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감기 이야기 [혜경 백반]
어린 시절..제게는 단 하나뿐인 남동생이...오빠와 저의 공동의 적이었습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한 한가지!
선천적으로 튼튼한 오빠와 저는 감기도 잘 걸리지 않았는데..유독 남동생만큼은 걸핏하면 감기에 걸렸습니다.
그 감기도..지금 생각하니까..독감 종류였던 것 같은데...
유행하는 감기라는 감기는 빠뜨리지 않고 꼭꼭 빠뜨리지 않고 걸리곤 했습니다.
한번은 동생을 데리고 소아과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너무너무 속상해하셨습니다.
동생을 데리고 병원문을 들어서니까,
간호원이, 걔, 안에 들어오면 다른 아이들에게 옮는다며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는 것입니다.
지금 같으면 어림 서푼 어치도 없는 얘긴데...
일천구백육십년대 초중반만해도...우리나라가 이랬습니다.
어머니는, "어찌나 기분이 나쁜지...맘 같아서는..." 이러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말을 듣는 저는 '그 소아과라는 곳...나도 좀 가봤으면 좋겠다..'하고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저도 물론 감기를 안걸리는 건 아니지만..
콧물 조금 흘리거나, 기침 조금 하면 시럽형 감기약이나 한술 먹으면 끝이었습니다.
이런 동생이 왜 오빠와 저의..공동의 적이었냐 하면....
원래도 입이 짧은 아이가..
(사실은 이 대목도 오빠와 제가 미워하던 점이었습니다.저희들은 입이 짧기는 커녕, 뭐든 없어서 못먹는데...)
감기 때문에 잘 먹지를 못하니까..소위 간즈메라는 걸...몇통씩 사다놓고 먹였습니다..
간즈메..아세요?? 통조림을 말하는 거랍니다.
복숭아통조림 파인애플통조림 같이 달달한 걸 챙겨먹이셨습니다.
물론 저희 부모님들은 대단히 공평한 분들이셔서..아픈 아이만 먹이지 않고..오빠와 제게도 한쪽씩 먹이셨지만...
그 통조림을 통째로 제가 혼자서 온전히 갖지 못하는 것이 은근히 불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참 창피하고...기가 막히죠..^^;;
지금은 흔해빠져서 먹으라고 해도 잘 먹지않는 복숭아 통조림, 파인애플 통조림이잖아요?
근데..그때는 그게 어쩌면 그렇게 맛있었는지....
자리를 깔고 누워 앓고 있는 동생은 보이지 않고, 그 머리맡에 놓여있는 통조림만 노려보던,
그런 살벌한 누이였습니다...제가...
동생 대신 저 감기에 걸려, 저 자리에 누워, 저 통조림을 먹고 싶다 생각했던....
그런 매정한 누이였습니다...제가...
심지어는 '저 녀석, 통조림 먹으려고 꾀병하는 건 아닐까' 의심해본 적 있습니다...솔직히...
이번에 감기 몸살을 된통 앓다가 문득 그때 동생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동생 생각, 빨리도 하죠?? 40년이나 걸려서 말이죠??
그리고, 오빠랑 저랑은 그토록 맛있게 먹던 그 통조림,
동생은 입이 깔깔하고, 목이 아파서, 어쩌면 맛있게 먹지도 못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아픈 아이 앞에서 냠냠 짭짭 먹던 형누나가 더 얄미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사람은..이렇게...다 제가 겪어봐야 안다니까요?!
동생, 미안허이...누나가 너무 철이 없어서리....동생이 아플거라는 생각은 못했다네..그저 통조림만 부러웠을뿐....
그나저나..요새 감기 독한데...감기는 안걸렸는지?? 감기가 자네 전공 아닌가??
감기 때문에..먹던 반찬, 상에 놓고 또 놓고를 되풀이하다가,
오늘은 맘잡고, 혜경백반을 차렸습니다.
찌개는 논우렁이 들어간 우렁된장을 끓였습니다.
디포리와 새우로 우려낸 육수에 된장 풀고, 감자 호박 파 양파 청양고추를 넣고,
아차..마늘은 빼먹고 안넣었네요...^^;;
된장찌개 끓이고, 강경에서 택배로 받은 명란젓, 오징어젓, 서비스로 온 가리비젓 올리고,
지난번에 부산에서 사온 후 냉동해뒀던 박대를 해동해서 김오른 찜통에 푹 찐 후 양념간장 뿌리고...
김치 갓김치 김도 상에 올리고..이렇게 상을 봤습니다.
이제는 어지간히 살아났는데..
어제 이런 선물이 왔습니다. 감기 걸려서 고생하는데 기운차리라고...태왕사신기의 O.S.T. 였습니다.
하하...이 CD와 더불어 자그만 포스터도 한장 왔는데..그건 못붙일 것 같아요..
