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마티스 책을 두 권 읽는 날입니다. 한 권은 영어로, 다른 한 권은 불어로 읽고 있는 중인데
당근 불어는 실력이 모자라서 한 줄에 거의 4,5개 단어를 찾아야 하는 수고를 하고 있는 중이지요.
이상하게 모르는 언어는 단어를 찾아도 너무 뜻이 많아서 (사실은 영어와 같은 식으로 찾으면 되지만
모른다는 것이 심리적 장벽이 되어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조화속일까요? ) 무엇을 골라야 할 지 난감하고
30분전에 찾은 단어의 뜻이 생각나지 않아서 다시 찾을 때의 묘한 기분을 맛보기도 하고요.

월요일 맡은 부분을 준비하는 도중에 스페인 여행에서 돌아온 안희경씨가 선물로 골라온 게르니카에 대한
어린이용 책 한 권에 자꾸 마음이 쏠려 그 것도 읽어보느라 수업준비가 미비해서 오늘은 한 시간 일찍
나가서 예습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그림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창의력이 모자라다고 느껴서 고등학교 시절 포기했다는 이 혜정씨, 그녀는
프랑스에 유학중인 딸이 있다는 것과 그림에 관해 읽는다는 두 가지 사연이 겹쳐서 정말 얼마 되지 않은
기간동안 불어 실력이 일취월장, 함께 하는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점심을 먹는 중에 그림을 하나씩 뜯어서 보는 것이 정말 좋다고, 한 그림 한 그림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
막연히 보고 좋다고 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느낌을 설명하더군요. 물론 저도 동감입니다.

마티스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형태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고 싶어서 조각을 배우기도 했다는군요.
언젠가 로뎅 미술관에 갔을 때의 일인데 마티스와 로뎅의 전시가 나란히 열려서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마티스가 브로델이외에도 로뎅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로뎅의 흔적과 더불어 세잔에게서 받은 영향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금 읽고 있는
글에서 설명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하고 다시 들여다 보았습니다. 바로 그 그림이 모마에 있다니
하고 눈도장을 찍어두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결과로 드러난 작품만 보는 것이지만 그 작품이 나오기까지 여러 가지 사연들이 가득하겠지요.
오늘 아침 읽은 게르니카에서도 100번의 연습이란 표현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dance란 제목의 이 그림도
수없이 많은 스케치작업을 거쳤겠지요?

Matisse painted this oil sketch in the summer of 1904, while working alongside fellow artist Paul Signac on the French Riviera, and he completed the final painting (now at the Musée d'Orsay, Paris) the following winter. Both Signac and Matisse were influenced by the elder painter Paul Cézanne, whose discrete strokes of color emphasized the materiality of the painted surface over naturalistic illusion. But Matisse went further, using a palette of pure, high-pitched colors (blue, green, yellow, and orange) to render the landscape, and outlining the figures in blue. The painting takes its title from a line by the nineteenth-century poet Charles Baudelaire and shares the poems subject of an escape to an imaginary, tranquil refuge.
이 그림을 폴 시냑이 구입한 후 바로 전시장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져갔다는 일화가 있더군요.
그는 이 그림에 드러난 그의 색채 이론의 흔적에 만족해서 구입을 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을 물론 몰라도
그림을 보는 일에는 지장이 없지만 그런 사소한 에피소드를 읽는 맛도 재미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그림에
대한 사적인 친밀감이 생긴다고 할까요?

콜리우르, 마티스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지명인데요 스페인과 국경을 이루는 지역이라고
하는데 남부라서 그런지 햇살이 좋다고요. 그 곳에 일정 기간 동안 있으면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이 경우는 제목은 la japonaise이지만 당시 기모노를 즐겨 입었다는 마티스의 부인 이미지가 아닐까 싶네요.
물론 일본여성이 그 시기에 프랑스에 있을 수도 있지만 마티스의 전기에 일본 여성을 모델로 해서 그렸다는
언급을 찾아볼 수 없어서요.


Matisse turned this intimate scene of his daughter, Marguerite, reading into a riot of color—her hair is painted in nearly as many colors as the fruit in the foreground. The artist developed this bold palette in the summer of 1905 in the southern port town of Collioure, France. There, painting alongside his friend the artist André Derain, he fulfilled his goal of learning "how to make my colors sing." Most critics judged his colors less than favorably, deriding Matisse and fellow artists as fauves, or "wild beasts," but shortly after this painting was made it was purchased by the supportive art critic and dealer Felix Fénéon.
이 그림까지 보고 나니 아침시간의 마티스공부에 대한 after가 된 느낌이네요.
봄의 제전, 여러 번 들으니 이제는 많이 친숙해져서 어느 부분에서는 저절로 몸이 움직이는 자동적인
공명의 시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 놀랍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의 당황해서 그냥 꺼버렸던 기억이 슬며시
올라오면서 그러니 겁을 내지 않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해 보는 것, 다시 들어보는
것이 중요한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