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모습을 보려드리는 것과 그리고 뭔가 맛있는 음식을 해다 드리는 것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쟁반국수였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여름이면 곧잘 해먹는 쟁반국수, 언제가 친정에 갔을 때 쟁반국수 해먹었다고 하니까,
아버지께서 "나도 해달라"고 하셨는데..
그후 몇해가 지나도, 말로만 "그럴게요.그럴게요"하면서 실천에는 옮기지 못했습니다.
제 가슴에 얹혀있던 것 같은 쟁반국수...어제서야 겨우 해다 드렸습니다.

집에서 채소 전부 썰고, 닭다리만 삶아서 살을 발라내 양념장에 무치고, 배도 좀 썰고,
국수는 삶아가면 퍼질까봐 병원에서 국수를 삶으려고 파스타 냄비와 마른 국수를 준비하고,
그리고 쟁반국수를 볼품있게 담을 수 있는 커다란 접시까지 바리바리 싸가지고 갔습니다.
(아버지 병실 바로 앞이 가족들을 위한 조리장인데..아주 시설이 훌륭합니다.^^)
어제의 쟁반국수, 결론부터 말하자면...절반쯤의 성공?!...양념장의 비율이 기막히게 좋았으나..문제는 고춧가루 였습니다.
누군가가 "정성껏 말린 태양초"라며 준 고춧가루...
너무나 매워서...요즘 고춧가루를 넣어야하는 저희 집 음식에 다소 문제가 있었습니다.
차라리 친정어머니가 주셨던 고운 고춧가루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과일즙을 많이 넣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주 많이 매웠어요.
맵다 맵다하시면서도 그래도 커다란 접시의 쟁반국수를 모두 비워내는 아버지, 아주 흐뭇했습니다.
(오늘 안 매운 고춧가루 사다가 매운 고춧가루랑 섞었습니다, 다시 한번 더 해다 드려야죠. ^^)
채소도 넉넉했고, 국수도 넉넉하게 삶아서, 아버지랑 같은 병실을 쓰시는 다른 환자와 환자가족께도 쟁반국수를 드리고 나서,
병실에서 이야기 꽃이 피었습니다.
주제는 딸!
먼저 우리 아버지께서, "나는 우리 딸만 무서운 줄 알았는데...앞 집 큰 따님도 만만치 않네요..."
뭐, 이러면서 시작했습니다.
내용은 집집마다 딸들이 주로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한다..뭐 이런 거였습니다.
저희 집도 보면, 오빠나 남동생은 아버지께 싫은 소리 절대로 안합니다. 아들이 안하는데, 며느리가 하겠어요? 딸이 하겠어요?
엄마는 연세가 드셔서..기운이 딸리니까 ...아버지께 싫은 소리 많이 못하시고...
결국 악역을 맡게되는 건 딸이죠.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다고, 그게 듣기 싫은 소리라 하더라도 아버지를 위한 쓴소리라면 기꺼이 제가 하지 싶어서,
저희 집안의 악역은 주로 제가 합니다.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그래도 아버진데..딸이 맨날 혼낸다"고 하시는데...
제가 신 삼종지도(新 三從之道)를 주장했더니..아버지, 너무 어이가 없으니까 껄껄 웃으시대요.^^
제가 주장한 삼종지도란,
"남자는 어려서는 어머니를 따르고, 젊어서는 아내를 따르고, 나이 들어서는 딸을 따르면 손해볼 것이 없다", 뭐 이런 겁니다.
그렇잖아요...세상에 어머니만큼 아들을 사랑하고, 아내만큼 남편을 생각하며, 딸만큼 아버지를 걱정하는 존재가 어딨겠어요?
그런데..남자들은 왜 그걸 모르는 걸까요?? 왜 그렇게 아내 말을 잘 안듣고, 아내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요?
제 말...틀렸나요??
혹시 고춧가루가 그리 맵지 않다면,
혹시 겨울에도 메밀국수를 삶아 쓱쓱 비벼먹는 쟁반국수를 좋아하신다면....양념장을 이렇게 한번 만들어 보세요.
과일간 것 2컵(전 어제 배와 오렌지를 섞어서 썼어요), 물 ½컵,고춧가루 2큰술, 튜브 겨자 1큰술, 식초 1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들깨가루 2큰술, 통깨 1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소금 1작은술.
고춧가루가 저희 집꺼 처럼 혀에 불이 날 정도로 맵지만 않다면...맛있다는 얘기를 들으실 수 있을 거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