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제겐 일주일 중 가장 다채로운 경험이 가능한 날입니다.
오늘은 곧 있으면 제주도로 내려가시는 안나돌리님과 서울에서는 마지막으로 만나게 될 지도 모르는 날이라서
몽 상태가 약간 이상했지만 그래도 길을 나섰습니다.
약속은 10시인데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미리 말은 했지만 상당히 늦은 시간, 혹시나 혼자서 기다리고 있는
불상사는 없겠지? 마음 조리면서 약속장소에 갔더니 열무김치님의 딸 가야도 그 자리에 있네요.
우선 반갑게 인사하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이야기 꽃을 피웠지요.
아마 이 이야기는 안나돌리님이 후기를 올리실 것 같아서 생략하고 (에셀나무님께서 꼭 안나돌리님에게
점심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는데 뒷 약속이 있다고 우리들 커피 값도 다 내주시는 바람에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아침부터 커피를 마셨네요.여기서라도 제대로 된 감사 인사를 받아주시길 )
점심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들,점심을 함께 먹었지만 샤갈전을 갈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그러고 보니 오늘 샤갈전은 호젓하게 안나돌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샤갈, 한국인이 사랑하는 화가중에 손꼽히는 화가라고 알려져 있지요. 사실 몇 년전의 샤갈전도 보았고
퐁피두 센터에서 온 아주 인상적인 샤갈 그림 한 점, 그리고 피카소와 모던 아트에서 만난 샤갈
니스의 샤갈 미술관에서 본 그림들, 그러니 이번에 새로운 작품을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갸웃거리면서 간
전시인데요, 니스의 그림들을 다시 만나는 것도 반가웠고 러시아에서의 초기 작품에서 그의 후기 작품의
모티브를 만나는 것, 라퐁텐 우화나 그리스신화에 관심갖고 그린 그림들, 실제로 그리스에 다녀오고 나서
그린 석판화들, 그리고 모스크바의 유태인 극장의 벽화와 볼라르에게 권유받고 서커스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린 그림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프니스와 클로에. 이 작품에 삽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리스에 갔다고 하더군요. 그리곤 그 곳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을 화폭에 마음껏 표현을 했는데요, 저는 또 그 그림들을 보니 그리스, 마음속으로는 품고
있었어도 언제 갈 수 있을까 멀리 미루어두었던 열망이 슬며시 올라오는 경험을 하기도 했지요.
98년의 인생에서 70년을 그림 그리는 화가로서 살았다는 샤갈, 러시아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난 그가
거의 한 세기를 살면서 역사의 격랑과 수없이 부딪혔겠지만 그의 그림에는 그런 흔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
우선 제겐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답니다. 아마 요즘 현대사를 읽고 있는 중이라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그 시기를 무슨 생각으로 보냈을까 하는 순수한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고 잠깐 생각하기도 했던 것을 보면 그런 인상에 강했던 모양입니다.
유대인에 관한 몇 점의 그림도 그렇지만 그가 구약성서 속의 인물들을 그린 것을 보면서 유대인로서의
샤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고요. 20년대 러시아를 완전히 떠난 그였지만
60년대가 넘어서도 그의 마음속의 고향이 다시 그림속의 모티브로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한 인간에게
그리고 화가에게 고향은 무엇일꼬 하는 생각도 했는데요, 그는 말년에 러시아에 갈 기회가 생겼어도
정작 고향에는 가보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왜 그랬을까? 그런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서 미술관에서 인사를 하고는 저는 잠깐 남아서 연락할 일을 마무리하고
교보문고에 가려고 나선 길, 정동에서 시립미술관으로 오다가 이스탄불 사진전 포스터를 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길을 바꾸어서 그 곳으로 갔더니 역시나 안나돌리님이 사진을 보고 계시더라고요.
덕분에 사진의 구도나 사진술에 관한 강의를 혼자서 독점적으로 들으면서 함께 사진을 보는 호젓하고
기분좋은 시간을 누렸습니다. 마침 이스탄불은 오래 전에 여행으로 만난 곳이기도 해서 기억속의
그 곳을 추억하면서 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사진의 ABC도 모르던 시절이라
사진이 없는 여행기로만 남아 있어서 아쉽기도 하더군요.

사진을 보고 나와서 서대문까지 걸어가면서 안나돌리님의 사진에 대한 열정에 찬 이야기는 계속 되었고
드디어 정류장에서 헤어질 시간, 다음에 다시 어디서 만나게 될지 몰라도 그 때는 서로 조금씩 앞으로
나간 인생의 경험을 나누면서 또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