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보호를 위해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
만.... 본명을 사용했더라도 사생활 보호에 큰 지장은 없었을 거예요. 저도 아직 못외울 정도로 원래 이름이 발음하기가 어려워서요 ㅎㅎㅎ
혜정씨는 인도 남부의 한 공업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위로는 오빠가 있고 IT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에게는, 말썽은 커녕 늘 전교 일등만 하는 모범생인 착한 딸이었지요.
인도에서도 의대 진학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데, 늘 공부밖에 모르는 혜정씨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의대에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까지 했습니다.
의대 공부를 하는 내내 등록금을 한 번도 내본 적이 없었다고 해요. 늘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이죠.
인도의 많은 보통 가정에서 그러하듯, 과년한 딸은 부모님이 정해주는 배필과 결혼을 해야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결혼식 당일날 까지 배우자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부모님끼리 정한 혼사를 따른다는군요.
그나마 혜정씨의 경우에는 부모님들끼리 가문의 지위 같은 것 말고도 결혼 당사자의 직업이나 진로까지 고려해서 중매를 했던가봅니다.
(이야기와 별 상관없지만 짤방으로 출연한 음식 사진 :-)
먼저 미국으로 건너와서 의사로 일하던 신랑감이 혜정씨의 미국 병원에서의 펠로우쉽 자리를 알아봐주고 대학병원에서 일하게 되는 과정에서도 도움을 많이 주었다고 합니다.
미국에 먼저 와서 살고 있으니, 자기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올 신부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아이도 태어났지요.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부부 의대 교수...
그림같은 예쁜 집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아들아이...
이만하면 누가 봐도 행복한 가정이겠죠?
그러나...
혜정씨의 남편은 딴 여자와 바람이 났습니다.
부인과 아들에게는 아무런 애정도 남아 있지 않다며, 어느날 문자 한 통을 남긴채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새로운 여자와 영국으로 갔다고 하더군요.
사실 혜정씨 남편의 집안은 인도에서 방귀깨나 뀌는 집안이라 의사라는 직업이 없어도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도 먹고사는 걱정은 안해도 되는 상황이었다나봐요.
그런데 의사이기까지 하니, 여자들이 잘 꼬여들 것 같기는 해요 그죠?
혜정씨는 그 날부터 분노와 절망 사이를 오가며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몇 달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 개망나니 같은 남자와 결혼하게 만든 부모님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자신은 그렇다쳐도 아직 어린 아기인 아들을 가차없이 버리고 떠난 그 놈을 저주하기도 했대요.
하지만 혜정씨는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일과 아들아이, 그 둘만 생각하며 살기로 말이죠.
(혜정씨 가족과 함께 갔던 파스타 레스토랑에서 먹은 음식입니다.)
대학병원 의사로 일한다는 것은 참 스트레스가 많다고 합니다.
환자만 많이 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꾸준히 써내야만 조교수에서 부교수 정교수로 승진할 수 있는데, 환자와 가족들을 상대하는 와중에 차분히 논문을 읽고 쓰고 할 짬이 나질 않는다고 해요.
혜정씨의 전공은 소아암 치료 분야인데, 암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의사를 고소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해요.
고소가 겁나서가 아니라, 아직 어린 환자가 중병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고 때로는 환자가 사망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충격이자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아요.
(혜정씨가 일하는 대학병원 사진을 구글 이미지로 찾았습니다.)
인간사 새옹지마 라는 말이 한국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닌가봐요.
혜정씨는 자신의 직업이 너무나 큰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이라, 일을 하는 동안에는 괘씸한 남편의 일을 잊을 수가 있었다고 해요.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엄마를 기다렸던 아들아이의 초롱한 눈빛을 보며 기운을 내었다고 하구요.
작년 여름, 혜정씨는 아들 태웅이를 위해서 큰맘 먹고 열 시간을 운전해서 미국 동부의 한 해변으로 여행을 왔더랬습니다.
평소에 늘 바빠서 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가 힘들었기에 휴가 기간 동안 만큼은 아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마음먹고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해변까지 무작정 달려왔대요.
