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독립투사 꼬랑지 내리기 작전

| 조회수 : 7,195 | 추천수 : 22
작성일 : 2011-08-13 00:15:59
집에서 나만 빼곤 아침엔 입맛들이 없어요.
어찌나 입맛이 없는지 반찬이 한가지건 진수성찬이건 밥알 세면서 밥을 먹지요.
솔직히 이해가 안돼요.
ㅋㅋ 난 아침에도 밥이 너무 맛있는데 말입죠.



남편이 고등학교시절 하숙이란걸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않아 하숙집 아주머니가 어머니께 전화를 했더랍니다.
도대체 이 학생은 뭘 해줘야 아침을 먹겠소? 묻더랍니다.



이상하게 닮지 말란건 꼭 닮는다죠.
결혼하고나서 첫아이 낳기 전에 열심히 빌었어요.
제발 식성은 닮지 말라고...
분명 천지신명삼신할매산신령님은 내 기도를 들으셨을텐데
입짧은것을 똑닮아서 태어난 아이들...
자라면 자랄수록 아빠 식성입니다.
그래도 작은아이는 제법 나를 따라 먹으려 하고 내가 맛있다하면 맛있는줄 알고 먹는데
큰아이는 절대 속지 않습니다. 근데 이게 정말 밉상이죠. 밥그릇을 뺏고 싶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내가 이렇게 도를 닦으며 밥을 먹게 해주는줄을 꿈에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큰아이가
오늘 아침상에서도 내 속을 긁어요.
꾹 참고 어금니를 꼭 깨물고 상냥하게 말해주었죠.
"줄때 먹엇!"



사실 뭘 해줘도 먹는건 똑같기에 아침엔 신경을 많이 쓰진 않는편이에요.
고기보다는 생선을 올리고 생선보다는 야채에 더 신경을 쓰죠.
남편은 생선을 그닥 좋아하지 않고 큰아이도 그렇기에...
그러나 밥상이란게 떡하니 자리잡고 있어야할게 안보이면
나머지가 아무리 맛있대도 소용없나봅니다.
이런 우라질레이션스트레스만빵베이커리같으니라고...



오늘 아침엔 고기,생선 대신에 계란찜을 올렸어요.
남편이 이른 아침을 먹고 출근하고 난뒤
방학이라고 무대뽀정신으로 밤11시까지 뒹굴던 아이들이 일어날 기약없이 자길래
반찬들은 모두 뚜껑을 덮어두고 나는 다른 일을 합니다.
하나둘 마지못해 나와 밥상을 받긴 했는데 가만보니 뚜껑을 모두 열지 않고 딱 코앞에 있는것만 열었나봐요.
난 모른척했어요.
밥상이 지금까지 기다려준것도 어디인데 밥통에서 밥을 퍼준것도 어디인데 뚜껑정도는 열어야지 싶어서...

그랬더니 큰아들이 두어번 뜨던 수저를 놓고 그만 먹겠답니다.
반찬이 없어서 오늘은 하루종일 단식을 해야겠답니다.
(여기서 잠깐! 그동안 나는 무슨일이 있어도 밥을 먹였어요. 하다 못해 빵이라도 먹였죠.
하늘이 내려앉아도 아이들, 남편끼니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이녀석은 아마도 엄마가 밥을 먹이기 위해 새로운 반찬이라도 내줄줄 알았나봐요.)
나도 안하던 짓을 했어요.

"그래? 정말 저녁까지 굶을 수 있어? 간식도 안먹고? 그래서 넌 뭘 얻는건데?"

"제가 단식에 성공하면 존중해주세요. 저도 다 컸으니까 제 의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도 결심이 섰어요"



전............. 이녀석이 독립운동 하겠다는건줄 알았습니다.
헐............. 근데 이녀석은 식사시간이 한시간만 미뤄지면 배고파 죽는 녀석입니다.
입이 짧아 뱃골이 작은지 암튼 자주 조금씩 뭔가를 먹어야하는 넘입니다.
나는 아는 그 사실을 그넘은 모릅니다.ㅋㅋㅋㅋ



"그래! 너가 성공하면 엄마가 너의 의지를 존중해주겠어. 그런데 실패하면 어떻게 하니?"

"그거야 어쩔수 없이 엄마한테 꼬리 내려야겠죠?"

참.... 기가막히고 코가막힌다 그죠?



