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금요일,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더군요.
그리고 지금은 밤입니다. 저희 사는 여기는 방고래 구들장 같은 게 있을 리 없는 아파트이지만^^ 난방 단속하는 걸 깜빡 잊은 바람에 아직까지도 발바닥 아래가 제법 뜨끈합니다.
어제 아이가 엄마 핸드폰 충전 안 해도 돼? 툭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그 말에 괜스리 핸드폰을 붙잡고 이것저것 눌러보는데 피식 웃음이 나더군요.
왜 그러느냐, 아이는 묻고
전 먹는 거 사진이 너무 없어 그런다고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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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야 항상 챙겨 먹습니다. 지난 주에 올린 글의 그것들이랑 다름이야 없지만요. 날씨 탄다고 팬케이크와 수프(스프나 슾 말고 수프, 할 때 떠오르는 그 수프 말입니다^^) 정도가 더해졌을 뿐입니다.
평일엔 점심을 다 따로 먹습니다. 그러고보니 새삼스럽네요.
하하 참...우리 J 밥을 준단다. 학교에서. 애 점심을 챙겨 준단다. 밥도 주고 국도 주고 김치와 채소 반찬을 고루고루 준단다. 나 이제 한식으로 도시락 안 싸도 된단다.
아이의 학교 급식, 그건 생각만으로도 제 입가에 ‘아무도 모른다’의 웃음을 추릅추릅 흐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적고 있자니 그때의 그 해방의 아우성이 제 속내의 방방곡곡에 다시 마구 울려 퍼지는 것 같네요...^_^
이 정도면 달랑 세 식구 저녁 식사 해서 차리는 거, 일도 아닌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반타작 했나 봅니다. 월요일엔 해 먹었고, 화요일엔 제가 퇴근이 늦어서 둘이 뭐 사먹으라고 했고(뭐 사먹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수요일에도 제가 여의치 않아서 둘이 짜장면을 사 먹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목요일엔 저녁을 지어 먹었습니다.
오늘 저는 저녁을 차렸지만, 만일 어젯밤 아이의 말에 무심히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사진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제가 먼저든 남편이 먼저든, 저녁 간단히 사 먹고 말자는 말이 나왔을 거고 그 말에 따랐을 겁니다.
그렇더라고요. 여러모로 집에서 해 먹는 밥이 유리할 게 없어 보이더라고요. 이것저것 따지며 사다 보면 세 식구 한 끼 밥에 드는 돈이 적잖고, 그런데 길 양쪽엔 밥집이 지천이고, 그 중엔 못 먹어 본 것들도 많고, 결정적으로 저희가 밥 먹는 일에 그리 대단한 기대를 하거나 까다로운 기준을 갖다 대는 치들도 아니니 외식이냐 아니냐를 놓고 별 고심할 거 없으니까요.
아까도 밥을 하면서 또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그럼 난 왜 밥을 하고 있을까? 밖은 못 미덥고 난 미더워서? 요리하는 게 좋아서? 요가가 심신의 숙련이라던데, 나에게 요리가 바로 그런 거? 아니면 ‘내 집 내 식구들과 내 마음대로‘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고 싶어서?
답은 모르겠고, 그냥 오늘 제가 밥을 하고 싶었던 이유 정도는 알 것 같았습니다.
오늘 바깥은 비에 젖어 축축했습니다. 어제보다 빨리 해가 졌고, 제가 오갈 수 있는 길가의 밥집들은 그냥저냥 시시해보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금요일이었습니다. J 녀석 숙제가 없거나 있어도 주말 이틀이면 할만할 금요일. 그러므로 식탁 대신 밥상에서 영화 한 편 틀어 놓고 밥 한 수저 뜨는 데 몇 분이 걸려도 바쁘지 않을 금요일. 전장에 나가는 군인들이 무기나 식량을 채우듯 심각하고 비장하게 배를 채우지 않고, 바닥을 기는 로빳데리 상태로 굴어도 괜찮을 법한 느슨한 저녁이었던 겁니다. 이런 즈질^^ 정신머리로 저는 정말 대충 저녁을 해 먹고 UP을 보았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저는 저대로, 보통 때 같으면 영화가 중간을 넘어가면 ‘먼저 간다’ 손을 흔들며 잠에 빠져들고 마는 남편도 오늘은 (아니!) 뜬눈이었습니다. 영화가 두 시간은 넘었을 텐데, 그때까지도 저희는 밥상을 물리지 못했습니다. 보통 때의 네 배? 다섯 배?....
