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김포에 모시고, 집에 돌아와 정신을 차려 보니 곳곳에 갓 떠난 엄마의 흔적들이 남아 북받치는 감정들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허망하게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냉동실 문을 열어 보고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주저 앉아 피가
마르도록 눈물을 쏟았죠. 냉동실 한편에는 홈쇼핑 사골 곰국이 켜켜이 쌓여있었어요. 조미료도 안쓰시는 엄마가
왜 홈쇼핑에서 곰국을 사셨을까요...

원래 곰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엄마가 해주시던 그 뽀얀 사골 곰국이 그리워, 지난 주말 과감히 도전해
보기로 했어요. 사골과 꼬리반골, 그리고 사태를 6시간 동안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줬어요.
엄마의 사골 우려내는 솜씨와 정성은 가히 일품이었죠. 남편 수술하고 나서 한번, 그리고 그해 겨울,
그렇게 두번에 걸쳐 엄마는 사골과 꼬리를 우려내어 1회분씩 비닐 봉투에 담아 얼려서 손수 집으로 가져다
주셨어요. 덜그럭 거리는 싱크대와 욕조도 세면대도 없는, 낡은 연립주택이 딸의 신혼집이라는 걸 속상해
하시던 엄마는 마지막으로 짐을 들여놓아주신 후로는 저희 집에 들어오시지 않았죠. 가파른 비탈길을
운전해 오셔선 반찬이며 뭐며, 건네시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집을 한번 훑어 보시곤 그냥 돌아가시곤 했어요.
얼른 둘이 돈 모아서 버젓한 아파트로 이사가라고, 그때 오븐도 사주고, 소파도 사주겠다고 하시던 엄마...
엄마 돌아가시고 1년 반만에 정말 이사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요... 당시 이삿짐 센터 사장님이 저의 사연을
아시고는 직접 오셔서 엄마가 장만해주신 혼수품들에 흠가지 않도록 일일히 다 살펴 주셨답니다.
세상에 참 마음 따뜻하고, 고마운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팔팔 끓여(이걸 보통 물에 튀긴다고 하죠), 끓인 물은 버리고, 뼈와 들통을 깨끗이 씻어
기름기를 제거해줘요.
정말 아기 속살처럼 뽀얗게 우려낸 진한 엄마표 곰국에는 고기도 알맞게 들어 있어, 그대로 냄비에 끓여서 파와
소금을 넣어 먹으면 일급 식당 설렁탕도 부럽지 않았어요. 3일 동안 쉬지 않고 우려내었다고 하셨죠.

깨끗이 씻은 뼈에 양파, 마늘, 대파를 넣어 끓여줘요. 사태도 이때 넣어주구요.
아빠가 혈압이 높아 특별히 오빠나 동생이 몸이 안좋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 우리 집은 사골을 잘 안먹어요.
그래서 그랬던 거죠... 당신을 위해서 3,4일씩 정성 들이는 건 안내키고, 그림 그리시느라 기력은 딸리시고,
그래서... 홈쇼핑에서 주문해 드셨던 거예요. 얼마나 힘드셨으면... 전시회 준비를 위해 그려놓은 엄마의
유작에는 남자도 그리기 힘들다는 400호 짜리도 세점이나 있었어요. 가시는 순간까지 그림에 모든 혼을 다
쏟아 부으셨던 엄마...

6시간 우려낸 사골. 야채들은 쉽게 무르기 때문에 두어 시간 후에는 건져내야 해요. 사태도 그때 건졌어야
하는데, 그냥 나뒀더니 야들야들. 뭐 그닥 나쁘진 않았어요. 그러나 국물이 생각보다 뽀얗게 우러나지 않네요.
뭐가 문제일까요?
그렇게 예술혼을 불사르는 동안 엄마는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몰랐어요. 항상 나만 보면 웃으시고, 내가 울때
눈물 닦아 주시던 엄마가 몸도, 마음도 그토록 병들어 있었다는 걸... 눈치 채지도 못했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죠.
내가 웃으면 엄마도 행복하리라고, 나만 편안하면 엄만 건강히 오래도록 내 곁을 지켜주실 거라고, 그렇게
엄마의 행복은 내 삶 속에 딸려오는 부속물 정도로 생각했던 거예요. 이 불효를 어찌할까요... 결혼 후
우여곡절이 많아 1년 동안 단 하루도 날 생각하며 눈물 마르지 않은 날이 없었던 엄마...

