진 가게.....어디가면 그런 디자인의 옷과 신발, 가방을 떼오는지 묻고싶을만큼
70년대를 연상시키는 물건들이 가득 찬게....혼자 배꼽이 빠지게 웃었답니다.
옷가게엔 우리 대학때 입었던 딱 그 스타일의 청바지들이 걸려있고...아 맞아...우리때는 바지가 다 저런
모양이었어...하며 웃고....
대포집에선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젓가락 장단에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그것도 한참 훔쳐봤답니다...오리지날 금은방도 보이고 촌스런 색의 떡이 가득한 떡집들하며....

제가 작년에 우리 할머니 물국수에 대해 포스팅한 적이 있지요.
그때 국수집 얘기를 썼었는데...많은 분들이 국수집을 알고계셔서 기뻤어요.
성황당에 헝겊 매달은 모양으로 국수가 줄줄 걸린 국수집,
사실 저는 초등학교 이후로
그런 국수집을 본 기억이 없어요.
국수심부름 징그러웠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터놓고 곱씹을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이 됐구요....
아...뭐....옛날 기억은 다 아름다워요. 당시엔 싫었을지라도...저는 그래요.
그 시장통에 이런게 다 보이더랍니다.

바로 이 모양으로....

그때는 신문지였는데 암튼 종이포장까지.

흙미, 쑥, 백년초, 단호박, 흰국수..다섯칼라 세트가 6500원...비싸죠...
한 칼라가 2인분이래요.
2개 사려고했는데 한개밖에 없다고 해서 그건 선물할거라 백년초랑 쑥 작은걸로 하나씩 더 샀구요.
칼라마다 맛이 다르냐고 물었더니
아저씨 대답이 걸작이예요...다 똑같아, 칡냉면이랑 일반 냉면 맛구분이 되나, 색만 다른거지
요즘 유행이라 이렇게 만들기는 하는데, 난 당췌 이유를 모르겠어....ㅋㅋ
아마도 김동완이 나왔던 슬픔이여 안녕의 국수 효과 아닐까요..
시켜먹으려고 알아보니 택배비는 무조건 5,000원이랍니다....택배같은 것 귀찮고
와서 사먹으래요....헐...
가는국수는 물론 칼국수, 우동, 모밀국수까지 건면, 생면 다 있더군요. 우동생면 짜장면 하면 맛있다고 함.
이걸 다 만드세요? 하니까 그럼 국수집에서 공장 물건 갖다파냐고 성을 내시네요...
우동생면을 사려고 했는데 보존기간이 냉장 3일이라고 해서 포기했어요...
아직은 제 다리가 성치 않은 관계로 요리도 자제하려구요.
손국수가 그리운 일산 사시는 분들, 한 번 가보세요.
아이들 체험학습 시켜줘도 좋을 것 같아요. 저처럼 늙어서도 그 기억이 남을테고...
이 집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잖아요....
이번 주말엔 국수 한 번 삶아볼래요.
기계국수보다 얼마나 맛있는지 비교해보게요...
ps. 이거 핸폰 사진인데 괜찮죠. 핸폰사진 컴으로 옮기는 거 못해서
애들 졸라 겨우겨우 옮겼는데...가르쳐달라니까 엄만 못배운다고 됐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