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동안 포맷하고, 고치긴 했는데 중요한 자료들 몇 개는 결국 건지질 못했네요.
우울해지려는 차에 일전에 작성했 두었던 글 하나 건진 게 있어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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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든 홍차든 아니면 중국차이던 간에 맘이 끌리는 잎을 골라낸다. 어떤 때는 설록차를, 어느 때는 큰 맘 먹고 홍목단이 든 통을 꺼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망설임 끝에 고이 모셔둔 새 찻잎을 개봉하는 만행을 저지를 때도 있다.
그렇게 어떤 차를 마실지 결정하고 나면, 물을 끓이고 찻주전자를 뎁힌다.
찻잎을 덜어내기 위해 차가 든 통을 열고 쌉싸름하게 풍기는 찻잎의 향기를 잠시 맡아본다.
적당량의 찻 잎을 주전자나 티포트 안에 넣고 뎁힌 물을 붓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찻잎의 종류에 따라서 조금 짧게 혹은 그보다 더 길게...
때로는 기다리는 동안 찻잔을 고르기도 한다. 투박한 다기도 괜찮을 테고.. 홍차라면 조금은 화려한 찻잔을 쓸 때도 있다.
찻잎을 우리는 과정에서 '빨리빨리'라는 말은 전혀 필요가 없다. 느긋하게 그러나 정성껏.. 그 과정 하나하나를 차분하게 즐겨본다. 그러노라면 일상사에 조급해 하며 안달하던 내 마음도 따라서 차분해진다.
적당히 시간이 지났다 싶으면 역시 따뜻하게 데워둔 찻잔에 거름망을 대고 차를 따라낸다.
손으로 찻잔을 감싸 쥐고, 그 온기를 느낀다.
하루종일 우울한 것들을 본 날이라면 찻잔에 담긴 말간 차의 빛깔을 두 눈에 가득 담아, 그것들을 비워낸다.
그리고는 찻잔을 들어 그 알싸하고 향긋한 향기로 가슴을 씻어내리고, 한 모금 머금어 본다.
때로는 푸근하게.. 때로는 상쾌하게 느껴지는 차맛은 1분만에 후다닥 우려내는 티백의 맛과는 천지차이다.
홀짝홀짝 차를 마신다. 이 세상 이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는 듯이 따뜻한 햇볕 아래 늘어져 가르릉 거리는 고양이처럼..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귀찮더라도 정성껏 차를 준비해보자.
차 한잔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이처럼 크다^^
덧붙임: 차 한잔이 가져다 주는 불행

차를 즐기다 보면.. 이렇게 되기 십상인데(이것도 전부는 아님--;) 이쯤 되면 찻잎과 다기를 앞에 두고 지름신의 유혹과 파산신의 경고 속에서 갈등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느 샌가 텅 비어 있는 지갑을 보며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