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밥도 할 줄 모르는 채로 시집왔어요. 그런데 하필 엄청난 집으로 시집을 와 버렸네요.......
우리 집은 종가는 아니지만 큰집인 데다 아버지 형제는 8남매. 명절 때면 한옥 마당에 솥을 여러 개 걸어놓고 하루종일 음식을 하는 집이었어요. 전 종류만 열댓 가지, 생선도 조기, 청어, 가자미는 기본이고 그외 두어 가지 종류별로 댓마리씩 굽고, 나물은 삼색도 아닌 칠색나물을 올리고, 닭고기, 쇠고기, 돼지고기 요리를 다 하고, 떡에 식혜, 유과까지 사지 않고 직접 다 만들었답니다. 손님은 또 어찌나 많은지 마루는 물론 방마다 바글바글.... 그분들 밥상차리고 치우고, 과일상, 찻상, 술상 내고, 가실 때 한꾸러미씩 음식 들려보내고.....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 음식 천재였습니다. 못다루는 식재료가 없고 맛없는 음식이 없었죠. 같은 반찬도 요번엔 이렇게, 다음번에 양념을 살짝 바꿔 저렇게, 다음 번에는 또다르게 색다른 방법으로, 맛나게도 만들어내셨어요.
이런 집 맏며느리로 한 십년을 보내고 나니, 밥도 할 줄 모르던 처녀는 장금이가 되고, 밥집을 차려 가계도 잘 꾸려내었습니다. 어느새 예순을 넘긴 엄마는 식당을 접고 대신 일주일에 두어번 아는 아주머니네 식당에 일하러 나갔더랬죠. 무려 메인 요리, 그 식당 간판에 박힌 음식 담당에, 밑반찬 종류도 잘 만들어내는 만능 주방 아주머니(^^)...... 가끔 단골손님께 팁도 받았네요. 이제는 바깥일은 그만두고 가족을 위한 요리만 하십니다.
엄마가 요리하는 걸 보면 엄청 빠른 속도로 뚝딱뚝딱 금새 만듭니다. 양념 계량, 그까이거 없고요, 일단 양념 종류 자체가 아주~~ 심플합니다. 육수도 복잡하게 안 뽑고 그냥 맹물 넣을 때도 많아요. 그런데도 엄청 맛있어요. 물론 한가지씩 엄마만의 '비법'이라는 건 있어요. 비법이라기엔 별거 아닌 듯도 하고, 맛의 포인트인 듯도 한, 살짝 엉성한 방법이긴 한데....이 비법을 그냥 흘려 버리기 너무 아까워서, 제가 엄마의 솜씨를 이어받을 실력은 안 되고, 그저 기록해 놓기라도 하렵니다.
그 첫번 요리가 바로 이 '소고기국'인데요. 여기서는 경상도식 쇠고기국이라고도 하던데, 저희 집에서는 그냥 '소고기국'이라고 불러요. 보통 쇠고기국은 무우와 쇠고기로 맑게 끓이지만, 엄마는 고추가루를 넣어 얼큰하게 끓이고요, 무 외에도 채소를 좀더 넣어서 건더기가 푸짐해요. 육개장 같은 느낌도 나고요.
먼저 국거리 쇠고기를 냄비에 넣고 참기름에 달달 볶아요.
무는 나박나박 썰고요.
쇠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무를 넣고 같이 볶아요. 냄비 바닥에 들러붙을 수도 있는데요 그냥 맹물을 조금 넣고 수저로 벅벅 긁어요.
좀더 볶다가 또 그냥 맹물을 부어서 국물을 잡아요. 사실 그냥 맹물은 아니고요, 옆에 다른 냄비에서 물을 끓이다가 그 끓는 물을 부어 준다는 거가 '비법1' 입니다. 찬물을 붓는 것보다 금방 다시 끓어오르고, 국물맛도 차게 식었다 다시 끓는 거보다 더 좋대요.
국물이 끓을 동안 채소를 썰어줍니다. 파는 저렇게 길게 반 갈라 준비합니다. 굵은 것은 3-4등분 정도. 파를 엄청 많이, 정말정말 많이 넣어요. 그런데 많이 넣어야 맛이 좋아요. 파는 저 상태로 그냥 넣어도 되고 끓는 물에 슬쩍 데쳐 넣어도 됩니다.
콩나물도 다듬었어요. 꼬리는 있는 게 좋고 머리는 떼면 깔끔해 보이는데 그냥 둬도 상관없어요. 원래는 숙주나물을 넣어야 보드라운데 이날은 시장에 숙주나물이 똑 떨어져서 할 수 없이 콩나물로....
고사리도 파랑 비슷한 길이로 뚝뚝 잘라놓아요. 저 고사리는 시골장에서 말려놓은 걸 사다가 불려서 삶아 놓았던 거예요.
이렇게 채소를 한 데 담아 놓고.... 고사리와 콩나물 밑에 파가 수북이 깔려 있어요. 여기에 버섯, 호박, 토란대, 우거지 등등 그때그때 집에 있는 채소를 추가해요.
국이 끓으면 콩나물을 우선 넣고 끓이는데요, 이제는 콩나물이 익을 때까지 계속 뚜껑을 닫아놓든지, 아니면 계속 열어놓아야 해요. 열었다 닫았다 하면 콩나물 비린내가 납니다.
고사리와 파도 다 쓸어 넣고 푹~~~ 끓입니다.
이제 '비법2'입니다. 양념은 국간장에 다진 마늘, 고추가루, 소금 쬐끔, 그리고 후추로 끝인데요. 아... 정말 씸플한 양념입니다. 그런데, 끓고 있는 국냄비에 직접 양념을 넣으면 고추가루며 마늘이 겉돌고 간도 맞추기 힘들다고 해요. 양념을 따로 그릇에 섞어서 고추가루를 불려서 넣는 게 훨씬 더 얼큰하고 맛있대요. 단, 이때는 맹물을 넣는 게 아니고요, 채소까지 넣고 끓고 있는 냄비에서 국물을 조금 덜어서 거기에 고추가루 양념을 불리는 게 뽀인트입니다.
잘 끓고 있는 국에다 양념을 후루룩 다 넣고... 또 푸욱~~~ 끓입니다.
제가 푸욱~~~ 끓이면 파 색깔이 푸르죽죽... 시커멓게 변하더만....... 엄마가 끓이니 새파란 색이 그대롭니다. 거참 이건 무슨 비법인지...
맛있게 끓여진 울엄마표 소고기국... 저희 집에서는 약간 슴슴하게 끓여서 신김치 잘게 썬 거랑 국수양념장 같은 거 조금 넣어서 먹어요. 비가 오거나 으슬으슬 감기기운 있을 때 밥 말아서 먹으면 기운이 불끈 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