처음 우려낸 건 다른 통에 담아 이렇게 차가운 곳에 두고 식혀요. 반나절 정도 식혀줘야 해요. 베란다가
없으니 참 불편해요. 저거 식히느라 거실 난방도 다 끄고 오돌오돌 떨었죠.

뼈에 붙은 살들을 다 발라내고 다시 한번 깨끗이 씻은 후,

다시 물을 가득 부어 두번째 끓여줘요.

사태와 발라낸 고기들. 제법 많죠.

사태와 뼈에 붙어 있던 고기들을 분리해서 각각 고기 양념을 해줬어요. 사태는 고명으로 쓸 거라 좀 강하게
하고, 반골은 국물 안에 넣어 얼릴 거라 약하게 해줬어요.

사태는 쭉쭉 찢어서 이렇게 펴서 냉동실에 얼려놨다가 떡국 같은 거 먹을 때 고명으로 쓰려구요.
둘밖에 없으니 재료를 조금씩 사도 항상 남아요. 그래서 고기류, 생선류, 밀가루류.. 이렇게 분리해서 넣어두지
않으면 항상 산 거 또 사고, 버리고를 반복한답니다.

센불(뼈가 들썩일 정도의 화력이어야 한다더군요. 82cook을 수차례 검색해 보고나서야 원인을 찾았어요.)에
계속 끓이다 보면 물이 금방 금방 졸아들어요. 1~2시간에 한번씩 저렇게 옆에 물을 팔팔 끓여 졸아든 만큼
보충해줬어요. 토요일 아침에 시작해서 월요일 아침 출근 전까지 내내 그렇게 했죠. 1시간 30분 간격으로 알람
맞춰 놓고 하느라 이틀 밤을 거의 꼬박 샜어요.

처음 끓인 사골 곰국이 차갑게 식으면 이렇게 하얀 기름이 떠요.

기름을 깨끗이 걷어줘요.

두번째 끓인 곰국과 함께 다른 용기에 담아 둬요. 중간 중간 깨끗이 씻고, 기름을 걷어내며 끓여줘서 두번째
끓인 곰국에서는 기름이 별로 나오지 않더라구요.

세번째 끓고 있는 곰국. 이제 뽀얗게 국물이 제대로 우러나오기 시작해요. (82cook 고수님들, 감사합니다~)
전 이쯤해서 첫번째, 두번째 끓인 곰국을 조금씩 넣어 함께 끓여줬어요. 첫번째, 두번째 곰국 색깔이 영 시원치
않아서요.

완성품. 정말 제대로 우린 사골 곰국이죠. 히유우... 정말 힘들었어요. 뽀얗게 우러난 국물을 보는 순간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 나더라구요. 엄마 닮아서 눈물이 너무 많아요.

1회 먹을 분량 만큼 담아서 고기까지 넣어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놨어요.
우리 엄마, 하늘 나라에서 이거 보고 든든 하시겠죠?

소면 삶고, 대파 총총 썰어 곰국 한 그릇.

따끈하게 한 그릇 먹으면 겨울 추위 끄덕 없죠.
남편은 소면 삶아서 먹기 귀찮을 것 같아 당면을 불린 후 살짝 데쳐서 1인분씩 포장해 냉동실에 얼려놨어요.
국물 끓기 시작할 때 언채로 넣어도 금방 풀려요. 대파도 총총 썰어 밀폐 용기에 넣어 냉장고에 넣어두구요.
아까 전화 왔더라구요. 아침 겸 점심으로 곰국 뎁혀서, 뜨끈하게 먹고 여의도로 출발한다구요.
날이 많이 추워서 걱정 했는데, 미리 사골 곰국이라도 끓여 놓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오늘부터 언론 노조 파업 돌입이네요. 하필 이렇게 추운 날...
남편 뿐 아니라 모든 분들께 따끈한 곰국이라도 배달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엄마의 그림에는 늘 따뜻한 희망이 묻어나요. 이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나면 틀림없이 봄이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