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자 우리의 발넓은 줌마나님이 대화동에 있는 사과나무 치과의 강의실을
섭외했더군요. 그 치과는 일산 주민들이 모여서 공부할 수 있는 상당히 넓은 공간을 준비해 두고
필요한 단체에 무료로 빌려주는 곳이라서요 이런 때 아주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요.
EBS의 동영상 자료를 잔뜩 준비해놓고 르네상스 시기의 토스카나 지방부터 보여주면서 시작한 오늘 수업은
연말 겨울 여행지와의 설레는 만남의 전초전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건축사는 역사,미술사와는 또 다른 접근이라고 할까요? 재료나 기술의 발전과 병행하지 않으면
왜 그 시기에 그 지역에 그런 건축이 가능했는가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좀 더 새로운 접근으로 시기를
장소를 ,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을 ,그 건축을 가능하게 한 경제적 조건을 다각도로 생각하게 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지요.

지구라트에서 이슈타르 문에 이르기까지 지금은 원형이 많이 파괴된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한 지역에 관한 설명을 들으면서 건축 현장을 보고 있으려니 오래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 시대에 시작된 많은 것들이 형태를 조금 더 바꾸어가면서 지금의 일상에서도 사용되고 있다거나
인간의 역사란 과연 일직선으로 가는 것일까, 많은 형태의 파괴와 변형, 그리고 새로운 일어섬을 겪으면서
지금의 우리를 형성해오지 않았는가,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새로 덧붙이고 하는 것들이
한 개인의 힘으로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집단의 힘만으로 되는 것일까, 어느 시대에 홀연히 나타난
천재라 해도 그를 유전자의 특이성 덕분으로 돌릴 수 있나, 강의 시간에 머릿속을 떠다니는 다양한
생각들이 실없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시간이기도 했지요.

강의를 듣고 나니 외장 하드를 하나 구해서 동영상 자료를 모으고 영상과 더불어 미술이나 건축,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보는 일과 더불어 공부하면 더욱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 자료를 뒤적이다 보니 지난 겨울 루브르에서 찍었던 자료들이 궁금해지네요. 오래 전이라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이 문제이지만 갑자기 고대 근동의 역사관에서 머물면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던 시간의 열기가
기억나서 집안에서 여행을 떠나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기도 하고요.
오늘 도서관의 멤버들, 다른 모임에서 온 사람들, 친구를 초청해서 온 사람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형태의 수업을 하고 나니 연다는 말의 의미가 확장된 날이었다는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납니다.우선 지혜나무님, 준비하느라 수고가 많았고 수줍어하면서도 서서히 열강을 하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그녀와의 만남을 저는 보물을 하나 줏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올 해 새롭고 행복한
만남이 된 아주 까마득한 후배라서요, 앞으로 그녀와 다양한 일을 벌여갈 수 있을 좋은 파트너가 생긴
기분이랍니다.
친구와 하는 수업을 어렵사리 미루고 멀리 강남에서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조조님, 그녀와의 만남도
올 해 제겐 아주 특별한 만남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달라서 거의 접점이 없어도 이렇게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던 그녀와 요즘은 공유하는 일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한 주에 한 번 혹은 두 번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달라진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요.
그렇게 서로 삼투압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늘었던 2010년은 정말 오랫동안 잊지 못할 해가 될 것 같네요.
건축사라? 나도 읽어보고 싶지만 혼자 읽으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고 ,잠들기 딱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사과나무 치과의 빈자리가 넉넉하므로 편한 마음으로 함께 해도 된답니다.
목요일, 10시 시작이고요 12시에 종강을 합니다.
앞으로 다섯 주 더 남았고요 이번 여름은 르네상스기까지 겨울엔 다시 그 이후의 건축사를 공부하게 됩니다.
건축사라고 하니 뭔가 대단한 것 같아 보여도 인류가 집을 짓고 혹은 공공 건물을 짓고 살아온 세월에 대한
리뷰라고 할 수 있을까요? 리뷰를 통해 공간에 대해 사고하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그 공간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나는 어떤 공간을 만들어가고 싶은가 그런 생각으로 발전하면
그것만으로도 함께 한 의의가 있지 않을까요?

최근 불로그부터 찾다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하나 포기할까 하다가 혹시나 하고 뒤에서부터 검색하니
역시나 빨리 찾아지네요. 그래서 바이올린 연습하고 나서 뒤적뒤적 루브르에서 놀고 있습니다.


비싸다는 이 색감, 오늘 동영상을 보니 이 지역에서 로얄 블루라고 불리는 이 색의 돌이 많이 나더군요.
터키의 모스크에 갔을 때 그 안의 타일의 색에 반해서 조금 비싸다 싶어서 망서리던 타일 모임의 책을
한 권 구했습니다. 가끔씩 마음을 쉬고 싶을 때 바라보고 있으면 위안이 되곤 하는 책이지요.
그런데 마침 국립박물관 직원인 학부형이 있어서 빌려들었더니 아주 좋아하더군요. 귀한 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했던 어제 밤의 기억이 나네요.

오늘 수업중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무덤이 별로 발견되지 않는 반면에 이집트에서는 피라밋이 많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그 지방은 평야지대라 싸움이 빈번해서 안정이 되지 않은 지역은 무덤을
가꿀 여유가 없어서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역시나
사람은 모르는 것에 대해서 글로 읽는 것보다 사람의 말로 우선 귀를 씻고 그 다음에 무엇을 읽으면
조금 더 눈이 확 떠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오늘 동영상안에서 수메르등의 쐐기 문자를 연구하고 있는 일본인 학자의 얼굴을 만났습니다.
샹폴뢰옹이 로제타 스톤을 통해 이집트 언어를 해독했듯이 과연 그가 수메르 문자를 해독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정말 큰 도전을 하고 있구나, 그 사람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 감탄의 소리도 절로 나오고요. 그렇게 한 개인이 달려들기엔 결과가 불투명한 ,아니 단순히 불투명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큰 작업에 달려든 사람들은 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네요.



건축사 수업의 동영상 덕분에 마치 시간여행을 한 듯한 즐거운 기분이 든 목요일 오후
한 번에 다 보기엔 너무 많은 루브르 유물, 한 번 더 시간내서 찬찬히 둘러보고 그 시기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