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세상에서 제일 쉬운 닭요리
제가 딸아이를 임신했을 때,
입덧은 하지 않았지만, 엄마 밥이 그리워서, 출근했다가 잠시 친정집에 들렀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가 신문사라서, 시간은 좀 마음대로 쓸 수 있었어요.
낮에 잠시, 개인적인 일로 시간을 썼다 싶으면, 기사꺼리 몽땅 싸들고 집에 들고가서 써가지고 나오기도 하고,
아니면 혼자 남아서 야근을 해도 되고, 야근한다고 수당 따로 챙겨받는게 아니니까, 회사에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구요.
어떻게든 내가 막아야할 지면 마감시간 지켜서 잘 막기만 하면,
낮에 잠시 한두시간 시간을 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배가 남산만큼 불러서,
딸아이 가졌을 때 어찌나 배가 많이 불렀는지 남들은 첫아이는 표시도 잘 안난다는 4~5개월때부터 저는 펑퍼짐한 임신복을 입어야 했고, 심지어 회사동료들은 제가 곧 해산을 하는 줄 알았대요.
암튼 남들은 잘 표시도 안날 때부터 배는 남산만해가지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친정집에 갔습니다.
연락도 없이 불쑥, 그것도 낮에 딸이 불쑥 들어오니까,
저희 친정어머니는 깜짝 놀라시더니, 안부 물을 겨를도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셔서 전기프라이팬 전원부터 꽂으셨습니다.
마침 집에 닭이 있었는지, 닭을 반으로 갈라 버터지짐을 해주셨는데,
제가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닭한마리를 친정어머니께 "같이 드세요!" 이 한마디도 못하고 허겁지겁 몽땅 먹어버렸습니다.
제가 워낙 닭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버터에만 익혀주는 닭요리는 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닭요리이지만,
우리 친정어머니가 해주시지 않으면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거든요.
이런 닭요리를 파는 식당은 없잖아요.
집에 버터가 없는 줄 알고, 며칠전 김치찌개할 때도 못넣었는데, 어제 냉장고 청소를 하면서 보니까,
한덩이가 잘 들어있는 거에요. 허걱.
버터 찾은 김에, 마침 김치냉장고 안에 들어있던 닭날개꺼내서 닭버터지짐을 했습니다.
한번 씻은 닭에 소금 후추로 밑간해서 잠시 간이 배도록 재워뒀다가,
프라이팬에 버터를 넉넉하게 두르고, 닭은 처음에는 센불에서 지져 육즙을 가둬둔 다음에,
약한 불로 줄여서 은근하게 지져주면, 기름은 쏘옥 빠지고 거죽이 너무 맛있는 닭버터지짐이 되지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의 가짓수는 세상에 있는 엄마의 수와 같다는 말이 참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닭날개로 푸짐하게 닭버터구이를 해서 식탁에 올리지만,
제 나이 스물네살, 나이 어린 임산부가 먹었던 엄마표 버터구이맛보다는 훨씬 맛이 덜하니까요.
p.s.
지지는 방법 추가합니다.
그냥 약한 불에 뚜껑덮어서 한면이 거의 익을 때까지 뒀다가 뒤집어서 다시 한면 마저 익힌 후,
뚜껑을 열어 수분을 날리면서 지지는 방법이 있구요,
또 하나는 일단 중간불 이상의 다소 센불에 올려 앞뒤를 한번 지져준 다음에 불을 약하게 줄이고 뚜껑덮어서 익히다가,
뚜껑 열고 수분 날려주면 됩니다.
밥 시작할 때 이것부터 불에 올려놓고, 밥하고 국하고 하면, 시간이 딱 맞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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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꽃
'10.1.9 11:59 PM일뜽~^^
2. 내가사는세상
'10.1.10 12:00 AM선생님.. 눈물이 나요...
일찍 돌아가신 엄마가 예전에 해주시던..
김치넣은 돼지고추장불고기가 생각나서요..
먹고 싶은데.. 왜 제가 하면 그맛이 안나는건지....3. 예쁜솔
'10.1.10 12:06 AM네...엄마표...
뭐든지 엄마표는 맛있었는데...
지금은 거동도 불편해지시고...아무것도 할 수 없으셔서 넘 슬퍼요.
엄마의 손맛을 배워 놓지 않은 것도 후회가 되구요.
저도 눈물이 핑~합니다.4. 살림열공
'10.1.10 12:10 AM이 밤에 맥주가 무쟈게 땡기게 하는 그런 사진이세요. ㅠㅠ
임신 전에는 너무 날씬 하셔서 유난히 배가 커 보였던 것 아닐까요?
임신한채로 출입처 다니기가 ... 무척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때만해도 여기자도 드물고, 임신한 여기자는 더더욱 드물지 않았나요?
