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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혜 한 사발과, 그녀 이야기.

다시마 조회수 : 1,331
작성일 : 2004-10-01 00:10:17
리빙노트의 식혜를 보니
오늘 제가 얻어마신 식혜가 떠올라
그냥 잘 수 없어
몇 줄 적으려구요.

얼마전 아들내미 체육대회날 교문언저리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누구야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쳤는데
순간 저나 그녀나 눈시울에 살짝 물기가 어렸습니다.

대학동창입니다. 그녀는 과대표였어요.
말도 없고 넉넉한 미소로 다 들어주는
그런 속깊은 친구였습니다.
사고 이후 많이 어눌해진 말투였지만
밝은 표정만은 변함이 없더군요.

그리고 오늘 친구의 전화번호를 눌러서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알고보니 울 아들내미랑은 작년에 같은 반이었네요.
민주라는 외동딸이 엄마를 참 많이 빼닮았더군요.
저는 제가 만든 매실쨈과 마늘장아찌를 들고 갔고
친구는 직접 만든 식혜 한 사발을 내왔습니다.

멀리서 어렴풋이 들은 소식과 별반 다르진 않은
친구의 사고내용은 대강 이렇답니다.

기자였던 남편과 독일로 연수를  갔다가
막바지무렵의 영국여행 중에 고속도로 갓길에서
잠깐 아기용품 꺼낸다고 트렁크를 열던 친구를
음주운전차량이 그만..

집구경하면서 둘러본 침실 구석에는
바지가 입혀진 친구의 의족이 기대어 있었습니다.

친구가 말하길.. 영국에서의 기억은 짧은 한 컷 뿐이래요.
웨스트민스터 사원. 다이애나비가 묻힌 곳이라고 하던..

친구가 사는 곳은 저희 집에서 멀지않은 성석동의
전원주택 마을 이었어요.
독일에서 1년 더 재활치료를 받고 귀국해서
사업에 어느 정도 성공한 남편이 그녀를 위해 지어준 집.
문턱도  없고 거실에 앉으면 하늘과 나무와 새집이 잘 보이는 집.

친구와 재잘재잘 옛날 얘기, 친구들 얘기
이웃들얘기, 집이야기.. 나도 이런 동네 살고 싶다고
마구 부러워하다가 아쉽게 작별하고 나왔습니다.

친구네는 지금 재활사업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친구가 이 정도의 생활을 유지할수 있는 것도
과학적인 재활치료 덕분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후원회며 여러가지 계획들을
도모하고 있는 중이라네요.. 좋은 결실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자주 놀러가서 친구 말벗 해주려구요.
언젠가는 살고 싶은  새소리 들리는 동네도 참 맘에 들구요.



IP : 222.101.xxx.79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승연맘
    '04.10.1 12:39 AM (211.201.xxx.180)

    맘 아프시겠지만 열심히 사시는 그 친구분 정말 부럽습니다. 마음이 부자인 분 같아요.
    몸은 정신이 이끌어나간다고들 하지요. 남편분도 외조가 지극할 것 같구요.
    좋은 일만 일어났으면 좋겠네요. 명절 보내고 나니 마음이 황폐해졌었는데 이제야 제 자릴
    찾은 것 같습니다. 다시마님도 건강하세여...

  • 2. mintchoco
    '04.10.1 12:50 AM (81.211.xxx.93)

    제 초등학교 동창인것 같군요. 사고 이야기는 들었었는데 잘 지내다는 소식을 들으니 반갑네요. 혹 연락이 되신다면 안부를 전해 주실수 있나요? 미란이 라고 하면 기억 할거에요. 저는 지금 러시아에 있거든요. 그리고 친구가 거부(?)하지 않는다면 이메일 알고 싶거든요. 이렇게 초면에 실례가 많네요.^^;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부탁을 드려요.

  • 3. mintchoco
    '04.10.1 12:57 AM (81.211.xxx.93)

    제가 로그인을 안하고 썼네요. 사실 글쓰기는 오늘이 처음이거든요. 올때마다 정보만 가져가는 얄미운(?)아짐이었어요. 다음에 가입인사 다시 올릴께요.

  • 4. 디저트
    '04.10.1 12:59 AM (61.73.xxx.157)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 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황동규 시인의 ‘시월’입니다.
    다시마님의 글과 시월 새 달이 교차되면서
    아주 오래된 시지만 시월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시라
    이 밤에 혼자서 읊조립니다.
    해서 잠도 달아나 버린지라 아예 책장에서 시집을 한 권 꺼내 들었습니다.
    역시 황동규 시인의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님의 뜻도 곱고 친구 분 의지도 빛나는 것 같습니다.

  • 5. 마농
    '04.10.1 1:08 AM (61.84.xxx.22)

    아마 친구분은 직접 만든 매실쨈과 장아찌를 들고 집으로 찾아와준 친구를
    생각하면서 흐뭇해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우정 계속 이쁘게 만들어가셨으면 합니다....

  • 6. Ellie
    '04.10.1 5:56 AM (24.162.xxx.174)

    소설같아요..
    읽으면서도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그분, 참 마음 고생 많이 하셨을것같은데... 어휴 무슨 말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앞으로는 바라시는 일 모두 잘 풀리길 기도드릴게요.

  • 7. 헤르미온느
    '04.10.1 9:00 AM (61.42.xxx.86)

    두 분의 우정 아름답게 키워가시길...^^

  • 8. 햇님마미
    '04.10.1 9:44 AM (220.79.xxx.118)

    너무 반갑고 좋으셨겠네요...
    옛날친구들을 만나면 그 때 좋았던 사이던 안 좋았던 사이든 참으로 반갑더라구요...
    저도 얼마전에 대학 동문을 만났는데 그리 별로 친하지 않았던 사인데 참 좋더라구요...
    옛추억이 어려서겠지요...
    옛추억영원히 만들어 가실길^*^

  • 9. 미역줄거리
    '04.10.1 10:06 AM (220.118.xxx.131)

    다시마님 같은 친구분이 계셔서 그 장애를 입으신 친구분이 더 행복하실 거 같아요.
    영원토록 우정 변치 않으실기 바라구요. 다시마님 글때문에 흐뭇한 아침입니다. ^^

  • 10. 달개비
    '04.10.1 11:20 AM (221.155.xxx.70)

    오랫만에 만난 친구 참 좋으셨겠어요.
    그 친구분 남편의 외조 받으며 긍정적으로 밝고 열심히
    사시는것 같아 좋아 보입니다.
    두분의 우정 앞으로도 쭈욱 아름답게 이어 가세요.

  • 11. 광수생각
    '04.10.1 1:19 PM (221.154.xxx.148)

    두분 모두 행복한 나날들만 있길.....
    아름다운 우정이 영원하길....

  • 12. 밤톨이맘
    '04.10.2 12:46 PM (222.232.xxx.21)

    이 글을 읽으면서 맘이 따뜻해지네요. 두분 우정 오래오래 간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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