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의 일입니다 .보람이가 물어보더군요. 엄마 다음 주 금요일 밤에 시간있어?
왜? 아마 예술의 전당 음악회가 있을 것 같은데. 그래, 그러면 할 수 없지,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지금 인턴으로 일하는 근무처에 난타 공연을 저렴하게 볼 수 있는 표가 들어와서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평소라면 6만원인데 좋은 자리를 2만 5천원으로 볼 수 있으니 함께 가면 어떨까 하고요.
늘 한 번은 가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기회가 없었던 공연이라 음악회 표를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마땅한
사람이 없으면 취소하기로 하고 . 어제밤 난타 공연에 갔지요.
물론 어제는 강남 역사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오전에는 블룸즈베리 그룹에 관한 것, 일본 근대사에 관한 것
함께 이야기했던 덕분일까요? 점심 먹고 교보문고에 가보니 이상하게 일본사에 관한 책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소화사 (소화 시대의 역사) 에 관한 것과 이토히로부미에 관한 글 두 권을 놓고 고민하다가 한 인간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하여 시대사로 넓히는 것이 더 좋겠다 싶어서 한 권, 새로 시작하는 불어공부에 조금 더
박차를 기할 요량으로 동사에 관한 책 한 권, 지의 정원이란 제목으로 다치바나 다카시와 사토 마사루가
대담을 통해 대중에게 권하는 책 100권 (각자) 그리고 지금 당장 책방에서 구해서 읽을 수 있는 책 각 100권을
소개하고, 서로 쟁점에 대해서 의견이 같거나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책, 마지막으로
안또니오 네그리의 예술과 다중을 골랐습니다.
이 곳에 가서 책을 구하면 금요일 수업에 쓰는 모던 타임스, 너무 무거운 책이라 그 이후 들고 다니기 힘들어서
산 책 중에서 그 날 읽고 싶은 것을 가방에 챙기고, 그 책을 비롯해서 당장 읽을 책이 아닌 것은 택배로
보내니 편하더군요. 그런데 어제는 함께 교보문고에 갔던 레몬 글라스님이 the Pillars of the Earth를 구해서
저보고 먼저 읽으라고 빌려주셔서 감동했습니다. 사실 음반은 여러 장 사는 경우 다른 사람에게 먼저 기회를 '
주는 적은 있어도 책을 사서 상대방에게 먼저 읽으라고 권한 적은 거의 없어서요. 새롭게 아하 하고 놀란
그 마음을 오래 간직하게 될 것 같네요.
(레몬 글라스님 금요일에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 금요일의 after에 함께 할 수 있길 !! )
보람이와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편하게 앉아서 책을 읽을 장소를 구하려고 돌아다녔는데 어찌나 사람들이
많고 시끄러운지요. 소음공해란 말이 실감난 날, 그래도 유기농 커피를 할인해준다고 광고하는 크리스피에
들어가서 커피 한 잔에 맛있어 보이는 이름도 어려운 빵을 하나 시켜놓고 가방을 여니 무엇부터 읽어야
하나 즐거운 고민입니다. 일단 맛보기로 이또 히로부미를 읽다가 a부터 시작하는 동사 변화를 무겁게 챙겨서
들고간 불어 사전을 놓고 발믕 찾아가면서 공부하다 보니 오래 전 학창 시절이 생각나서 웃음이 절로 나더군요.

지의 정원도 내용이 궁금해서 펼쳐보았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저서들이 많아서 신기한 마음에 메모를 하면서
줄을 그으면서 읽다보니 정말 언제 그랬는가 싶게 소음이 들리지 않는 겁니다. 삼매경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가
싶을 정도로 묘하게 몰입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보람이가 들어와 엄마하고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나더군요. 이렇게 몰입이 가능한 시간이면 뒷 시간의 약속이 번거롭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일어나야 할 시간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하루 종일 묘한 날씨네요. 화창했다가 마구 쏟아지다가
가는 비로 바뀌고 다시 맑았다가 폭우가 되고, 이번 여름 자연에 대해서 정말 다시 보게 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랍니다.

난타 공연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관객이 훨씬 많았고 , 공연이 시작되면서 점점 뜨거워지는 반응에 더하여
어린 꼬마 아이들의 솔직한 웃음으로 뭐랄까, 공연장의 느낌이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섞여서 놀이터에 온
느낌이라고 할까요? 음악회의 관객과는 다른 몸으로 반응하는 뜨거움이 있었다고 할까요?
악기가 아니라 물통을 비롯한 주방기기로도 저런 소리를 낼 수 있구나 놀랍기도 하고, 악기에 대해서 제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이 깨지기도 하고, 갑자기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장구가락이 생각나기도 한 날이었습니다.

점프 공연도 함께 갔었던 보람이가 그 때도 정말 즐거워했었는데 이번에도 얼마나 웃어대는지
그것이 제겐 더 신기한 일이었지요. 어렸을 때 대금을 배운 적이 있는 아이는 지금도 가끔 그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대금을 다시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을 비치더군요. 악기를 배우는 것은 좋다고 했더니 렛슨을 받으면
부담이 되니 그냥 혼자서 연습하고 싶다고요. 제 경험엔 혼자서 연습한다는 것은 지속성이 없어서 조금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은데 그것은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고 공연으로 촉발되는 신체라, 그런 생각이
재미있더군요.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무엇인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나면 보통 때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감동만 하고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어느 순간 감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액션을 취하게
만드는 그 때가 바로 제 안에서 무엇인가 크게 움직이는 때가 아닐까 싶거든요.

공연장 밖에 오늘의 출연진 소개가 있고 다양한 팀소개도 있었습니다. 팀에 따라 공연의 내용이 다르다면
더 와서 보고 싶다는 생각에 물어보니 공연의 내용은 같다고 하네요. 물론 다르게 연습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길게 보면 다양한 레파토리가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화장실 가려고 움직이는데 함께 온 일행들이 앉아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우리 일년에 한 번은 오자, 50은 훌쩍 넘었을 동창생들이 아닐까 싶은데
그들이 공연에서 받은 에너지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얼마나 이뻐보이던지요!!

김덕수 사물놀이 30주년 기념 공연에 갔을 때도 몸의 반응에 놀라서 그 느낌이 한참을 갔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연도 그렇게 제 안에 무엇인가를 건드린 것이 앞으로 무엇으로 펼쳐질 지 사뭇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