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통 앓았습니다.
마음도 아팠지만, 물리적으로도 몸이 정말 많이 아팠어요.
스스로 독감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요...
수유 때문에 약도 독하게 못쓰고, 애들 돌봐가며 아파야 하니 낫는 것도 더디더군요.
그래도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은 건 지금 생각해도 참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에요.
그렇다고 뭐 아프기만 했겠어요?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있고,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것이 우주의 원리...
뭐 그렇게 꼬아서 얘기하냐고요?
네네,
제가 한 방에 이해시켜 드리지요...
지난번 포스팅에 흑임자죽을 사다 올렸더랬죠.
아프기도 했지만, 그걸로 작은 아이 저녁도 편하게 때우자는 속셈이었는데...
뒷처리는 생각 못했어...ㅠㅠ
울고 싶은 건 나라규...ㅠㅠ
제 옷을 비롯하여 부엌 바닥과 싱크대와 식탁 다리 등등
둘째 녀석 손 닿는 거의 모든 곳에 흑임자 범벅
이럴 줄 알았으면 티 안 나게 잣죽 사올껄...ㅠㅠ
거의 2주를 앓았는데, 주말이 피크였어요.
고열과 기침, 몸살, 오한에 멘붕이 쓰나미로 밀려오더군요.
몸은 힘들었지만,
덕분에 남편이 차려주는 삼시 세끼를 편안히 받았지요.
일요일 점심쯤에는 밥만 먹기 질리지 않냐며...
스파게티를 뙇!!!
샐러드에 발사믹 드레싱을 뙇!!!
수제는 물론 아니고요...-,.-;
스파게티는 병에 들은 거, 드레싱도 완제품.
샐러드도 세척되서 나오는 거...
남편이랑 첫째랑 둘이 마트에 갔는데 음식은 거의 완제품으로 집어오고요.
지들 장난감만 레어로 사왔더군요.
소리 지르려는데 기침이 뙇!!!
에휴...
제가 주둥이 수준만 쓸데없이 높아가지고
그 동안 병에 들어있는 소스는 폄하했거든요.
근데, 먹어보니 괜찮데요~
(사실 코 박고 먹다가 급 깨닫고 사진 남김)
다음부턴 하나씩 사보려고요.
독한 감기 덕에 편견 하나를 날렸읍지요.
남자 둘만 마트에 보내면 안 된다는 교훈도 물론!
몸은 점점 나아가는데 무기력하고 허한 마음이 가시지 않더군요.
그래서 치유 할 겸 힐링캠프 문재인 편을 틀었어요.
그건 뭐랄까 모범 답안을 보는 그런 느낌?
뒤이어서 박근혜 편도 보구요.
이건 뭐랄까 오답 노트를 만드는 그런 기분?
동시대를 저렇게 다르게 살 수도 있구나 싶기도 하고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내가 모여 내일의 무엇이 되는구나.
그런 깨달음도...
아파서 골골하던 어느 날,
큰 아이 유치원에서 무순 씨앗을 보내왔어요.
가정에서 하는 과학 탐구 활동 중에 하나였는데,
하룻밤 사이에 싹이 덧니처럼 삐죽 튀어나온 거에요.
그러더니 이틀 만에 여기저기서 쑥쑥~
아, 정말 너무 신기하더라구요.
안 될 놈은 안 된다더니...
아직도 씨앗 그대로인 녀석들도 보이고.
이걸 보고 굉장히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이만하길 다행이야.
잘 했잖아.
열심히 싹 틔우고,
불량 씨앗은 걸러내고 그렇게 하다보면 점점 나아지겠지.
반보라도 앞으로 나아간 게 어디야... 싶은...
그쵸? ^^
저는 요리를 따로 배운 적이 없어요.
무슨 무슨 동네 요리 선생님은 고사하고,
문화센타 하나 등록한 적 없는 근본 없는 아해인데요.
근본이 없는 덕에 제약 없이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
여기에 레스토랑에 혼자 칼질하러 가는 것을 꺼리지 않는 무신경함과
블로그나 언론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강인함 덕에
제 나름의 미각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좋은 스승이 좋은 가르침을 주시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꼭 좋은 제자가 탄생하지는 않더라구요.
배우려는 자세만 있으면 도처에 널린 것이 스승...