임산부의 감정선을 배려하는 문화도 없었을 터이구요.. 그냥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정말, 팬에 버터만 두르고 지져도 고기가 속까지 잘 읽나요? 불을 줄인 후에도 어느 정도 팬에서 지지면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애들이 방학이라서 매 끼와 간식 대느라 이런 메뉴만 보면 눈이 번쩍 뜨인답니다.5. 들꽃
'10.1.10 12:13 AM샘글에 일등은 처음이에요~^^
울 애들도 닭요리 참 좋아하는데
고소한 닭버터구이 한번 만들어야겠어요~
만들기도 쉽다하시니 내일 당장 만들어봐야겠어요~
엄마표 음식은 두고두고 생각나고 그러다가 엄마 정이 그리울 때 더 생각나곤하죠~
저는 엄마가 해주시는 음식중에서 올갱이국이 제일 맛있어요.
올갱이국 제가 한번 만들어봤는데
엄마가 해주신 그 맛은 아니었어요..
엄마는 사랑이라는 양념을 듬뿍 넣어주셔서 그런가봐요~
샘께선 입덧 안하셨군요~
저는 입덧이 엄청 심해서 잘 먹지도 못하고 임신내내 폐인처럼 지냈어요~ㅎㅎㅎ
이 밤 엄마가 보고 싶어집니다~
시간이 딱 여기서 멈춰버렸으면 좋겠어요.
엄마 더이상 나이 드시지 않고 더이상 안늙으시도록~~~
그래서 오래오래 엄마가 해주시는 음식 맛보고 싶어요.6. 김혜경
'10.1.10 12:14 AM아...살림열공님...저간의 사정을 짐작해주시는 분이 계시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산전산후 휴가 딱 한달,
휴가는 그렇다쳐도, 제가 그때 맡았던 것이 시장시리즈였었어요.
남산만한 배 부여잡고, 시외버스 타고( 회사차 배차 안해줘서, 지방이라고...)
성남의 모란시장이며 강화장이며 돌아다녔죠.
시장상인들, 기자 아닌 줄 알고 시장의 평면도같은 자료도 잘 안주고...
회사내에서도, 쟤는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아 결혼하더니, 나이도 어린애가 아이를 가졌네..
뭐 이런 분위기...정말 그렇게 배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울 딸 올해 우리나이로 서른입니다.
제가 서른이 되던해보다, 더 충격적...내딸이 서른이라는게...7. 프리즐
'10.1.10 12:20 AM82쿡 식구된지 벌써 몇해인지..로그인 안해도 여기 안들어 온 날을 손에 꼽을만 하면서도 희망수첩에 처음 댓글다는거 같아요.
2년전 엄마를 병을 안지 2달만에 황망히 보내고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졌을때 희망요리수첩 꺼내읽으며 눈물마저 쏟아내고 이겨내기 시작했어요.
엄마의 열무김치..감자국..마늘쫑무침..어찌 셀 수 있을까요.
엄마 가시고 엄마가 남겨두신 김장김치를 초여름까지 차마 먹지못하고 열어보며 눈물짓던 때가 생각납니다.
내일은..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맛있는 음식을 하나 해주어야겠네요..8. 가을비
'10.1.10 12:25 AM엄마표 음식.
듣기만 해도 눈물이 ...
대학교 입학해서 처음 자취시작하는 딸에게 콩나물 장조림을 가르쳐 주셔서 맨날 그것만 해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9. 살림열공
'10.1.10 12:52 AM지지는 방법을 추가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닭날개 사다가 꼭 해 보겠습니다.
잘 만들 자신이 불끈, 생겼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고기를 속까지 읽는다고 썼을까요? 으휴, 부끄.
저희 친정엄마도.. 우리 형제들에게 굉장히 각별하신 분이세요.
내일부터 사흘간 모처럼 같이 여행 가는데 오늘밤에 이 글 읽으니 이번 여행기간 동안 더더욱 잘 지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 엄마가 두고 가신 김장김치를 내내 못 드셨다는 이야기에 문득 눈물이 고입니다.
생각만해도 무섭고 슬프네요.10. 거북이산책로
'10.1.10 12:59 AM갑자기 눈물이 났어요........엄마생각에....
11. 옥당지
'10.1.10 1:45 AM엄마생각에 눈물이 안 나는 걸 보니...전 더 늙어야 할 것 같아요. ㅡ,.ㅡ;;;
눈 떄문에 고립되어 밥상이 아주 지루했는데 좋은 간식 아이템 득템!! 했네요.
바로 해 봐야겠어요...^^12. 또하나의풍경
'10.1.10 7:53 AM바삭바삭 고소고소할거같네요 ^^ 닭봉버터지짐! 좋은 메뉴 또 하나 알아갑니다 ^^
13. 김선아
'10.1.10 8:59 AM남대문서 사신 소스그릇이 당장 쓰이네요. 그냥씻기만하나요? 슬쩍 안데치구요. 하루하루 82쿡에 들어와 오늘 메뉴정하는 결혼16년차 살림빵점 직장엄마입니다. 김쌤앞에선 맞벌이가 핑계가 아니네요. 존경합니다.
