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네요.
많은 생명을 그렇게 희생시키고도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가슴 속에 버석버석 돌멩이들이 굴러다니는 것 같아요.
욕쟁이 삼형제는 엄마한테 돌아갔습니다.
막내가 제 귀에 침 한바가지 묻혀가며 귓속말로 엄마 상태로 봤을 때 자기들이 금방 돌아올 거 같으니까
다른 아이들 받지 말라고 당부인지 공갈인지를 하고는,
부쩍 기력이 떨어진 저희집 나키를 한참 안고 있다가 끝내 눈물을 보여서 큰 형한테 쥐어박혔습니다.
첫째는 가끔 엄마 몰래 전화를 하는데 정작 별 말이 없어서 제가 뽀삐가 말썽부린 이야기를 한참씩 늘어놓곤 합니다.
그때마다 뽀삐가 제 앞에 앉아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눈을 빛내며 듣습니다.
키톡이니까~
씩씩하게 음식 이야기!
삼형제 뿐만 아니라 저희집에 와서 지낸 아이들 모두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코티지 파이를 소개해드릴께요.
어느 분이 댓글로 코티지 파이 레시피를 공유해달라고 하셔서,
사진을 찍어뒀었습니다.
갈아서 익힌 고기에 (원래는 구워 먹고 남은 고기를 이용했던 재활용 음식) 으깬 감자를 얹어
오븐에서 한번 구워낸 다음 먹는 영국 농부들의 소박한 음식인데,
양고기를 주로 사용하는 셰퍼드 파이와 함께 영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메뉴입니다.
일단 재료는
올리브오일 50 ml
쇠고기 간 것 600 g
양파 큰 것으로 1개 (저는 집에 있던 샬롯을 썼어요.) 다져서 준비.
(저는 당근과 파가 냉장고에 넉넉히 있길래 함께 다져서 넣었습니다만 클래식 레시피는 양파만.)
타임 (Thyme) 1 작은 술 (신선한 타임이면 향이 강하니까 조금 덜 넣으시라고 권해요.)
토마토 퓨레 2 큰술 (토마토 케챱을 쓰셔도 됩니다.)
중력분 1 큰술
레드와인 150ml
육수 400ml
소금과 후추 (통후추를 바로 갈아서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스터셔 소스 (제 경우는 우스터셔 소스가 들어가고 안 들어가는 것이 맛의 차이가 크다고 느껴서 꼭 넣습니다.)
양파를 다지는 동안 강한 불에 팬을 올리고 연기가 나기 시작하면 기름을 두른 후 고기를 재빨리 살짝 익힙니다.
(소금과 후추로 밑간)
고기가 덩어리지지 않도록 눌렀다 뒤적거리는 걸 몇번 해주고 불에서 내립니다.
다른 팬은 달군 후 중불에 다진 양파와 타임을 넣고 숨이 죽을 정도로 볶다가 밀가루를 넣습니다. (소금과 후추로 밑간)
밀가루 코팅이 된 양파 다진 것에 토마토 퓨레를 넣고 1,2분 정도 더 볶은 다음 고기 익힌 것을 넣고 섞어줍니다.
고기를 볶던 팬에 와인을 넣고 와인으로 그 팬을 깨끗이 씻어낸다는 기분으로 나무주걱으로 저어주면서
중불에서 끓이다 와인이 절반으로 줄었을 때 즈음, 양파와 고기 섞은 팬에 붓습니다.
육수가 있으면 육수를, 없으면 그냥 물을 붓고,
(월계수 잎의 향을 좋아하시면 이때 두 세잎 정도 넣어주셔도 됩니다. 우스터셔 소스에서 살짝 월계수 향이 나긴 합니다만.)
끓으면 바로 불을 약하게 줄여서 뚜껑을 덮고 40분 정도 둡니다.
한번씩 뚜껑을 열고 나무주걱으로 저어주면 바닥에 눌어붙지 않아요.
와인과 육수가 다 졸아들면 이 정도가 됩니다.
(저는 한끼 분량으로 고기의 절반만 쓰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었다가 다음날 재료를 더 넣고 칠리 콘카르네로 만들어서 아이들 핫도그 위에 얹어줬어요.)