어쨌거나 두숫갈 먹은 단식투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일상생활은 그대로 유지하고 물, 우유는 마시되 매실등의 단 음료는 마시지 않기로 했어요.
아침은 입맛이 없으니 랄랄라 단식하시고
점심은 작은아이와 제가 먹는 밥상을 멀뚱히 바라보며 여유를 부립니다.
그.........러........나...........



오후가 되니 슬슬 계산이 틀려지는 녀석입니다.
분명 가뿐할 줄 알았는데 아닌가봅니다.
자꾸 물배를 채우는걸 보니 배가 고픈거지요.
이럴땐 시어른들과 같이 안사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애 물배채우게 하는 비정한 에미 될 뻔 했습니다.



문제는 4시입니다.
이녀석들 4시엔 수영장에 갑니다.
득달같이 다녀와서는 냉장고를 털어먹습니다.
수영 이후의 배고픔을 계산안했나 봅니다.

어제 주문받기를 "내일은 핫케잌 해주세요~" 이랬거든요.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룰루랄라 우아하게 핫켘 반죽을 합니다.
절반은 아빠 간식용으로 머핀을 굽고
절반은 아이들 들어올 시간에 맞추어 팬을 달구고 서서히 굽습니다.
음~
내가 맡아도 편지 한줄 써본적없는 사람이 "핫켘을 구우며"라는 수필을 핫켘냄새 폴폴나게 써내려갈것 같은 맛있는 향기입니다.







문열고 들어섰을때 미처 계산하지 못한 향기에 절망했을겁니다.
갑자기 발소리를 쿵쿵거리며 수영복주머니를 던지듯이 내려놓고는 구석으로 찌그러집니다.
이때 난 아이의 단식을 방해하지 않는 고상한 엄마여야 합니다.
큰아이를 자극하지 않고 작은아이에게 추가 주문을 받습니다.


"민탱아, 오늘은 핫켘을 달지않게 했는데 잼을 발라줄까, 아님 꿀을 뿌려줄까?"
"아무거나요..."
"아! 우리 여기에 초코시럽 뿌려서 먹을까?"
"그러시던지요... ㅡ,.ㅡ"
"그래 그럼 우유에 초코시럽 뿌린 핫켑 나갑니다~"



찌그러져있던 독립투사가 슬쩍 접시를 쳐다봅니다.
"안돼, 엄마의 방해작전에 말려들순 없어"
"이거 너희들이 어제 주문한거라 해준건데? 어제 핫켘 해달랬잖아"
"맞다... 그걸 생각안했네...."

지넘이 접시위에서 이쁜 갈색얼굴을 하고 방실방실 웃고 있는 핫켘님을 보고
더 이상 어뜨케 할것이여 어림택도 없지...



그러나 엄마는 아이의 단식을 방해하지 않는 고상한 엄마여야합니다.

"오늘은 그렇고 내일 또 해줄께! 오늘은 잘 견뎌봐 알았지?"

더 쿵쿵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간 독립투사....
이불을 둘러쓰고 울부짖습니다.
"앙~~~~~ 내맘도 몰라주고, 아무도 내생각도 안해주고, 엄마는 오늘같은날 핫케잌은 해가지고.... 엉엉~ "

천천히 하나, 둘, 셋,,,,,, 열까지 셉니다.
그사이 독립투사는 절망감을 충분히 느꼈을겁니다.
살포시 옆에 앉아서 손목을 잡습니다.


"준탱아! 너무 배가 고프지? 엄마는 너를 존중하느라고 같이 먹자고 안한거야. 너가 여태 굶은게 너무 억울하잖아.
그래도 배고프고 힘드니까 그냥 먹을까? 가자 간식 식는다"

살짝 손목 잡아당기니.............. 못이기는척 일어납니다.
발을 질질 끌며 따라옵니다.
.
.
.


거기까지입니다.
이녀석의 독립운동은...^^;;

그 다음엔요?
뭐 물론 접시까지 씹어먹었지요.
오늘 저녁은 라면이나 먹을건데 넌 안되겠지? 물었더니
당연히 먹어야지요. 이러더군요.
우유 두잔을 연거푸 마시고 저녁도 바로 주라네요.

ㅋㅋㅋ
라면에 밥까지 잘 말아먹고 다시 행복해졌어요.



"에이~ 핫케잌때문에 실패했어. 담에 또 해서 꼭 성공할꺼야!"

"꼬랑지 내렷! 워디서 또 단식투쟁한다고 간보는거얏!"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백세만세
    '11.8.13 12:30 AM

    큰아이가 몇살인지 몰라도 단식 투쟁하겠다는 말에 굉장히 화가 났을텐데

    참 화 안내고 차분하게 잘 하셨네요.