저희 집 식구 그 누군가가 질투할 것 같아서... ^^
하하..감기몸살..이거도 은근 괜찮네요..호호호...
살은 2㎏이나 빠지고, 이만한 성과를 거두려면, 한의원 약 한달은 먹어야하는데 이틀만에 빠졌으니 몇십만원 벌었고,
사야지 사야지 벼르고 있던 태왕담덕의 CD도 생기고...
목이 아파서, 아직도 음식물을 잘 삼킬 수 없는 바람에 다이어트 효과도 아주 놓고...ㅋㅋ...
이건 오늘 받은 선물입니다.
늘 상보가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없어서 베보자기로 반찬을 덮어두곤 했었어요.
그런데..이걸 어떤 후배가, 친정어머니가 만드신 거라고 주는데...어찌나 반가운지..꼭 필요한 것이라 더했던 것 같아요.
받으면서..이거 내가 꼭 필요했다, 사려던 참이었다, 고맙다..이러면...너무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것 같아서,
변변하게 고맙다는 말도 못했습니다.
다음에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 위에 조신하게 놓여진 사진을 꼭 하나 찍어서 보여주며,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한번 해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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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oopoo
'07.11.28 8:20 PM오홋
2. 유리
'07.11.28 8:25 PM정갈한 상 차림 잘 보았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3. 아카시아꽃향기
'07.11.28 8:26 PM왓! 선생님과 같은 시간에 컴 앞에...
그사이 1등 놓쳤네요 ㅜㅜ 어쨌든 첨이예요.
컨디션 많이 회복하셨는지요?
지난주 친정에서 김장하고는 저도 몸이 개운칠 않네요.
이번 김장하면서 친정엄마, 시어머니 김치 얻어 먹을 날도 얼마 안 남았구나 생각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본격적으로 할 때 되면 선생님처럼 배추농장서 담기로 다짐했어요 ^^
샘~ 그 배추농장 정보 좀 주세요~!4. 김혜경
'07.11.28 8:33 PM아카시아꽃향기님,
작년 그 농장의 배추가 너무 짜서..저는 사이사이에 무를 많이 넣어서 괜찮았는데..다른 사람들 김치는 망쳤다는 얘기가 많아서..
올해는 그 집에서 안 담그려고 해요. 이제부터 다른 농장을 찾아야해요.
이번 토요일 친정어머니 귀국하시면..다음주에 물색해서..담가야죠..5. 준수맘
'07.11.28 8:46 PM혜경센님...감기 툴툴 털어버리신걸 축하드려요.... 제 아들이 목감기가 왔는지 기말고사가 낼모렌데 저러고 있네요~ㅠㅠ
6. 예민한곰두리
'07.11.28 9:00 PM따뜻한 밥에 저 논우렁 된장찌개를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제 남동생도 어릴 때 입이 짧아서
오빠랑 제가 밥을 다 먹고 밥상에서 일어나도 늘 '나머지 공부'로 밥을 먹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바로 앞 수퍼에 가서 '햄'을 사다가 재빨리 반찬을 해 오셨는데
그게 어찌나 먹고 싶었던지
남동생이 그 햄마저도 잘 안 먹고 남기면 오빠랑 저랑 '디저트'로 먹었었네요.
'햄', 지금은 입에도 안 대는 음식인데 그 때는 넘넘 맛있었답니다.7. chatenay
'07.11.28 11:17 PM아~마른박대는 저렇게 쪄서 양념장 얹어야 먹음직 해 보이는군요~
전 구웠더니....안그래도 얄팍한게 더 얄팍해져서.....ㅎㅎ~또 하나 배워 갑니다!! 감사해요~
올 겨울 앓을 감기는 이번으로 끝!!!하시기를~ ^___________________^8. 코코샤넬
'07.11.28 11:25 PM게시물 작성할때 글 선택하고 스타일 누르면 되요
9. 김혜경
'07.11.28 11:38 PM샤넬님 댁도 그랬어요?? 헉...
그래서..이번에는 그 근처 다른 농장으로 옮겨볼까 암튼..엄마 귀국하시면 답사 좀 해야해요..
김장생각있으시면 살짝 쪽지 날려주세요.
샤트네이님..저도 TV에서 봤습니다..저렇게 찌더라구요..해보니까..담백한 것이..괜찮았어요..^^
예민한곰두리님, 그동안 목이 부어서 뭘 잘못먹었는데..오늘은 우렁된장에 밥 한그릇 뚝딱 했어요..^^
준수맘님...시험준비 못하는 아드님은 더 답답할거에요..근데..아마 저라도 공부 못할 것 같던데요. 마이 아파요..ㅠㅠ10. 레몬사탕
'07.11.28 11:50 PM이번감기가 무지 독한가봐요
전 감기는 잘 안 걸리는 편인데..