아래는 그 반타작 저녁 밥상에 오른 먹을 것들입니다. 한 번에 한 접시만 찍어 놨네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저희 밥상이 매우 단촐합니다.
저희 가족은 밑반찬을 잘 안 먹습니다. 남편은 제가 만났을 때부터 반찬 종류는 극소량만 먹는 식습관을 가졌고, 저는 저대로 갓 나온 채소나 심심한 곡물 콩과 두부를 좋아하는 식성을 가졌고, 한국 식당이나 한국 식료품 가게에 흔하지 않은 곳에서 입맛을 다진 J는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이 곧 한국 음식 전부인 식성을 가지게 되었고...그러다보니 젓갈이나 마른 반찬은 없어도 그만이고,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반찬은 없어서 그만이고...그렇게 된 것이죠^^;;;;
아무튼, 월요일엔 닭고기로 요리를 했습니다. 국 하나 더했고, 살짝 찐 두부 한 모와 오이 당근과 김 정도를 상에 올린 것 같습니다. 김치와 매실장아찌가 있었고요.
그 얼마 전 파인애플을 싸게 팔길래 한 송이? 샀습니다. 벗기고 깎아 보니 빨리 먹어야겠길래 어서 먹이고 고리 두 개쯤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걸 보고 생각이 나서 닭고기 가슴살을 사다 만든 겁니다.
이름도 없는 요리인데...카레 가루를 버무려 파인애플과 함께 넣은 닭고기 가슴살 볶음쯤 되려나요. 카레와 닭고기의 조합이야 유명한데, 제가 해 먹는 건 카레와 닭고기를 푹 끓이는 게 아니고 닭고기에 카레 가루를 버무려 볶는 겁니다.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닭고기를 파인애플 즙에 재워둡니다. (술이나 우유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파인애플은 굵게(두툼하게) 썰어 둡니다.
:닭고기에 레몬후추나 굵은 통후추를 뿌립니다. 소금도 뿌려줍니다.
:카레 가루를 묻힙니다. 사진에 보이는 붉은 것이 고춧가루가 아니고 카레 가루입니다. 이때는 노랑 카레가루 말고 반달루(요즘 보니 인델리에서 반달루 카레 가루를 팔더군요. 전 그걸 썼습니다.)처럼 토마토 소스 베이스의 매콤하고 새콤한 가루를 쓰는 게 더 맛있습니다. 노란 강황이 많이 들어간 카레 가루를 버무려 볶으면 조금 텁텁한 맛이 납니다.
:닭고기에 각종 마른 허브를 뿌려 가볍게 버무려줍니다. 없으시면 샐러리라도 다져 씁니다.
:닭고기에 구운 마늘을 뿌립니다(없으면 생마늘을 굵게 다져 쓰는데 구운 마늘이 좋습니다)
:올리브유와 포도씨유를 반반 섞어 두르고 센 불에 닭고기를 볶아줍니다. 반 정도 익었으면 파인애플을 넣고 불을 줄여 계속 볶아줍니다. 아까 그 붉은 빛은 어디론가 가고 옅은 주홍이나 진한 노랑이 보일 겁니다.
:파인애플이 뭉글게 되면 즙이 나오고 그 즙이 닭고기에 배이게 합니다. 충분히, 부드럽게 익혀줍니다.



이렇게 해서 먹으면 됩니다. 감자처럼 보이는 저것이 파인애플인데, 부드럽고 달콤해서 반달루 커리에 매콤새콤하게 버무려진 닭고기와 잘 어울립니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카레 맛이 강해서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맛있게 먹습니다.
목요일의 한 접시는 상추 살짝 무침^^입니다.
동네 마트에 갔더니 갈치 네 마리에 팔천원을 받길래 사 왔습니다. 두툼하고 큰 갈치 구워 주면 보드랍다고, 한국 갈치 정말 맛있다고, 좋아하며 잘 먹는 녀석인 줄은 알지만 이사 와서는 아직 한 번도 못 샀습니다. 아이와 제가 기억하는 그런 맛을 낼 것만 같은 갈치는 너무 비싸더군요. 자잘한 갈치를 씻어 말렸다가 굽는데, 팬에 들러 붙고 난리가 나서 그 사진은 없고, 이것 뿐입니다.
