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교보문고에 가서 귀한 책을 한 권 만났습니다.
타쉔에서 출간한 moorish architecture in andalusia인데요
아마 스페인에 가기 전이라면 좋다,마음에 담아두기만 하고
그냥 나왔을 책인데 제가 직접 눈으로 본 공간을 담은
책의 사진이 훌륭하고 글로도 조금 더 읽어볼 수 있으니
마음이 동하더군요.
함께 있던 보람이에게 엄마에게 선물하라고 일종의 강요?
를 해서 그 책을 선물받고
저녁을 먹으러 간 곳에서도 한 번 더 커피마시러 간 공간에서도
한 번 더 그렇게 사진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만나니
문득 일월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던 마지막 여행기
코르도바와 바르셀로나를 다시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바싸서 미룬 것일까?
아니면 정리해버리면 그 장소가 마음속에서 정리되는 것이
싫어서인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하게 이번
여행은 오래도록 마음을 끌고 있네요.
사실 역사적인 순서로 하자면
알함브라 궁전에 가기 전 코르도바를 가야 하는 것이지만
여행지의 사정상 알함브라에 먼저 갔지요.
그 곳의 환상적인 공간을 마음에 품고
오후 일정으로 잡은 곳이 바로 코르도바입니다.
한국에서 잡은 일정으로는 풍광이 아름답다는 론다가
후보지였지만 스페인에 와서 지점장님과 상의하는 도중
세비야로 바뀌었다가 최종적으로 코르도바로 행선지를
바꾸었는데 나중에 코르도바를 보고 나서 다들
이 곳을 못 보았더라면 후회할뻔 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전날 충전한 카메라,그러나 알함브라에서 멋진 광경에
카메라를 지나치게 혹사했는지 벌써 기능이 끝나버렸습니다.
어라,아깝다 싶었지만 별 수 없어서 그렇다면
코르도바는 마음으로 담을 수 밖에 없겠다 체념하고
마음을 조금 더 열어서 밖을 내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일행인 케롤님이 찍은 사진을 시디로 구워서
한 장 주었기 때문에
덕분에 사진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감사,
그라나다 가는 길에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지던 올리브밭
그런데 코르도바가는 길에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싱그런 올리브가 보이네요.
올리브라면 터키에서 본 것이 제겐 처음 올리브와의
만남이었고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서 인상적으로
본 기억이 전부인데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기억에서 지워지기 어려운 올리브 나무의 향연을 본 셈인가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중간에 들른 음식점
그런데 전망이 너무 좋습니다.
앞으로는 올리브나무들,옆으로는 카톡릭의 묵주를 만든다는
나무가 보이고 가게 안에는 그림이 여러 점 걸려 있습니다.
물론 잘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동네의 정경을 담은 그림들이 순박한 아름다움으로
눈길을 끌고 있네요.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와인의 맛을 알았고 그리고 맥주도
맛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마전 읽은 권혁범의 글에서 먼 길 비행기를 타고 온
어머니에게 저자가 묻더군요.
어머니,긴 여행 지루하지 않았는가 하고요.
그러자 어머니가 대답합니다.
지루하다고?
밥을 하지 않아도 비행기에서 맛난 음식을 주니 너무
좋았노라고
여행을 할 때마다 함께 간 일행들의 한 목소리
얻어먹는 밥이 정말 맛있노라.
사실 저는 밥을 혼자서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실감이 덜 한지도 몰라요.
그런데 주방을 책임지고 매일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휴가로 주어지는 시간이 얼마나 특별한 시간인가
두 사람의 표정이 잘 드러내주고 있는 것 같지요?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지점장님이 선택하는 음식점마다
100% 이상의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이 곳도 마찬가지였는데 서로 다른 음식을 시켜서
나누어 먹느라 시간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단 것을 좋아하는 제겐 후식마저도가 아니라
후식이 정말 맛있었지요.

더 늦어지면 곤란한 시간까지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다
마지못해 일어섰고 드디어 코르도바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일
때까지 차안에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상당히 익숙해진 사람들끼리의 소통이 느껴지네요.
지금보니 더 호텔인데 호스탈이란 다른 표현이 하나
눈에 띕니다.
이것이 병원인가요? 아니면?지점장님
이 글을 읽으시면 리플로 알려주실래요?
돌아와서 읽어본 코르도바에 관한 글에 따르면
이 곳은 로마시대부터 개발이 된 지역이라고 하네요.
로마인이 가고 서고트인이 와서 이 곳을 행정의 중심으로
삼았고 그 다음에 압바스 왕조에게 정권을 빼앗긴
우마이야 왕조 사람들이 와서 건설한 도시
이슬람 최대 번영기를 누린 도시
그들이 그 이전에 존재하던 것들을 파괴하지 않고
포용하면서 유대교,기독교,그리고 이슬람이 서로
사이좋게 공존하면서 유럽 최대의 문화도시를 이룬 곳
그래서 당시에 아랍에서 발전한 과학기술과 문화를
이곳을 통해서 유럽으로 알리는 문화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 곳으로 되어 있네요.

