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은 자꾸만 추억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계절인가 봅니다.
오늘은 고등어 조림을 하다가..옛날 일이 생각나...또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해봅니다.
제가 신문사에 막 입사했던 1978년 무렵, 제 업무 중 하나가 원고 청탁하고, 원고 받아오고 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모두 이메일로 원고를 주고받지만, 당시만해도 버스 타고, 택시 타고 다니면서 원고 받아왔습니다.
제가 기자생활을 하면서는 남의 원고를 이메일로는 못받아봤어요. 제가 써보내는 것만 이메일을 이용했다는..^^;;
원고를 받으러 다니면서 에피소드도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한모박사 원고였습니다.
낙원동에서 산부인과 의원을 하던, 당대 최고 유명한 한모박사가 제가 다니던 신문에 매일매일 컬럼을 연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아주 야한...
그 원고를 한달에 두번씩 가서 보름치 원고를 받아와야 하는데...
이제 막 스물세살의, 얼굴에 솜털도 가시지 않은 제가 병원 대합실에 들어서면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눈길이 한꺼번에 쏟아졌습니다.
혹시라도 오해할까봐...들어서면서부터 일부러 큰 소리로 "원고 받으러 왔어요!!"하고 외쳤다는.
암튼 그때는 그 원고 받으러 다니는게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ㅠㅠ
아, 오늘 하려던 옛날 얘기는 이게 아니구요.
그 무렵, 낙원동으로 원고 받으러 가는게 죽기 보다 싫었던 그 무렵...
고 손소희여사의 원고를 받기위해 오후4시쯤 그 유명한 신당동 자택으로 찾아뵈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는데, 그때 막 손여사께서는 점심상을 받아드셨습니다.
제게 건내주실 원고를 얼른 주시고 수저를 드셨으면 좋겠는데, 저를 본 손여사는 반색을 하시며 굳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시는 거에요.
저는 이미 점심을 먹은 터여서 사양을 했는데, "혼자 먹기 그러니까 동무라도 되달라"며 수저를 쥐어주시는 거에요.
그때 김동리선생님이 들어오시면서 점심 먹고 온 사람에게 억지로 식사를 권한다며 한 말씀 하시는데,
손여사께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네, 저 정말 밥먹기 싫어요"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권하는 대로 밥상앞으로 다가 앉았습니다.
밥상을 보니 국이 고등어국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제가 아는 고등어요리는 굽거나 국물이 자작하게 조리는 정도였는데,
손여사의 식탁에 오른 고등어는 고추장을 풀어 흥건하게 끓인 국이었습니다.
수저를 들고 주춤하니까, 손여사께서, "먹어봐 맛있어"하시는 거에요.
얼마나 비릴까..고등어로 국을 끓였는데..하며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맛있는 척 연기라도 해야 손여사께서 기쁘실 것 같아 한수저 떠서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랬는데...정말 하나도 비리지 않고 맛있는 거에요.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고등어국이 맛있기도 하고, 제가 복스럽게 먹어야 손여사께서 기쁠 것 같아서,
밥과 국을 퍽퍽 퍼먹었더니..손여사께서 "점심을 안먹었던 게로군"하시는 거에요.
오늘 고등어를 조리다보니..국물이 평소보다 좀 많아서 조림인지 찌개인지 알 수 없게 되었어요.
국물이 많은 고등어를 보니까..문득 거의 30년전...제가 여릿여릿하던 처녀시절 생각이 뭡니까?
제게도 허리가 23인치 밖에는 안되는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먹기 싫은 것도 상대방 기쁘게 하려고 꾸역꾸역 먹던 그런 순진한 시절이 있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