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난히 날이 차고 비까지 추적거리던 며칠전 오후, 두부를 만들었죠.
지난 해 시골서 얻어다 놓은 서리태..밥에다 두어먹고 가끔 콩자반이나 해먹으니 도통 줄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그걸로 만들었으니 검은콩 두부죠.
만들고 나니 두부는 회색이 되었는데, 색이 우중충해서 그런가, 큰아이는 지레 쳐다만 보곤 통 입에 대려고 하질 않았지만요..아무리 똑같은 두부라고 말해 주어도 말이죠..
아이야 아이라서 그렇다 치고, 사실은 집에서 만든 두부는 정말 맛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밥 한술 안뜨고 그냥 먹어치울수 있을 만큼..
저는 시골에서 자라본적이 없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 모여 맷돌로 콩을 갈고, 큰 가마솥에서 펄펄 김이 솟아오르면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추위를 삭히고, 뭐 이런 추억 같은것은 없습니다만(이런건 주로 <6시 내고향> 같은데서 보는거고..),
그저 창밖의 하늘은 시커먼 구름으로 가득차고 비까지 추적거리는 음산한 날,
실내에서는 온 집안에 구수한 콩삶는 냄새가 가득차고, 유리창에 모락모락 김이 서리고,
그리고 가스불 덕분에 온기가 느껴지고, 그런 것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따사로운 뭔지 시골스런 정취 같은 기분이 들지요.
어렸을때, 11월 어느날쯤엔 꼭 비가 오는 날이 있었습니다. 가을비는 내리는 족족 기온이 뚝뚝 떨어져 버리는데다, 가로수의 남은 낙엽을 온통 떨어뜨려버려서 길은 또 엄청 지저분해 지고...하여간 어찌나 기분이 울적한지요.
그런날이면 학교가기는 정말 죽기보다 싫었는데, 학교 갈때 이미 발은 다 빠져 버려서 하루 종일 축축한 양말을 신고 있는데다, 우산이 미쳐 커버하지 못한 가방이랑 어깨까지 다 젖어 버리면, 그 우울한 기분으로 하루를 지내는 괴로움이란 참 말로 못할 것이었거든요.
그렇게 힘들게 하루를 견디다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는 거실 가운데 있던 석유난로 위에 스텐 공기를 얹고 우유를 데워 주셨었지요. 그러면 저는 난로 옆에 쪼그리고 앉아 따뜻한 우유 위로 단백질이 응고되어 얇은 막이 형성되는 것을 신기한듯 쳐다 보곤했었지요.
따뜻한 우유로 몸을 녹이고 나면 온 집안에 펴져 있던 난로위의 보리차 끓는 냄새를 비로소 깨닫게 되고, 그때 느끼는 뭐랄까, 아, 살았다, 드디어 집에 왔구나, 하던 기분이랄까...무작정 평온하고 안락하던 그런 느낌...
뭐 주저리주저리 썼습니다만, 하여간에 부엌에서 두부를 만들면 곧잘 콩 삶는 냄새에 취해서는 이런저런 옛생각이 나곤 합니다.

두부를 만든 날은 그저 다른 반찬 없이 두부 김치 해서 먹는것이 최고죠.
김치가 아주 맛있게 시어져서, 그 맛이 이루 말할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곁들인것은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
두부김치가 있으니 찌개에는 쫄깃거리는 맛이 있으라고 두부 대신 흰떡을 썰어 넣어 끓였지요.
그저 소박하고 단순한,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집밥'이라는건 뭐 이런 것인지도....

두부를 만들고 나면 언제나 그 엄청난 양의 비지가 문젭니다.
콩비지도 그냥 불린 콩 삶아 간것이 맛이 있지, 이렇게 두부 빼고 나면 참 맛이 없어요.
이건 비지 찌개를 해먹어도 절대 인기가 없고,
주로 계란 조금 풀고 갖은 야채를 다져 넣어 전을 부쳐 먹곤 하는데, 기름진 것을 싫어하는 남편이 썩 달가와 하지 않아 이것도 많이씩을 안해먹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써서 블루베리 머핀에 넣어봤더니 고소하고 괜찮더라구요.(머핀 레시피는 여러가지 다 해봤지만 뭐니뭐니 해도 마샤 아줌마 레시피가 최고로 맛있어요.)

그래서 그 다음엔 식빵 반죽에도 넣어보고..
옥수수 식빵 레시피에서 옥수수가루 대신 콩비지를 넣었지요.
(아주 그냥 넣지는 않고.. 물기 때문에... 마른 팬에 살짝 볶아서 수분을 날린후 넣었어요. 넓은 접시에 펴서 전자렌지에 돌려 주어도 될것 같아요. 아참, 글루텐 가루도 한티스푼 모자를 만큼인지, 대충 반 작은술 쯤 더 넣었네요.)

아이 간식 주려고 뜨거운 것을 썰었더니 단면이 고르지는 않지만...폭신한 질감이 느껴지시는지요??
김이 모락 모락 나는 갓구운 식빵은 언제나 참 맛있어요.
두부뺀 콩비지로 한것이 뭔 맛이겠나, 했는데 은그히 구수한 맛이 더 있네요.

식은 다음에는 예쁘게 썰어서 딸기잼을 발라 먹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남은 비지 모두 해결.
날이 추워지니까 앞으로 두부를 자주 해먹어야 겠어요. 남은 콩도 아직 넉넉하겠다...
(참, 두부 만드는 법은 제가 아주아주 옛날 고리쩍에 82에 올렸던 것을 고대로 퍼 올리겠습니다.
http://www.82cook.com/zb41/zboard.php?id=kit&page=3&sn1=&divpage=3&sn=on&ss=o...
요새 소이러브 쓰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마는, 저야 뭐 그냥 아날로그식으로 그냥저냥 해 먹습니다. 그것도 자주하다보니 별로 어려운것은 모르겠어요.
미리 말씀 드리자며는, 간수 구하는 것은 소이러브 파는데서 구할수 있다고 하네요. 아니면은 제가 옛날 고리쩍에 올린 위의 글에서 처럼 식초를 조금 넣어 만들수도 있구요..
저는 시댁에서 얻어다 써서리 간수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시면 할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