그리고 리조트 수영장에서 태웅이는 코난군과 친구가 되어 2박 3일 동안을 친하게 지냈습니다.
태웅이는 코난군보다 한 살 아래이지만, 지적 수준은 코난군과 비슷해서 (물려받은 유전자로 보나, 인도인의 높은 교육열로 보나 당연한 듯 :-) 둘이 잘 어울려 놀 수 있는 좋은 친구랍니다.
둘리양은 친동생처럼 이뻐하며 함께 놀아주니 세 아이들이 함께 하는 시간은 마냥 즐거웠습니다.
지난 여름에 만나 친구가 된 이후 이번 여름에 다시 만난 아이들의 모습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
아이들이 즐겁게 지낸 것만으로도 좋은 여행이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좋았던 건 혜정씨 어머님이 해주셨던 [엄마가 차려주시는 따신 집밥] 이었어요.
바쁜 혜정씨를 도와주시려고 어머니께서 미국에 와계셨는데, 황송하게도 매일 아침 저녁밥을 맛있게 만들어 주셨어요.
원래는 아침은 베이글이나 씨리얼로 간단히 먹고 점심과 저녁은 아이들 데리고 나가서 놀다가 사먹고 그러려고 했는데, 어느날 밖에서 놀다가 잠시 아이들 젖은 옷을 갈아입히려고 집으로 들어오니 온 집안에 맛있는 냄새가 그득~~한 거예요.
늘 바쁜 딸과 외로워 보이던 손주가 멀리서 온 친구네 가족들과 물놀이를 나간 사이에 집안을 깨끗이 치워놓으시고 밥을 지어놓으시고 소파에 앉아서 책을 보고 계시던 그 모습...
정갈한 집안 분위기와 온기 가득한 음식냄새...
요란하고 자극적인 음식 냄새가 아니라, 엄마가 정성으로 지은 집밥의 향기...
그, [엄마]의 온기 가득한 음식은, 인도의 낯선 향신료 냄새를 한국인의 밥과 국과 김치 냄새로 해석하여 느끼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었어요.
어릴 때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오면 깨끗하게 치워놓은 집과 구수한 밥냄새, 따스함이 담긴 엄마의 모습, 밥 먹어라 하시던 목소리...
혜정씨가 그러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먹는 커리나 난 같은 인도 음식은 인도 북부에서 많이 먹는 음식일 뿐이래요.
땅도 넓고 인구도 많은 인도에서는 각 지역별로 기후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먹는 음식도 많이 다르대요.
혜정씨의 고향인 인도 남부 지역에서는 육식은 거의 하지 않고 곡물과 야채를 이용한 음식을 해먹는다고 해요.
쌀가루와 밀가루를 적절히 섞어서 갖가지 향신료를 넣고 타코야끼 모양으로 구운 빵에다 숩인지 죽인지 모를 국물을 찍어 먹는 이 음식도 맛있었구요...
(인도식 이름은 너무 어려워서 제가 외울 수가 없었어요... ㅠ.ㅠ)
우리 나라 수제비 밀듯이 통밀가루를 반죽해서 밀대로 밀어서 기름에 튀겨 만든 건 Poori 라고 부른대요.
바사삭 하고 과자처럼 그냥 베어먹어도 맛있구요, 속에다 다른 음식을 채워서 쌈처럼 싸먹으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됩니다.
병아리콩을 주재료로 만든 죽같은 요리...
(이름을 못외워서 죄송...)
당근밥...
인도 밥은 우리 나라와 달리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더군요.
우리 나라 밥은 쌀밥, 잡곡밥, 등등으로 들어가는 곡류의 종류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데 반해, 인도 (적어도 남부지역) 에서는 잡곡은 물론이고 들어가는 야채나 향신료에 따라서 레몬밥, 당근밥, 오만가지 밥 이라고 이름붙혀 먹더만요.
이렇게 밥과 콩요리와 뿌리를 한 접시에 담아서 맨손으로 먹는 것이 인도식입니다만...