그날 갈치랑 같이 상추를 샀습니다. 한 봉지에 천 구백원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깜짝 세일인지 천원에 팔길래 냉큼 집어 온 겁니다. J 녀석 채소 많이 먹이고 싶을 때면 이렇게 자주 해 줍니다. 열 살 쯤 되었을 때 한국 갈비집에서 상추 무침을 아주 맛있게 먹는 걸 보고 그때부터 자주자주 해 주었습니다.
설명 드릴 게 없는 요리라^^;; 짧게 적습니다.
:상추를 깨끗이 씻습니다. 이게 제일 중요한 공정인 것 같습니다.^^
:상추의 물기를 천천히 촘촘히 닦고, 들기름과 참기름을 1:1 정도로 넣습니다.
:깨소금 종류를 듬뿍 뿌립니다. 마늘 갈아 둔 것도 조금 넣습니다.
:고춧가루를 약간 뿌립니다. 생략해도 됩니다.
:아이 줄 거니까 삭힌 강한 액젓 같은 것보다는 국간장이나 해물간장을 마지막에 조금 뿌립니다. 동시에 매실즙도 조금 뿌려 줍니다. 싱겁다고 그러면 원래 싱거운 거라고 말하고 주고, 아무 맛도 안 난다고 하면 맛나게 하면 상추가 물러서 못 쓴다고 우겨서 먹입니다.


이건 딸기.
그 전날 딸기를 봤습니다. 겨울에 한국 딸기라니!!! 싶어 한 팩을 샀습니다. 정말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달고 폭신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솜사탕 딸기. 그리고 이날 남편이 두 팩을 더 사왔습니다. 두 팩에 오천원을 받더라나요.
그렇죠. 물러버린 딸기가 섞였을 가능성이 매우 컸겠죠. 그런 걸 잘 모르거나, 알아도 가격에 끌려 사 온 거였겠지요. ^^ 물러버린 부분을 베어 내고 할머니께서 백화점 구경 다녀오시면서 받아다 주신 접시에 담아 주었습니다.
이런 걸 먹다 미국 딸기를 먹었으니..
그러게..그 딱딱한 딸기라니..
저희는 이런 소릴 하며 황송하게 딸기를 먹는데,
J 녀석은 뭔가 튕기는 딴소리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근데 난 미국 딸기도 좋았어 엄마. 그건 휘핑 크림 해서 먹으면 맛있잖아.
에..뭐 그렇긴 하지. 이 딸기는 휘핑 크림까지 얹으면 좀 뭐랄까...오바라 할 수 있지.
난 한국 딸기도 좋은데 미국 딸기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애.
그래라 그럼. 근데 엄마는 이 딸기만 먹을래. 너나 미국 딸기 마니 머거.
(남편 피식..)

그리고 금요일 오늘 해 먹은 한 접시입니다.
어제 사 온 갈치가 자잘하게 여럿이라, 오늘도 먹어야했습니다.
그래도 뭔가 한 가지쯤은 어제랑 다른 걸 해 주고 싶었는데 마트에 다녀 올 시간은 없고...
선반을 보니까 참치캔이 있길래 이걸 했습니다.
참치 전이나 참치 동그랑 땡 못하는 주부는 찾기 어렵겠지만^^적어는 봅니다.
이사 오기 전에는 참치로 밥반찬은 잘 안 만들었습니다. 샌드위치 속으로 쓰는 게 다였지요. 이사 와서 아이가 참치 김밥 좋아하는 거 보고 해 먹기 시작했고, 거기선 구하기 어렵지 않았던 게살(크랩 미트)이 여기선 구하기 쉽지 않은 줄 알고 나서부터 크랩 케잌 대신 참치로 엇비슷하게 해 주게 되었습니다. 맛이야 같을 수 없지만, 영양 따진답시고 가끔씩 해 줍니다. 아래가 그 크랩케잌 비슷하게 만든 겁니다.
:참치 기름을 빼 줍니다.
:원래는 샐러리라야 하는데, 마트에 갈 시간이 없어서 양파로 대신했습니다. 양파가 들어가면 질척해지니까 참치 전이 되기 쉬워서 가급적이면 샐러리를 쓰면 좋겠습니다.
:파의 푸른 부분을 잘게 썰어 뿌립니다. 잘게 썰 시간이 없어서 오늘은 마구잡이로 썰었습니다. 파의 안쪽 즙으로 참치 반죽에 끈끈함이 돕니다.
:계란 흰자를 따라 넣어줍니다. 더욱 끈끈해집니다.
:레몬후추(또는 굵은 후추), 소금, 허브, 구운마늘(없으면 굵게 다진 마늘)을 넣습니다.
