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생각보다 빨리 대학생이 되어
더군다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니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구나.
82년 그봄으로 돌아가 보면
엄마도 대학 신입생 이었다.
고3 이라는 깜깜한 터널을 통과한뒤
맞은 그해 봄은
인촌 동상 앞에서 쬐던 햇살처럼
찬란하기만 했다.
군부독재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졸업 정원제 세대라
학점에 대한 불안은 늘 함께했지만
미팅에 엠티에
정신없이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자유를 만끽했단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다시 돌아 가고픈 시절들이기도 하다.
누구도 내게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지
가르쳐 주지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자상하게 일러주는
어떤 분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어제 너의 시간표를 보았다.
보는 순간 가슴이 꽉 막혀왔다.
영어, 화학,물리. 실험,미적분학등
대학 신입생에게
꼭 필요한 인문 사회 교양은
하나도 없이
그야말로 딱딱한 과목들로
꽉찬 시간표가 걱정스러웠다.
이북에 두고온
아내를 그리워 하며
평생 그마음으로
인술을 펼친 장기려 박사.
경성 의전을 2등으로 졸업하고도
의학공부만 하고
문학 서적이나 사회과학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종합적인 인간으로서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했던
그분의 말씀이 떠올랐다.
네가 좋아했던 드라마
하얀 거탑의 주인공 장준혁.
신의 손을 지녔지만
인간에 대한 연민은 부족해서
스스로 무너져 버린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좋은 의사가 되려면
의술과 함께 인문학을
가까이 했어야 했다고...
아들아 엄마와 함께 했던
논술 수업 기억나니?
미국에서 노숙자, 전과자, 마약 중독자를
대상으로 인문학 수업을 했던
클레멘테 프로그램이 기억날지 모르겠다.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한 사람들에게 기술이 아니라
인류의 삶을 빛낸 사람들과
그들의 책을 읽어주는
그프로그램은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대학에 진학 하거나
취업을 하는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
인문학이 가진 힘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엄마에게
7번 논술수업을 받은 여학생이
전문대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너도 잘알듯이 엄마는
쪽집게 선생님은 아니란다.
오히려 내가 그동안
읽은 책이나 경험들을 종합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일러주는 멘토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나의 진심이
학생들의 영혼과 만나
의미있는 수업이 되면
짧더라도 긴여운을 남기는
그런 수업이 된다고 믿고 있단다.
다른 아이들은 가르치면서
먹고 사는 일에 바빠
정작 너와는 차분히 앉아
이야기를 나눠 본적도 별로 없는듯 하다.
지나고 보니 공부하라는 말만 했지
더 중요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일러주지 못했던 것이
제일 아쉽기만 하다.
늦었지만 이렇게 편지를 보낼테니
읽어주길 바란다.
아들, 엄마 생각해서
돈 아끼지 말고
먹고 싶은거 있으면 다 사먹거라.
친구들에게도 베푸는 사람이 되어라.
엄마는 너를 생각하며 더 열심히 살께.
공부가 힘들고 바쁘겠지만
공부하는 틈틈히
한달에 한권은
좋은 책을 읽었으면 한다.
결국 그책들이 너의 인생을
의미있고 가치있는 길로
이끌어 주리라 믿는다.
먼 곳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엄마는 늘 너와 함께한다.
몸 건강히 잘 지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