뭘 그렇게 거창하게 얘기하냐고요?
이걸 만든 얘기를 하려고요.
이건 "어묵볶음국수"라는 건데,
제가 이 레시피를 어디서 봤냐면요.
아따맘마라는 애니메이션 아시죠?
그거 보고 따라해봤어요. ㅋㅋ
큰 애랑 같이 아따맘마를 보는데 만화 마지막에
아따맘마 쿠킹스튜디오라고 요리 소개를 하거든요.
어이없는 것도 진짜 많아서 그냥 재미로 보는데
이 날은 재료랑 조리법이 간단해서 한번 따라해봤어요.
원 레시피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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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볶음국수
재료(4인분)
생면 4봉
숙주나물 1봉
초밥식초 4큰술
뜨거운 물 8큰술
어묵 4개
말린 미역 12g
참기름 4작은술
1. 뜨거운 물 8큰술에 말린 미역 12g을 불린다.
2. 참기름으로 달군 후라이팬에 잘게 썬 어묵과 숙주나물을 볶는다.
3. 부드럽게 숨이 죽기 시작하면 생면과 불려뒀던 미역을 통째로 넣고 다시 볶는다.
4. 다 익으면 접시에 담는다.
5. 초밥식초로 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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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식초는 '최경숙의 일본요리'에 나오는 비율 사용
(식초3큰술, 설탕 2큰술, 소금 1/2큰술)
사실 재료별 중량은 맛에 큰 영향이 없어요.
어쨌거나
재료 단순하고 조리법도 간단해서 좋더라구요.
들이는 품에 비해 맛도 괜찮고요.
근데 막연히 생면이라고 되어 있어서 칼국수 생면을 썼는데 그게 좀 에러...
밀가루 전분이 나와서 초의 상큼한 맛을 텁텁하게 흐리더라구요.
느낌상 라멘에 들어가는 생면이 라이트하게 잘 맞을 것 같아요...
그게 안 된다면 차라리 우동면을 쓰는 게 좋겠어요.
아따맘마에게 요리를 배우다니...
정말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역시나 스승은 도처에 있었다.
그걸 깨닫지 못할 뿐!
공부 못하는 애들이 참고서 욕심 내는 것처럼
요리 못하는 주제에 재료 욕심이 좀...ㅋㅋ
제가 이맘때 갈무리 하는 게 있는데요.
어부현종님께 주문하는...
문어~
이거 다리 하나씩 잘라서 냉동에 넣어뒀다가요.
불 쓰기 싫은 여름에 하나씩 꺼내서 먹으면 쫭입니다요!
처음에는 작은 거 샀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주문하는 kg이 자꾸는다는...ㅋㅋ
초고추장에 찍어먹어도 좋지만,
좀 다르게 먹고 싶은 날도 있잖아요?
봄이라 그런지 새콤한 게 땡기기도 하고...
그래서 만들어 본~
"문어오이초회"
레시피는 최경숙의 일본 요리에 나오는 걸 따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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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냉동 피문어(자숙문어) 100g
오이 2개
채썬 생강 1/2톨
소스
식초2큰술
설탕 1, 1/2큰술
소금 1/2작은술
다시마국물 1큰술 (물 5컵, 다시마 10cm)
1. 오이 절이기
연한 소금물(물 2와 1/2컵, 소금 1큰술)에 15분 담갔다가 건져 거즈에 싸서 물기를 짜고 냉장고에 넣어 차게 준비
2. 문어 썰고, 생강은 곱게 채썰어 물에 헹궈 건진다.
3. 재료를 소스에 버무린다.
tip: 폰즈에 사용하는 물은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맹물이 아닌 다시마국물을 써야 깊은 맛이 난다.
초회 재료는 문어, 굴, 멍게 등 해산물과 미역, 오이 등을 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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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어려운 건 없는데요.
오이 썰기가 좀 특이해요.
한번 보세요.
먼저 오이를 이렇게 1~2m 간격으로 비스듬하게 칼집을 내요.
칼날은 오이 반 정도 들어갈 깊이로
그리고 180도 뒤집어요.
그냥 뒤로 후딱 뒤집으면 됩니다.
그리고 세로로 잔 칼집을 넣어줍니다.
칼집을 넣어주면서 1cm 정도 간격으로 잘라요.