  • 2. 가브리엘라
    '11.8.13 1:07 AM

    얼마나 재미있는 글인데 이렇게 뜸하게 올리시나요? ^^
    저는 우리아들놈 어릴때 무지하게 말안듣고 속썩일때 왜 저런 현명한 엄마가 못됐던건지..
    아닌가? 아..나도 좋은 엄마될려고 무지하게 노력했던거 같은데..
    울아들놈이 너무 쎈녀석이었던거야 분명히..
    원글님 승!

  • 3. 카페라떼
    '11.8.13 5:34 AM

    깨작깨작먹는 밥그릇을 여러번 치워본 경험이 있는저로썬 공감백배입니다.
    단지 다른점은 저는 화를 무섭게 내면서 치워버린다는 점이지만요^^
    저도 한번 님의 방법으로 대처해봐야겠어요.
    아마도 우리아들은 바뀐 엄마의 태도에 일단 놀라서 꼬랑지를 내릴듯합니다.ㅋㅋ

  • 4. 준n민
    '11.8.13 9:52 AM

    요 며칠은 한결 시원하네요
    아침에도 비가 한바탕 퍼붓더니 선선한게 가을같아요

    백세만세님... 아이들과는 어떤 싸움이든지 초반 10분의 마인드컨트롤이 정말 중요한것 같아요. 저도 사람인지라 생각이 짧은날은 여지없이 같이 버럭거리게 되고 아이는 말대답하고... 그러다보면 저걸 내가 낳았나 싶은 생각도 하게 되지요. 그래도 어제는 아침에 갓담근 얼갈이김치가 맛있게 되서 조금 너그러웠나봅니다. ^^

    가브리엘라님... 제 생활도.... 백조예요. 우아한 수면위의 모습은 전시용이구요. 물속에서는 방정맞게 발놀림이 계속된단 말입니다.^^ 저도 아이들때문에 일희일비하는 평범한 엄마거든요. 그래도 이런 경험을 한번씩 올리는 이유는 저도 또한 그렇게 저렇게 한번씩 읽는 글들이 문득 생각나면 가끔 현명한듯한 엄마가 되기도 해서요.^^ 그런데 말씀드렸다시피 백조과 엄마이므로 가끔씩은 아이들에게 깨박살나는 이야기도 올려볼께요. 울집엔 웃지못할 이야기도 많이 생긴답니다.^^

    카페라떼님... ㅋㅋㅋ 그러게나 말입니다. 애들은 평소와 다르게 나가면 일단 움찔해요. 엄마가 왜그러시나 싶을거에요.ㅋㅋ 일단 아이가 머리가 커지니 제가 버럭거리면 같이 부딪히는 문제가 생기네요. 그래서 토닥거리고 나면 음식신공을 발휘할 일이 잦아집니다. ^^

  • 5. "찌니호야
    '11.8.13 11:45 AM

    ㅎ.ㅎ전 세살박이 둘째 아드님과 슬슬 조짐이 보이는데요..
    순한 첫째 아드님과는 달리 자기 주장도 확실하고요..
    참고해야겠어요..승리 축하드려요~!!!

  • 6. candy
    '11.8.13 12:10 PM

    워디 라디오프로라도 보내심이....^^
    동감100%예요...

  • 7. 준n민
    '11.8.13 10:18 PM

    찌니호야님... ㅎㅎ 차라리 그시절이 그립습니다요...^^

    candy님... 여기다 하소연하느라 김새버렸어요.ㅋㅋ 다음엔 라디오에 도전해볼까요?

    다이아님... 정말 부럽습니다. 밥잘먹는 아이들요.^^ 남의나라 이야기같아요.ㅋㅋㅋ

  • 8. 엘레나
    '11.8.14 10:38 PM - 삭제된댓글

    개인적으로 사진이 많아야 글을 읽는 편인데..^^;
    왠지 끌려서 다 읽었더니.. 오마나.. 제 눈앞에서 막 벌어진 일처럼 생생하네요.
    준n민님.. 정말 차분한 엄마시네요.
    저같았음 단식투쟁에서부터 불같이 버럭!!했을텐데...... 하하하하;;

  • 9. 준n민
    '11.8.16 7:43 AM

    엘레나님... ㅎㅎㅎ 99번은 저도 버럭버럭해요. 도저히 부처님 노릇은 안돼요^^

  • 10. 사그루
    '11.8.16 8:56 AM

    25% 안넘으면 기분 좋게 대청소 하려고 했더니......
    에잇!!