아기가 감기에 아주아주 심하게 걸려서
기침+가래+콧물줄줄 ..돌쯤되면 한번 크게 앓는다더니
아프니까 더 안떨어지려고해서..지금 허리에 파스붙히고 있어요
애 아빠는 공부하느라 맨날 12시땡하면 오고
오늘은 구원투수방문으로 급 방긋이에요 ^^
아파서 낮잠안자더니 아주 일찍부터 곯아떨어졌어요~~~
늘 밤에 활동하다가 낮에 피곤하고 졸린데..밤에 아기랑 자야지 하다가도
혼자만의 이 자유가 넘 좋아서 ^---^
샘! 빨리 완쾌하시어요~~~
요새 아기엄마친구들이 단식 한의원프로그램에 다니고 있어서
저도 솔깃하는데 굶는건 못할거같아요..기력없어서 아기를 어찌봐요
분홍색 보자기가 참으로 곱네요~~전 태사기는 안봐서 ^^;;11. 저금 통장
'07.11.29 2:17 AM이번 글은 읽고 나서 답글 다는 것이 약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왜냐하면,
하마터먼 아주 오래된 친한 친구에게 하는 말투가 나올뻔 했다는..
마음을 풀어 놓게 하는 혜경님의 글 솜씨에..
글자 판을 두드리려는 손가락을 (마음으로) 꽉 잡고 있네요.
마지막 상보가 무지 탐나네요. 혜경님의 후배한테 잘 보이고 싶어요.12. mulan
'07.11.29 9:07 AM감기 거의 나으셨다니 다행이네요. 태왕담덕 씨디가 너무 탐난다는... ㅎㅎ ^^
어제 태사기를 놓쳤다지요. 아이 재우다가 제가 먼저 쿨~13. 소금별
'07.11.29 9:34 AM쾌차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저희집도 감기에 입맛없어 하면 꼭 그 간스메~~(아니죠~~ㅋㅋ) 깐스메~~(맞습니다!!) 먹었습니다.
신랑 자취하던 시절 (문자메세지 기능이 막~~ 나왔을때~) 문자에 "나 감기걸렸는데, 황도랑 깐포도 먹고싶다... 그거 먹어야 낫는데," 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아들녀석이 감기만 걸렸다하면 어김없이 황도 사달라고 합니다.
아마도 어릴적 감기걸리면 그 깐스메 먹는게 유행이었지 싶습니다.
병문안갈때 깐포도, 황도 이런거 사서 가기도 했구요~~~14. 황금연못
'07.11.29 11:11 AM저는 감기에 걸리면 남편이 깐스메 사와요. 어릴때 엄마가 해준것처럼..
어릴때 아프면 엄마가 꼭 사주셔서 먹이셨는데 그땐 입이 깔깔해서 맛있는줄도 몰랐구요.
질투의 화신 언니는 언제나 부글부글 끓는 눈과 속으로 저를 쳐다보곤 했지요^^
저도 감기의 여왕이었거던요^^
글 읽는 내내 우리언니 심정을 이해할것 같네요.15. 아카시아꽃향기
'07.11.29 1:42 PM앗! 가문의 영광입니다! 샘의 답글을 받다니!
오늘 코엑스 카페쇼 간다고 어제 질문 올리고 바로 취침모드였거든요.
허나 너무 멀어 안 갔습니다. 사전등록 못해 차비가 안 빠져서라고나 할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커피관련기구와 갓 볶은 커피 파는 곳이 있어
믿는 구석도 있었고요...^^
작년에도 지름신 강림하셔서 올 때 들고오느라 힘들었슴다...주로 먹는 것으로다가...
그래도 맘 먹고 있던 일을 안해 찜찜해하고 있던차 ... 짜잔~ 샘의 답글에 기분 완전 업입니다!
배추농장 정보 너무 감사하고요, 괴산 절임배추 파는 곳에 알아봐야겠어요.
괴산 배추 맛있다 좋다하는데 평해주실 분 없으신가요~16. candy
'07.11.29 6:41 PM저도 감기중인데.....힘드네요~
맛있는것먹고 싶은데....영 입맛이 쓰네요....17. candy
'07.11.29 6:42 PM상보사진 빨리 보고싶어요.^^
18. 은하수
'07.11.30 1:31 PM맘에 와닿은이야기.....감기조심하세요..
19. sugarpowder
'07.12.2 4:20 PM언제나 글을 실감나게 참 잘 쓰시는거 같아요. 타고난 글쟁이라 해야 하나..
늘 살짝 글만 읽고 가는데 오늘을 웬지 리플을 달고 싶네요. ^^20. 수니12
'08.8.28 6:12 PM엄청 늦은 후기...
제가 그렇게 골골했어요.
그래서 밥 못먹으면 대보름빵에다 우유...그건 먹겠더라구요.
그게 또 제 남동생덜에게는 한으로 남겠죠...
괜히 미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