14. 소박한 밥상
'10.1.10 9:38 AM저희 친정어머니는 깜짝 놀라시더니, 안부 물을 겨를도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셔서 전기프라이팬 전원부터 꽂으셨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의 가짓수는 세상에 있는 엄마의 수와 같다는 말이 참 맞는 것 같아요.15. Terry
'10.1.10 12:11 PM나이가 사십이 넘으니 비로소 예전 울 친정엄마 사십 때도 이렇게 젊은 마인드였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전 그 때 사십살이면 정말 마음도 몸도 완전히 엄.마.로만 사는 것인 줄 알았었거든요. 엄마가 말씀해주시던 학창시절, 대학시절등은 6.25만큼이나 멀디 던 예전 고리짝 일들인 줄 알고... 그런데 제가 태어난 해보다 불과 20년도 못 되어 6.25가 있었더라구요. 제가 대학 졸업하던 해가 올해로 벌써 20년이 되었는데요...이렇게 가깝고 어제같은 느낌인데도... 왜 엄마의 젊은 시절은 마치 없었던 시절인양 살았는지... 이렇게 한 번만 지나면 육십이고..두 번 지나면 팔십이네요..그렇게 생각해보면 인생 참 짧아요....
16. 초록바다
'10.1.10 4:32 PM닭버터지짐..오징어 버터구이..
일.밥책 사서... 맛있게 따라 해 먹어었는데 ..그동안 잊고 있었네요
요리에 자신이 없던 저에게 첨으로 용기를 갖게 해준 요리책이라 지금도 아끼는 책이랍니다.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이런 요리 넘 좋아해요.^^17. 올리브
'10.1.10 8:00 PM제가 서른이 되던해보다, 더 충격적...내딸이 서른이라는게...
댓글보고 제가 웃어요. 저도 제 나이 스물도 충격이었는데 아들 스물 하나 정말 충격입니다.
책에서도 보던 버터지짐이지요. 꼭 뼈가 있어야 더 맛나다고 팁을 주셨죠. 살만 하면 맛이 덜하다고요. 바삭바삭 껍딱 먹고 싶어요.18. 젬마
'10.1.10 11:31 PM이런 음식도 있군요...^^ 죄송해요. 워낙 채소만 드시는 엄마밑에서 커서 육류,해산물 요리는 결혼하고 배웠어요. 시댁은 둘 중 한가지는 꼭 있어야 되던데...남편이고, 아이들이고 모두 다행히 시댁식성 닮았네요.
워낙 야채만 먹고 자랐던 저... 게다가 소식까지 해서 제가 키가 좀 작아요. 유전자상 좀 컸을지도 모르는데.. 안타깝네요. 그래서 나중에 아이 낳으면 우유도 많이 먹여야지 했어요.
오늘 저희집 저녁 메뉴도 닭이였는데, 간장양념에 재웠다가 야채 많이 넣고 오븐에서 구웠는데 평소에 치킨 싫어하던 둘째가 너무나 잘 먹어서 닭요리를 좀 배워야 하겠단 참에 좋은 글 읽었네요.
아직도 엄마가 해 주시는 아욱죽, 김치죽은 언제나 몸 안 좋을때 생각나는 음식이예요.
이젠 저도 제법 주부티가 나는데 제가 하면 다른 맛이 나요.
다들 그러시군요.
전 올해 37살이 되는데 올핸 아빠께서 아이쿠~ 하시네요. ^^19. mulan
'10.1.11 9:37 AM그러셨군요. 임신중에 직장을 다니셨었군요. 와... 그때의 그 마음들이 웬지 절절하게 다가와요. 이제는 늙으신 어머니... 생각도 많이 나시겠어요. 닭봉이 참 맛나게 보이면서 더욱 그 마음이 가깝게 다가오네요.
20. 새로운 라라 ☆
'10.1.11 12:38 PM먹고 싶어지는 닭요리네요..오븐이 없어도 되는거라 도전해봐야겠어요^^
21. 소심녀
'10.1.11 4:28 PM굉장히 맛있게 보이는 사진인데요^^
제가 만들어도 저렇게 만들어 질지 모르지만..
주말에 시도 해봐야 겠습니다~~22. 여우비
'10.1.12 10:27 AM아들이 닭을 참 좋아하는데.... 저도 한 번 시도해 봐야겠네요.
23. 재녀
'10.1.12 12:04 PM작은아들이 무조건 닭요리를 좋아하는데.... 어제 과학고 사전교육(기숙사입소) 갔는데
금욜에 오면 맛있게 해 줘야겠네요 간첫날 저녁10시에 문자왔어요
"엄마 나 집에 가고 싶어~~~~" 라고요 늦등이라 찌질하거든요24. 끈달린운동화
'10.7.15 11:36 AM아, 찾았다. 누가 이거 너무 맛나다길래 찾아 헤맸었는데 드뎌...두둥~! 하하하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