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나 입맛이 없는지 반찬이 한가지건 진수성찬이건 밥알 세면서 밥을 먹지요.
솔직히 이해가 안돼요.
ㅋㅋ 난 아침에도 밥이 너무 맛있는데 말입죠.
남편이 고등학교시절 하숙이란걸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않아 하숙집 아주머니가 어머니께 전화를 했더랍니다.
도대체 이 학생은 뭘 해줘야 아침을 먹겠소? 묻더랍니다.
이상하게 닮지 말란건 꼭 닮는다죠.
결혼하고나서 첫아이 낳기 전에 열심히 빌었어요.
제발 식성은 닮지 말라고...
분명 천지신명삼신할매산신령님은 내 기도를 들으셨을텐데
입짧은것을 똑닮아서 태어난 아이들...
자라면 자랄수록 아빠 식성입니다.
그래도 작은아이는 제법 나를 따라 먹으려 하고 내가 맛있다하면 맛있는줄 알고 먹는데
큰아이는 절대 속지 않습니다. 근데 이게 정말 밉상이죠. 밥그릇을 뺏고 싶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내가 이렇게 도를 닦으며 밥을 먹게 해주는줄을 꿈에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큰아이가
오늘 아침상에서도 내 속을 긁어요.
꾹 참고 어금니를 꼭 깨물고 상냥하게 말해주었죠.
"줄때 먹엇!"
사실 뭘 해줘도 먹는건 똑같기에 아침엔 신경을 많이 쓰진 않는편이에요.
고기보다는 생선을 올리고 생선보다는 야채에 더 신경을 쓰죠.
남편은 생선을 그닥 좋아하지 않고 큰아이도 그렇기에...
그러나 밥상이란게 떡하니 자리잡고 있어야할게 안보이면
나머지가 아무리 맛있대도 소용없나봅니다.
이런 우라질레이션스트레스만빵베이커리같으니라고...
오늘 아침엔 고기,생선 대신에 계란찜을 올렸어요.
남편이 이른 아침을 먹고 출근하고 난뒤
방학이라고 무대뽀정신으로 밤11시까지 뒹굴던 아이들이 일어날 기약없이 자길래
반찬들은 모두 뚜껑을 덮어두고 나는 다른 일을 합니다.
하나둘 마지못해 나와 밥상을 받긴 했는데 가만보니 뚜껑을 모두 열지 않고 딱 코앞에 있는것만 열었나봐요.
난 모른척했어요.
밥상이 지금까지 기다려준것도 어디인데 밥통에서 밥을 퍼준것도 어디인데 뚜껑정도는 열어야지 싶어서...
그랬더니 큰아들이 두어번 뜨던 수저를 놓고 그만 먹겠답니다.
반찬이 없어서 오늘은 하루종일 단식을 해야겠답니다.
(여기서 잠깐! 그동안 나는 무슨일이 있어도 밥을 먹였어요. 하다 못해 빵이라도 먹였죠.
하늘이 내려앉아도 아이들, 남편끼니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이녀석은 아마도 엄마가 밥을 먹이기 위해 새로운 반찬이라도 내줄줄 알았나봐요.)
나도 안하던 짓을 했어요.
"그래? 정말 저녁까지 굶을 수 있어? 간식도 안먹고? 그래서 넌 뭘 얻는건데?"
"제가 단식에 성공하면 존중해주세요. 저도 다 컸으니까 제 의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도 결심이 섰어요"
전............. 이녀석이 독립운동 하겠다는건줄 알았습니다.
헐............. 근데 이녀석은 식사시간이 한시간만 미뤄지면 배고파 죽는 녀석입니다.
입이 짧아 뱃골이 작은지 암튼 자주 조금씩 뭔가를 먹어야하는 넘입니다.
나는 아는 그 사실을 그넘은 모릅니다.ㅋㅋㅋㅋ
"그래! 너가 성공하면 엄마가 너의 의지를 존중해주겠어. 그런데 실패하면 어떻게 하니?"
"그거야 어쩔수 없이 엄마한테 꼬리 내려야겠죠?"
참.... 기가막히고 코가막힌다 그죠?
어쨌거나 두숫갈 먹은 단식투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일상생활은 그대로 유지하고 물, 우유는 마시되 매실등의 단 음료는 마시지 않기로 했어요.