:바질 페스토(없으면 생략)을 넣습니다.
:빵가루를 넣습니다. 보통 참치동그랑 땡엔 두부나 밀가루를 넣는데, 전 빵가루만 넣습니다.
:성형^^;;을 합니다. 쿠키 틀을 찾아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피자나 치킨 시키면 따라 오는 저런 거 소스통 같은 거, 거기에 대강 눌렀다 빼 줍니다.
:올리브유와 포도씨유를 1:3 정도로 해서 둘러 구워줍니다.
:모양을 잡아야 하지만 난생 처음 공정을 사진으로 찍고 그랬더니 경황이 없어서 그냥 두었습니다.
:천천히 굽는(지지는) 동안 케쳡에 타바스코 소스를 넣어 섞어줍니다. 가게에서 파는 스파게티 소스나 스윗칠리 소스랑 내도 좋습니다. 스윗칠리 소스와 특히 잘 어울립니다.
:오늘은 모양이 정말 너무나도 안 살았는데, 다 익고 나면 키 낮은 컵케이크나 원통 모양으로 보입니다. 차려 내면 재료는 거의 같은데 어디서 딴나라 음식이라도 나온 것처럼 다르게 반응합니다(조카들을 보니 그렇더군요^^)






하루에 한 접시, 이번 주엔 반타작, 그러므로 합이 세 접시는 이상입니다. ^^
그리고 이건 제 일, 남의 일 읽어 보다가 생각이 나서...
지난 주 후반부터 이번 주 월요일, 한 화요일까지도 마음이 약간 심란했습니다. 별 일은 아니었지만요.
대강 털고 마음 비워 일어서려는데, 마음이 불러오는 기억이 있었습니다.
J 녀석은 세 살에 할머니 할아버지 곁을 떠났는데, 그땐 그래도 한글도 읽고 제법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떨어져 살다 보니 차차 한국말을 잊고 한글도 까먹고 그랬습니다.
한글 학교에 보내기 시작했고, 집에서야 우리말을 썼지만 좀 더 많이 쓰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뿐, 뭘 시키는 걸 좋아하지 않는 저를 만난 바람에 그냥저냥 살던 어느 날,
나갔다 돌아오니 문이 잠겼고,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빙그레...벙그레.. 제 얼굴에 미소가 퍼졌습니다.
이거 적기 얼마 전이었을 겁니다.
제가 아이를 혼냈습니다.
어딜 가면 간다고 말을 하고 가야 한다.
가족을 걱정시키지 마.
그리고 이런 말도 그 전후에 했던 것 같습니다.
엄마한테는 우리나라 말로 해 줘.
또 아빠는 늘 이렇게 말하지요.
열쇠나 지갑을 챙겨. 문 잠궜나 봐야지. 가스도. 항상.
열쇠 두고 갈 때는 남들이 알게 하면 안 되는 거야. 우리집 열쇠니까.
아이의 귀를 타고 들어와 머리와 마음에 새겨진 여러 가지가 저렇게 드러났던가 봅니다.
앞 집엔 오스트리아에서 와서 사는 가족이 있고, 저편엔 일본인 가족, 아래층엔 미쿡 사람이 살고...한국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우리집을 아는 한국 사람은 자기가 놀러가려고 하는 그애네 빼면 많지 않으니까...
이 쪽지 쓴 지 한 사 년 쯤 된 것 같은데...그때부터 고이 접어 간직해 왔습니다. 제 지갑에 아이나 남편 사진은 없지만, 핸드폰에도 그런 거 없지만, 아이가 보고 싶으면 저걸 꺼내 봅니다. 지갑을 잃어 버릴까봐 지갑엔 복사한 걸 넣어 다니고 원본은^^;;;서랍에 잘 넣어 두었습니다.
심란하던 마음이었으므로 그랬겠지요.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썼을 텐데
요즈음의 제 마음에 보탬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열쇠가 신발안에 있다.
맞다맞아. 열쇠는 머리 속이 아니라 신발 안에 있지.
알았다알았어. 걱정근심 고만하고 움직일게.
걸어다니고 뛰어 다니고 하다보면 뭔가 열리겠지.
안 되더라도 뭐 곁길이나 샛길이라도 보이겠지.
열쇠 꽂았다 치고서 신발 신고 헤매다 보면...
꿈보다 해몽은 여기서 마치고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주말 즐겁게, 건강하게 보내세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