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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황주리의 그림을 만나다

| 조회수 : 944 | 추천수 : 32
작성일 : 2008-02-02 10:56:55


    목요일 수업을 마치고 박혜정씨가 물어보더군요.

선생님,내일 점심 함께 할 수 있는가 하고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방학동안 청주에서 올라온 조카를

잘 돌보아준 것에 대한 감사로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고요.

금요일 전시회 가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망서리다가

목요일 밤 늦게까지 이런 저런 일을 하다 자면 아무래도

금요일 오전에는 졸려서 다른 일에 집중하기 어려우니

빠른 시간에 점심 약속을 하고

그리고 그 곳에서 바로 나가면 되겠다 싶어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청주에서 올라온 그 아이,중학교 일학년인 재성이와

한 달 참 바쁘게 계획을 짜서 일년동안 배우게 될 내용을

기본적인 것만 다 본 셈인데요

그 시간을 보내면서 옛날의 제가 많이 생각났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관계로 배움에 목마른 제겐

누군가 멘토가 될 사람(그 때는 멘토라는 말을 몰랐을 때지만

나중에 보니 제가 원했던 것은 바로 제 성장을 이끌어 줄

그런 정신적인 존재였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이

필요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찾기가 어려워서

고등학교 시절 방학이면 서울에 올라와서 단과반을 다니면서

모자라는 공부를 보충하곤 했지요.

그 때 내가 어른이 되어 서울에 살게 되면

공부에 목마른 시골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이 있었는데

이번에 재성이와의 만남이 바로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해주었습니다.

조카의 성장에 관심을 갖고 평소에도 책을 보내주곤 했던

그런 이모가 있어서 그 아이에게 생긴 귀한 기회를

본인은 그것이 기회라고 알고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할 일은 그저 한 달의 인연으로 끝내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연락하면서 돕는 그런 후속작업이

더 중요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일단 교보문고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눈이 반짝 빛나게 하는 책 한 권을 만났지요.

타쉔에서 출간한 MOORISH ARCHITECTURE IN

ANDALUSIA인데요

마침 그 지역에 다녀온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아직 코르도바에 관한 글을 못 쓰고 있어서인지

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일단 책을 한 권 골라놓고 다른 책들도 메모하면서 보던

중 보람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교보문고에 도착했다고요.

오늘은 둘이서 만나 황주리 그림을 보고

저녁 식사후에 미로 스페이스에서 영화 한 편 보기로 했거든요.

보람아,이번 해부터는 엄마에게 한달에 한 권씩

엄마가 원하는 책을 선물해주면 어떨까?

한 달에 한 권? 조금 많다는 표정입니다.

그래도 일단 이 책을 보람이가 선물하는 형식으로 구하고

현대갤러리로 갔습니다.

황주리라는 이름덕분인지 미술관안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그림앞에 서있네요.



처음 그녀의 그림을 만난 것은 특이하게 원고지위에 그림을

그린 작업을 통해서였습니다.

어라 이런 그림도 있을 수 있구나 하고 놀라면서 이름을

기억했고요

그 다음에는 그녀의 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글도 이렇게 쓸 수 있다니 무슨 재능이

이렇게 한 사람에게 복합적으로 주어질 수 있나 하는

부러움과 글속에서 느껴지는 예술하는 사람의 고독이

절절하게 느껴지기도 했지요.



그 뒤 기회가 있으면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그녀의

그림을 가능하면 보려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전시소식을 읽고 가서 보고 싶었는데

마침 어제가 별 약속이 없는 금요일이라 학교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나서는 아이에게 권했더니 그러면

엄마가 서울와서 전화하라고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보람이와는 오히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

서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고 싶은 말도 조금씩 더 할 수 있게 되고요.



지금 보고 있는 작품들은 전시장에서 본 것들이 아니라

그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찾은 것들이고요

아무래도 전시장의 그림들은 올라와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그냥 그 시간을 기억하면서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골라보고

있는 중이랍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여행을 다니면서

만난 풍광이나 인물,혹은 유적에 나름대로 손을 대서

엽서크기만한 작업들을 한데 모은 거대한 캔버스였는데요

아,화가는 이 지역에 가서 이 유물앞에서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변형시켜서 우리에게 보여주는구나 하고

감탄을 했지요.

아이들이 그 앞에서 떠들어대면서 찾아보는 인물찾기도

재미있었습니다.

한 공간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감탄하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하는 그 시간의 느낌이란 참 묘하더군요.

저도 보람이랑 무엇이 흥미를 끄는지,이것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서로 이야기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둘 다 의견이 일치한 것은 지하에서 본

작품들이 제일 인상적이었다는 것이었지요.



그녀의 그림중에 자주 등장하는 것,시계,전화,티브이

그리고 안경,꽃,

그러나 늘 변주로 나타나서 장면마다 새롭게 바뀌곤 하지요.






식물학이란 같은 제목이라도 두 점의 작품이 서로 다른

색채를 보이고 있는데요 전자도 좋지만 저는 후자의

restricted color도 좋더군요.

이 말이 떠오른 것은 밤에 본 영화에서 주인공중의 한 명이

화가인데 그가 쓰는 색이 주로 어두운 계열의 제한된

톤이어서 그를 평한 신문기자가 그렇게 표현을 하던 것이

생각나서입니다.

바로 후자의 황주리의 색이 그 말을 떠오르게 하네요.



이 작품은 지하전시공간에서 만난 작품인데요

커다란 캔버스안에 들어있는 다양한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일층에서만 해도 그다지 크게 흥미를 못 느끼던 보람이가

지하 공간에 와서는 와 소리를 지르면서

이렇게 색을 대담하게 쓰다니 놀랍다면서 갑자기

그림보는 일에 열을 냅니다.

화가는 어떻게 색에 접근하는 것일까 하는 이야기

그리고 어린 시절,그렇게 자주 잡지를 쌓아놓고

오리고 붙이고 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서

왜 요즘은 그런 작업을 하지 않는가도 물어보기도 하고요.



두가헌의 전시까지 다 둘러보니 벌써 여섯시 십분전

조금 일찍 만날 수 있었더라면 다른 곳에도 들러볼 수 있었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시간이었더군요.

가까이에 있는 인사동에도 못 가고,근처의 학고재,그리고

국제 갤러리에서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오늘 만난 황주리의 그림만으로도 마음이 불러오는

시간이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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