코르도바란 지명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이 말발굽 모양의 아치를 보면 아,본 적이 있어라고
탄성을 지를만한 너무나 잘 알려진 모스크가 있는 곳이지요.
그런데 이 곳에 오니 너무 시간이 늦어서 자칫 잘못하면
입장시간을 넘길 수가 있다고 하네요.
지점장님이 주차할 공간을 찾는 동안에도 기다릴 여유가
없을 정도로 빡빡한 시간이라 지리도 모르면서 대강
설명을 듣고 뛰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대답이 다 각각이네요.
난감한 상태로 뛰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노부인 둘이서
저를 불러세웁니다.
그러더니 당신들이 찾는 곳이 어디인가 물어보더니
저쪽으로 가라고 알려줍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서둘러 가니 아직은 입장권을 팔고
있습니다.
급히 들어가서 만난 첫 공간이 바로 이런 모습이지요.
물론 사진에 다 담기엔 공간이 너무 커서 사진작가들이
아니라면 제대로 다 담기엔 무리다 싶더라고요.

알함브라가 원숙기를 지난 시기에 무르익은 아름다움이
있다면 이 곳은 뭐라고 할까 차분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그런 공간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이미 존재하던 것들을 쓸어버리지 않고
그냥 살려서 만든 공간이 갖는 표용성이 느껴졌습니다.
위의 사진에서도 보듯이 말굽모양의 아치앞에
상당히 다른 모양의 기둥이 보이지요?
그런 것이 눈에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나란히 존재하는
다른 것들이 제겐 참 좋아보였습니다.

이 모스크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은 공간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곳입니다.
기억이 맞다면 이 공간이 바로 코란을 놓아둔 곳이라고 하네요.
어제 본 책에서도 이 공간을 다시 보니 반가운 마음에
아,소리가 절로 나더군요.

마침 목요일 수업에서 읽는 책이 동아시아 삼국을 다룬 책인데
지난 목요일 가마쿠라 막부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종횡무진 동양사를 꺼내 읽다보니
일본을 넘어서 중국의 중세까지 읽게 되었지요.
한무제때에 밀려난 흉노가 서쪽으로 움직인 바람에
게르만의 대이동이 일어난 사연,그러다가 고트족의 일파인
서고트가 이베리아 반도에 가서 나라를 세운 사연을
만나게 되었지요.
그래서 뜻하지 않게 동양사를 읽다가 다시 이베리아 반도의
서고트족을 글로 만났습니다.
바로 그 서고트족의 흔적을 이 곳 코르도바에서 만났을 때의
신기함이라니,역사책속의 글자에 불과하던 것을 직접
만나고 나면 그것이 제게 오랜 영향을 끼치면서
역사책을 읽는 것이 조금은 더 생생하고 살아있는 경험이
되는 것을 느낍니다.그것이 역사적인 장소를 다녀오고 나서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모스크를 짓기 위해서 그 공간을 정리할 때 나온
전시대의 유물일까요?
작은 박물관처럼 몇가지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서 덕분에
코르도바의 다른 시기를 상상하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레콩키스타 운동에 의해서 이 곳은 결국 스페인의
기독교도들에 의해서 탈환이 되지만
다른 곳과는 달리 전면적인 파괴를 면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지금의 우리들이 그 곳에 가면 이슬람의 흔적을
맛볼 수 있게 되었고 스페인사람들도 유럽속의 이슬람의
흔적을 찾아서 오는 관광객들을 계속 맞이하게 되었으니
그 때의 결정을 내린 지도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절로 드네요.
이 안에는 성당이 지어집니다.
그러나 부조화스러운 공간이라 나중에 카를로스 5세는
이 공간에 손 댄 것을 후회했다고 하더군요.
그냥 놔두는 것이 더 좋았을것이라고.
위 그림에서 보면 터번을 두른 사람들이 무릎 끓고 있는데
아마 이 곳에서의 전쟁후에 항복하는 장면을 화가가
그림으로 그린 모양입니다.
이 곳을 나서니 벌써 밖이 어두워졌습니다.
원래는 마차를 타고 시내 한 바퀴를 돌기로 했으나
마차도 보이지 않고 어두운 곳을 돌아다니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
그냥 그라나다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캐롤님은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더라고요.
저는 그라나다로 가는 차속에서야 이 곳에 오는 일이
더 있기 어려운데 그냥 마차를 타고 어렴풋한 빛속에서라도
이 곳에 대한 느낌을 마음에 담아갈 것을 그랬나
그때서야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미 후회하면 늦으리,
그러고보니 코르도바에 왔었노라 그렇게 말하긴 어렵겠구나
그저 모스크를 본 것이니 다음에 정말 기회가 되면
하루 정도 머무르면서 도시 전체를 제대로 보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이 곳을 보지 못했더라면 알함브라와는 다른
이슬람 공간의 맛을 느낄 수 없었겠으니 얼마나 불완전한
기억이 되었겠나 그래도 마음이 배부른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