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참 못해본 게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실조차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물론 빈부나 결핍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정상적인 가정환경의 아이들이 경험하고 겪고
부모로부터 지도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란 아이였습니다.
결핍된 가정의 아이들에겐 그나마 탈출구는 ‘공부’ 하나였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결핍된 가정이라는 낙인에서 제외 되었고,
부모도 당연히 어느 정도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타고난 기본적인 지능과 성실성, 잔꾀를 부리지 않는 성품 등은
아이를 모범생으로 만들기 흡족한 조건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과외는 별난 아이들이나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아이가 뭔가 부족하거나 부모가 뭔가 비정상적으로 열의에 차있거나)
학원도 전무한데다가 특별한 과외활동도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오로지
본인 하나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부잣집 아이들과 동등한 학력을 소유할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상위권성적이라는 자부심에, 내가 평범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갖춰야할 이런저런 요소들을 갖추지 못한 결핍된 인간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10대 청소년기를 지나, 20대 광란의 기를 지나, 30대를 거의 다 지났을
무렵에 와서야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인생의 반 토박을 결핍상태에서 보낸 후였습니다.
인간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 데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
전혀 위대하지 않고 대단하지 않은 그런 사소한 수많은 기술들을 터득해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생의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삶을 윤택하게 하며, 위대한 사람이나 평범한 사람이나 다 갖춰야할
미덕이라는 것을 깨달았었습니다.
먹고, 치우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가꾸고, 생각하고, 만들고, 참여하는 것들…….

결핍된 환경의 아이들은 오히려 패스트푸드에 열광하며, 평범한 것들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들은 평범한 것들은 초라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화려하고 돈을 들여 얻어야만 좋은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직접 집에서 만든 빵보다 제과점에서 사온 브랜드 있는 빵이 더 고급이며,
영양가도 많고 자신을 초라하게 하지 않는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진 수제 물건보다는,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을
더 신뢰하고 라벨을 단 브랜드제품을 더 신용합니다.
나 역시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간혹 제과점 빵이 아닌 엄마가 만들어준 찐빵을 자랑하는 아이가 부러웠습니다.

나는 밥이 어떻게 내 입으로 들어오는지를 몰랐습니다.
물론 돈벌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나 수고로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참여해보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고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뭇 남성들이 부엌과 거리를 두는 가정교육을 받은 탓으로
가사일이란 저절로 알아서 굴러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가사 일을 경험하지 못하고,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지 못해서
그 즐거움을 모른다면 그것은
삶의 절반의 즐거움을 잃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생의 전반부를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피부로 깨닫게 되었으니,
내가 뒤늦게 이렇게 내적쿠데타를 일으키는 이유를 조금은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젓가락을 쓰면 손가락의 미세근육이 발달하여, 아주 섬세한 일들도 능히 잘해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근육발달은 줄기세포같은 최첨단연구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인류역사를
뒤바꾸느냐 마느냐의 엄청난 결과까지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어릴 적 부모와 함께 김치를 담그고, 콩을 거두고, 화초를 기르고, 고구마를 구워먹고
집안을 장식하고 가구를 만들고 꽃을 꽂고 하는 이 사소한 일은,
두뇌의 미세한 세포를 발달케 해서 삶을 보다 풍요롭고 기름지게 만들게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강요로 배운 피아노가 성장해서 뭇 음악에 대한 이해와 호감으로 발달하고,
엄마를 미워하며 함께 해야 했던 살림살이는 마누라의 귀가를 기다릴 필요 없이
먹고 싶은 요리를 스스로 하게하고 가족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게 합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그러한 근육발달의 기회를 놓친 아이는 평생 엉성한 젓가락질밖에
할 수 없게 되고, 미세한 근육이 발달한 아이가 누릴 기회와 행복을 영영 같이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화려하고 멋진 장래를 주고픈 욕심에, 자신이 사소하게 여기는
작은 젓가락질 교육 따위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피아노나 바이올린 교습, 미술공부나 영어 학습이 자녀의 장래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행여나 가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 질색을 하기도 하고,
그런 사소한 일에 동참시키거나 반드시 참여해야할 일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아이는 일어나면 부모가 차려놓은 밥상에서 밥을 먹되, 그것이 어디서 구했으며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몸에 이로운지를 궁금해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가장 유용하고 중요한 것은 오직 원하는 직업을 얻을 수 있는 학력을 획득하는 것,
즉 성적 뿐입니다.
성적을 위해 공부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인 것입니다.
부모의 그런 생각은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해져서 아이는 공부 외에 다른 일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도,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인생의 절반에 와있습니다.
나는 이제야 내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그렇게 만들어 먹을 시간에 좀더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먹는 건 대강 사먹는 게 낫지 않냐고…….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를 해주는 즐거움보다도 내 자신에게 해주는 즐거움이 더 큽니다.
누구도 내게 그렇게 해주지 않았는데, 이제 나 자신이라도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싶습니다.
사골의 핏물을 우려내고 몇 번에 걸쳐서 고아서 뽀얀 국물을 얻어서,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주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해줬다면 그것을 통해 배우고 익혀서 즐거움을 알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남은 절반마저 즐거움을 잃고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사소한 일들을 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하루 종일 사소한 주부의 일들을 합니다.

부엌에서 몇 시간이고 헤어 나오질 못하고 무청을 삶고 묶고 널고,
무를 썰어 무말랭이를 만들고 채반에 널어 말립니다.
수확한 고구마를 이용해 고구마가루를 만들어 김장에 넣을 계획도 짜보고,
사태를 삶고 싸게 산 계란을 삶아 장조림을 만들어 하나 가득 통에 담았습니다.
내년에 감자 수확할 때까지 먹을 감자 칩을 만들려고 감자를 씻어 껍질을 벗겨
채를 썰어 삶아 널어 말립니다.
이제는 마른 채소로 가득한 냉동실과 수확한 토란, 고구마, 감자로
가득한 뒷베란다를 보면서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는 살림을 삽니다.

누구는, 돈만 많으면 편하게 이것저것 맛난 것만 사먹을 거라고 합니다.
그게 훨씬 시간낭비도 없고 다양한 음식도 맛보고 효율적이며 돈도 적게 든다고 합니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이미 거쳤어야할 그 수많은 것들을 이제 하는 것일 뿐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쿠키를 구워주고, 먹고 싶다는 음식을 만들어줍니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해야 하기 때문도 아니고, 오직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자신,
나를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발달되지 않았던 온몸의 미세세포들이, 미세신경들이 하나하나
천천히 살아나는 것을 느낍니다.
최소한 이십 년 동안 받지 않았던 그 교육을 이제 다시 스스로 독학으로 터득해가며
몇 년내에 마스터하려니 한심하면서도 답답하지만, 나는 지금 이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이 소박하고 사소하며,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하면서도 초라한 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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