아침은 입맛이 없으니 랄랄라 단식하시고
점심은 작은아이와 제가 먹는 밥상을 멀뚱히 바라보며 여유를 부립니다.
그.........러........나...........
오후가 되니 슬슬 계산이 틀려지는 녀석입니다.
분명 가뿐할 줄 알았는데 아닌가봅니다.
자꾸 물배를 채우는걸 보니 배가 고픈거지요.
이럴땐 시어른들과 같이 안사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애 물배채우게 하는 비정한 에미 될 뻔 했습니다.
문제는 4시입니다.
이녀석들 4시엔 수영장에 갑니다.
득달같이 다녀와서는 냉장고를 털어먹습니다.
수영 이후의 배고픔을 계산안했나 봅니다.
어제 주문받기를 "내일은 핫케잌 해주세요~" 이랬거든요.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룰루랄라 우아하게 핫켘 반죽을 합니다.
절반은 아빠 간식용으로 머핀을 굽고
절반은 아이들 들어올 시간에 맞추어 팬을 달구고 서서히 굽습니다.
음~
내가 맡아도 편지 한줄 써본적없는 사람이 "핫켘을 구우며"라는 수필을 핫켘냄새 폴폴나게 써내려갈것 같은 맛있는 향기입니다.


문열고 들어섰을때 미처 계산하지 못한 향기에 절망했을겁니다.
갑자기 발소리를 쿵쿵거리며 수영복주머니를 던지듯이 내려놓고는 구석으로 찌그러집니다.
이때 난 아이의 단식을 방해하지 않는 고상한 엄마여야 합니다.
큰아이를 자극하지 않고 작은아이에게 추가 주문을 받습니다.
"민탱아, 오늘은 핫켘을 달지않게 했는데 잼을 발라줄까, 아님 꿀을 뿌려줄까?"
"아무거나요..."
"아! 우리 여기에 초코시럽 뿌려서 먹을까?"
"그러시던지요... ㅡ,.ㅡ"
"그래 그럼 우유에 초코시럽 뿌린 핫켑 나갑니다~"
찌그러져있던 독립투사가 슬쩍 접시를 쳐다봅니다.
"안돼, 엄마의 방해작전에 말려들순 없어"
"이거 너희들이 어제 주문한거라 해준건데? 어제 핫켘 해달랬잖아"
"맞다... 그걸 생각안했네...."
지넘이 접시위에서 이쁜 갈색얼굴을 하고 방실방실 웃고 있는 핫켘님을 보고
더 이상 어뜨케 할것이여 어림택도 없지...
그러나 엄마는 아이의 단식을 방해하지 않는 고상한 엄마여야합니다.
"오늘은 그렇고 내일 또 해줄께! 오늘은 잘 견뎌봐 알았지?"
더 쿵쿵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간 독립투사....
이불을 둘러쓰고 울부짖습니다.
"앙~~~~~ 내맘도 몰라주고, 아무도 내생각도 안해주고, 엄마는 오늘같은날 핫케잌은 해가지고.... 엉엉~ "
천천히 하나, 둘, 셋,,,,,, 열까지 셉니다.
그사이 독립투사는 절망감을 충분히 느꼈을겁니다.
살포시 옆에 앉아서 손목을 잡습니다.
"준탱아! 너무 배가 고프지? 엄마는 너를 존중하느라고 같이 먹자고 안한거야. 너가 여태 굶은게 너무 억울하잖아.
그래도 배고프고 힘드니까 그냥 먹을까? 가자 간식 식는다"
살짝 손목 잡아당기니.............. 못이기는척 일어납니다.
발을 질질 끌며 따라옵니다.
.
.
.
거기까지입니다.
이녀석의 독립운동은...^^;;
그 다음엔요?
뭐 물론 접시까지 씹어먹었지요.
오늘 저녁은 라면이나 먹을건데 넌 안되겠지? 물었더니
당연히 먹어야지요. 이러더군요.
우유 두잔을 연거푸 마시고 저녁도 바로 주라네요.
ㅋㅋㅋ
라면에 밥까지 잘 말아먹고 다시 행복해졌어요.
"에이~ 핫케잌때문에 실패했어. 담에 또 해서 꼭 성공할꺼야!"
"꼬랑지 내렷! 워디서 또 단식투쟁한다고 간보는거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