매쉬드 포테이토 얹어서,
(삶아서 물기 날린 감자에 크림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 뒤 으깼어요.)
다 익은 재료들이기 때문에 그릴에 감자 윗부분만 그을린다는 느낌 정도로만 구웠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코티지 파이를 주로 이렇게 완두콩 삶은 것과 먹어요.
이건 아이들이 치즈 올려달라고 졸라서 으깬 감자 위에 치즈 간 것을 두툼하게 얹어서 오븐에 넣고 구운 것.
저의 코티지 파이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욕쟁이 삼형제가 저희집에 처음 왔던 3년 전 어느날 저녁,
뽀킹 차이니스 집에는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버티다 저희집 리트리버들이 손등을 핥아주면서 꼬시는 바람에
얼떨결에 들어오고만 녀석들.
식탁에 앉히고 코티지 파이 한판을 올려두고는 저는 부엌을 나왔어요.
아이들 방을 준비해놓고 부엌에 내려가보니 꽤 큰 파이를 꼬맹이 셋이서 다 먹어치웠더군요.
힘겨웠던 며칠이 지나고, 아이들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가 싶었는데,
눈물콧물 범벅으로 학교에서 돌아온 둘째가 제게 엄청난 비밀을 말해주겠다는 거예요.
사실은 큰 형이 가출을 하자고 했답니다.
그랬는데 둘째와 막내가 그날 저녁 메뉴가 코티지 파이인데 집에 가서 파이 다 먹고 하면 안되겠냐고 했다고.
그래서 형한테 얻어터져 그 꼴이 됐다고...
그러니까 저 코티지 파이가 청소년의 가출 예방 효과가 있는 파이더라 이겁니다.^^
둘째의 고자질 덕분에, 이후 당연하게도 코티지 파이는
제가 가장 즐겁게, 설레임까지 느껴가며 가슴을 펴고 준비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
그동안 저희는 연못의 백조들과 할머니들의 원성을 뒤로하고
도시의 반대편 동네로 이사를 했습니다.
집이 90%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입주를 해서 2주가 지난 지금도 짐을 풀 수 없는 상황이라 어수선하기 짝이 없습니다.
공사하는 사람들, 각종 기계 돌아가는 소리, 쌓여있는 박스들이 정신 사납다고 뒷마당에서 시위 중인 나키
저러고 있다 어느 새 들어와서 새로 산 카펫 위에서 뒹굴뒹굴 --;
2주일쯤 후에나 사람들이 와서 잔디를 깔아준다는데,
그건 나키 달력으로 치면 14주.
도저히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아서 급하게 수소문해서 잔디를 주문했어요.
잔디 까는 것이 무슨 로켓 공학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제가 어떻게든 해보리라 작정을 했는데...
알량한 모종삽 하나 들고 70 제곱미터의 잔디를 깔겠노라고 설치는 저를 본 이웃의 조와 줄리 부부
말릴 틈도 없이 손수레에 가래와 삽을 싣고 쳐들어 와서는
밤새 내린 비로 진흙밭인 마당을 뒤집고 돌을 골라낸 다음 평평하게 눌러주고 그 위에 잔디를 덮는 걸
장장 6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불도저처럼 일해서
이렇게 만들어줬습니다.
오며가며 마주쳤을 때 헬로우 한두번 나눴을 뿐인,
이웃이라고 하기에도 아직은 낯설기만 한 저희를 위해 (사실은 나키를 위해^^)
더운 날, 기꺼이 땀 뻘뻘, 진흙투성이가 되어 준 조와 줄리의 소중한 도움으로
이 녀석이 이렇게 널널해졌습니다.
세상이 살만한 것이라는 믿음이 종잇장처럼 얇아져 버린 요즘,
저렇게 힘든 일을 당연하다듯이 해주고는 홀연히 가버린 조와 줄리 부부 때문에
독감 앓다가 항생제 한방 맞은 거처럼,
숨쉬기가 아주 조금 나아졌습니다.
마침내 부엌공사를 마쳤으니 코티지 파이 한판 구워서 줄리네 집에 배달가려구 합니다.
그나저나 에드나 할머니와 제인 할머니께
그 동네에 집 나오면 돌아가겠노라고 약속을 굳게 하고 왔는데,
이거이거 큰일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