  • 11. jasmine
    '11.8.16 9:13 AM

    아....너무 재밌어...ㅋㅋㅋ

    제 딸이 그집 큰놈처럼 아침에 딱 두 숫가락인데...저는 두 숫가락만 줘요.
    스트레스 받지말고 원하는대로 해주심 어떨까요?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걍 인정해주세요.
    그래도 지속적으로 아침을 쭉 먹다보면 아침을 먹는 인간으로 바뀔거라고 믿어요....^^;;

  • 12. 준n민
    '11.8.16 6:17 PM

    사그루님... 핫케잌은 드셨나요? 핫케잌 믹스를 한번 써봤더니 너무 달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집에서 하나씩 꺼내어 만들고 있답니다. 집에서 하는 베이킹은 그런게 좋아요. 내 맘대로...ㅋㅋ

    jasmine님... 그렇게 딱 두숫갈만 주고 싶지만 키 안클까봐 못하겠더라구요. 그데 지금도 정말 궁금한게 쟈스민님네 딸은 어떻게 그것먹고 컸을까 하는거... 울 애도 그럴수만 있다면 저도 참 좋겠는데요. ㅋㅋㅋ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34488 국간장을 끓였어요 7 보석상자 2011.08.15 5,121 10
34487 여름음료 몇개와 집에서 만드는 스테이크 20 꿈꾸다 2011.08.15 12,850 18
34486 중독성 대박 과카몰리-사진 보여요~ 8 LA이모 2011.08.15 10,247 3
34485 늙은 호박 감자를 넣어 더 맛있는 낙지 수제비! 49 경빈마마 2011.08.15 7,986 19
34484 주말 고객들 마음을 읽어 준비하는 밥상 :: 쌈밥, 파전, 쌈장.. 49 프리 2011.08.13 14,089 17
34483 오징어 황태 초무침^^ 14 투동스맘 2011.08.13 15,975 12
34482 독립투사 꼬랑지 내리기 작전 49 준n민 2011.08.13 7,195 22
34481 일명 '빨간고기' 7 byulnim 2011.08.12 9,071 9
34480 의도적 노력의 밥상 :: 쌈밥 먹기, 쌈밥에 어울리는 반찬들, .. 16 프리 2011.08.12 15,538 18
34479 오늘 아침 메뉴(옥수수와 토마토 쥬스) 6 금순이사과 2011.08.12 7,458 9
34478 요즘 감자로 자주 만들어 먹는 것...^^ 49 보라돌이맘 2011.08.11 27,407 2
34477 다시 빵굽기 :: 카스테라, 골뱅이무침, 콩나물 키우기 SOS 34 프리 2011.08.11 14,769 29
34476 멀고도 험한 자급자족의 길-스압! 49 차이윈 2011.08.11 12,887 43
34475 정성이 뻗친 저녁 밥상 :: 규아상, 차돌박이 가지볶음 34 LittleStar 2011.08.11 19,081 36
34474 실미도 전투식량 시즌2 57 발상의 전환 2011.08.11 13,486 1
34473 독거어린이의 반성문 21 최살쾡 2011.08.11 9,216 15
34472 텃밭에서 장 봐오기 (재도전 이틀만에) 13 양평댁 2011.08.11 6,078 19
34471 이런 된장..된장의 향연입니다(개 있음) 12 LA이모 2011.08.11 6,270 11
34470 여름음식: 통닭백숙, 하야시라이스, 김치말이국수 - >'.. 17 부관훼리 2011.08.11 11,213 46
34469 미치겠어요 도와주세요. 8 양평댁 2011.08.11 9,436 8
34468 반식 다이어터 삼식이 도시락 시리즈 외 스압 스압! ㅋ 38 bistro 2011.08.10 21,046 37
34467 어르신들 좋아하실 반찬 몇가지... 아들넘들 싸!파리 여행기 23 준n민 2011.08.10 27,061 39
34466 나님!!! 약속이라눈거 지키고 사~~~는 뇨자얌 '0' 4 셀라 2011.08.10 6,898 9
34465 탕수육과 텃밭자랑^^ 50 오늘 2011.08.10 16,868 57
34464 밥통으로 조청 만들기 17 요술봉 2011.08.09 27,593 13
34463 저두 밥~해먹고 살아효^^ 11 셀라 2011.08.09 8,548 13
34462 두부로 만든 콩국수 11 요술봉 2011.08.09 7,980 12
34461 달콤하고 고소한 팥빵과 호두팥빵을 만들어 봅니다 ㅋㅋ 13 구박당한앤 2011.08.08 10,11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