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이가 어제 귀국한 뒤로 오늘까지 정말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공중목욕탕에서 먼저 돌아와 우편함에 들어있는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보낸 고흐의 자화상이 그려진
엽서를 받아보고 나니 (짐은 사람보다 먼저,엽서는 사람보다 늦게 ) 점심 먹으러 함께 나서기 전의
짬을 내어서 그림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키신이 연주하는 쇼팽을 틀어놓고 시원한 느낌으로 그림을 찾아보고 있으려니 망중한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마침 어제 미술시간에 추상표현주의에 관한 글을 읽어서 그런지 당연히 그림은 그 시기로 잡아서
보게 되는데요 처음 고른 화가는 한스 호프만입니다.
도발이란 제목의 책에서 현대미술에 관한 갈래를 제대로 만날 수 있어서 (물론 설명이 충분한 책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음악과 그림, 그리고 시대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상상력을 자극해서 다른 그림을 찾아서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 그것으로도 역할을 충분히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 목요일, 혹은 금요일에는 수업이후에
after를 하게 만드는 책이랍니다.


어제 오랫만에 집에 돌아온 조카를 보러 막내 동생이 왔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음악대학에 가고 싶어서 비올라를 연습했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음대진학을 포기한
사연이 있는 동생입니다. 그리고는 거의 20년 비올라를 손에 대어본 적도 없는데 (아마 일종의 트라우마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혼자서 하고, 다시 시작하지 않는 동생을 지금도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중인데요)
바이올린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곡을 연주하더군요.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는 것인가 하고요.

오전에는 신숙씨가 미리 와서 자세를 잡는 법, 활쥐는 법등을 제대로 가르쳐 주어서 도움이 되었고
오후에는 동생이 또 기본적인 것, 팔을 제대로 뻗는 법을 가르쳐 주더군요. 어른이 되어서 시작하는 일의 어려움
그러니 너무 급하게 마음 먹지 말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하라고 힘을 실어주더군요.
그리고 나니 밤에 동영상으로 음악을 보던 중 바이올린 주자들의 동작에 유심히 눈길이 갑니다.
얼마나 웃었던지요. 겨우 한 번의 레슨으로도 사람의 관심은 이렇게 촉발이 되어서 시선에 차이를 준다는
사실이.

어제 수업중에 폴락의 그림을 본 탓일까요? 오늘 그의 부인이기도 했고 그 못지 않게 아니 오히려 그 이전에
화단에 알려졌던 화가 리 크래스너의 그림에 손이 갑니다.

런던에서 앞날에 대한 고민을 하고 앞날에 대한 모색을 하면서 글을 썼던 딸의 심정을 생각하게 되네요.
여자로서 산다는 것,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 그것이 꼭 일치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