그리고 절여줍니다.
단순히 모양 때문에 그렇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칼집 넣은 게 식감이 훨씬 풍부하더라구요.
뭐랄까 아삭하면서도 풍성한 느낌?
물론 칼집 덕에 양념도 고루 잘 스며들고요...
냉장고에 하루 뒀다가 먹었는데 큰 변화 없었습니다.
오이도 절인 거고 문어도 자체적으로 간이 있으니까요.
원 레시피에는 생강채를 올리는데 저는 없어서 안 넣었거든요.
그래도 큰 지장은 없었고요.
(넣었어도 보나마나 생강채는 빼면서 먹었을 듯;;;)
다음에는 불린 미역을 넣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제 저녁에 어묵볶음국수랑 같이 먹었는데
초밥식초 비율이 비슷해서 그런지 튀지 않고 둘이 잘 어울렸어요.
이건 제가 요즘 자주 해먹는
"미나리초무침"인데요.
'최경숙의 매일반찬 요리'에서 보고 따라했어요.
원 레시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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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미나리200g
배 100g
노란 파프리카 30g
슬라이스 햄 30g
양념
다진 마늘 1/4 작은술
고운 고춧가루 1작은술
설탕 1작은술
소금 2/3작은술
통깨 1/2큰술
후춧가루 약간
꿀 1큰술
2배식초 1작은술
식초 1큰술
물 1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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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법은 별 다를 것 없어요.
미나리만 다듬고 잘라서 끓는 물에 소금 약간 넣고 슬쩍 데쳐 놓고요.
(햄도 미나리 데친 물에 슬쩍 데칩니다)
그리고 나머지 재료들 채쳐서 양념에 무치면 되요.
저희집은 배를 별로 안 좋아해서
반찬으로 소비하려고 시도했는데 너무 좋아요~
샐러드 같기도 하고, 반찬 같기도 하고...
근데 원 레시피대로 하면 저는 약간 단 것 같아서 설탕이나 꿀의 양을 좀 줄여서 하거든요.
그건 입맛에 맞게 적절히 가감하시고요.
재료 크게 구애 받지 마시고,
저는 그냥 막 나박 썰기해서 무치기도 하거든요.
비엔나 소시지 넣을 때도 있고...
그래도 아무 상관 없고요.
이 앙념이 전천후로 괜찮은 것 같아요.^^
근데 저... 저작권 엄청 중시하는 녀잔데...
요리책 레시피는 어디까지, 어떻게, 공개해야 하는 건가요?
기준 아시는 부~운?
주말에 계속 아팠고...
아프다 보니 집이 엉망이고...
지난 주에는 몸이 괜찮아져서 청소를 했는데,
큰 애한테 미안해서 저녁에 슬렁슬렁 수족관 나들이
일요일이라도 오후 5시쯤 가니까 붐비지 않고 좋더군요.
아플 때는 별로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입맛만 쓰더니
수족관에서 어느샌가 '이 녀석 몇 인분이나 나올까' 가늠하고 있더라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옆에 있는 노량진 수산시장 갈껄...ㅠㅠ
오랜 기간 병상에 있던 분이 그런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회복기 환자의 마음으로 살라"고...
아플 때는 뭘 생각하거나 감상할 여유가 없었는데,
회복기에 접어드니 늘 보던 것들도 조금씩 달리 보이고,
바람과 햇살도 이전과 달라진 느낌.
고작 감기 하나에도 이런데 큰 병을 이겨내신 분들은 어떻겠어요.
막상 얘기를 하고 나니 부끄러운 마음이 가시지를 않네요. 헤헤;;;;;
배우려는 마음만 있으면 스승은 참 많은 곳에 널려 계시더군요.
4.11도 그럴 거에요.
스승이 선자의 모습을 할 때도 있지만,
악당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그걸 잊지 않으면 되요.
좀 호되게 배웠다고 생각하면 되죠.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분 울적한 사람들과 만나서
같이 욕하고 울기라도 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는데,
기분이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 기쁘고 즐겁게 만나고 싶어요!
물론, 절대 잊지는 않습니다. : )
p.s: 멘붕 회복 기념 번개합니다.
자세한 소식은
http://www.82cook.com/entiz/read.php?bn=9&cn=&num=1252390&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