쌀이 찰지지 않아서 맨손으로 먹기가 참 어려워 보였어요 :-)
뿌리 속에 음식을 채워넣은 다음에는 맨손으로 잡고 먹기가 좋았어요.
저희집 코난군은 냄새와 맛에 아주 예민해서 조금이라도 비위에 안맞으면 못먹는 아이인데, 신기하게도 향이 강한 인도음식을 종류에 상관없이 모두 잘 먹었어요.
어쩌면 코난군은 인도어린이 태웅이와 친구가 되려는 운명을 타고 났을까요?
예전에 인도음식 레스토랑에 가서 먹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지만, [엄마]가 해주신 집밥이라 그랬는지,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이었지만 저희 가족 모두가 아주 맛있게 먹었어요.
참, 힌두어로도 엄마는 [엄마], 아빠는 [아빠]라고 부른대요.
신기하죠?
이것은 난 처럼 보이지만 난이 아니고, 뭐라더라...? 암튼 다른 이름인데, 난보다 얇고 통밀을 갈아 만들어서 담백하고 건강식이라며 혜정씨가 무척 자랑스럽게 말해주었어요.
인도 북부 사람들은 육식을 많이 하고, 기 라고 하는 기름진 식재료를 사용한 고열량 음식을 먹는대요.
그래서 북부 사람들은 남부 사람들에 비해 키가 크고 덩치도 크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성향도 과격하다고 해요.
남부 사람들은 빵보다는 쌀을 주식으로 먹고 육식은 거의 안하고 채소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체구가 작고 온순한 성향이라는군요.
그러고보니, 저희 골목 윗집에 사는 이웃이 저희 집에 초대받아 왔을 때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나기도 해요.
그 이웃 사람들도 참 예의바르고 온순한 사람들이라 친하게 지내고 있는걸 보면 저희 가족에게는 온순한 남부 인도인들이 잘 맞나봐요.
소한팝디 라고 하는 이것은 혜정씨 어머니가 인도에서 사오신 건데, 우리나라 엿 하고 살짝 비슷한 맛이예요.
달콤한 캔디가 실자락처럼 부서지는 식감인데 아주 달고 맛있었어요.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명왕성 국제시장에 가보니 이것과 같은 종류의 캔디를 팔더라구요.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예전에는 인도음식 코너는 후딱 지나쳐버렸는데 이제는 눈여겨 보고 알아보는 식재료가 많아졌어요.
인도 사람들은 수많은 종류의 곡물과 향신료를 구비해놓고 요리할 때 사용한대요.
작은 그릇에 덜어놓고 요리할 때 수시로 사용하구요, 찬장 안에는 큰 봉지 째로 보관을 하더군요.
저렇게나 많은 종류의 식재료를 안떨어지게 구비해놓고 살자면 저같이 기억력 부족한 사람은 표를 만들어놓고 늘 확인하며 살아야 할 것 같아요 :-)
저희집 명왕성에서 혜정씨가 사는 곳 까지 가려면 이렇게 산골짜기를 구비구비 돌아 다섯 시간 운전을 해야 하는데, 땅에서 구름이 생성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장관을 볼 수도 있답니다.
콜럼버스 오하이오는 참 마음에 드는 도시였어요.
한국 마트와 식당이 많은 건 당연하고, 일본 마트가 있고 거기서 싱싱한 횟감을 팔더라구요!
마트 한 켠 푸드코트에서는 우동과 라멘, 초밥 등을 저렴한 가격에 사먹을 수도 있었어요.
생선초밥 요리야 뭐...
재료만 싱싱하면 누구나 해먹을 수 있는 쉬운 요리죠.
아이스박스에 얼음 채워서 다섯 시간 고이고이 사들고 온 횟감으로 만든 초밥입니다.
인도 집밥도 맛있었지만, 생선초밥을 배불리 먹은 것도 이번 여행의 큰 득템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교훈:
엄마는 강하다.
엄마의 밥은 감동을 준다.
한국 엄마나 인도 엄마나, 엄마는 엄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