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일 매일 매일이 다른 날이고 그 날 나름의 특색이 있지만 제겐 금요일이 가장 특별한 날입니다.
우선 일주일 중 하루만 저 개인을 위해서 온전히 쓰는 날이고 (다른 사람의 일요일에 해당하는 날이겠지요?)
그 날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여럿이 어울려서 제대로 맛보고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역사 모임이 있는 날,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딸아이와 미국에 가 있는 후배가 전화로 문의한 스페인어, 그리고 영작문에 필요한 책 소개를 부탁받아서지요.
그녀는 이 곳에 있을 때는 모임에 오라고 해도 공부에 별 흥미가 없다고 사양하던 편이었는데
그 곳에 가서 어린 딸이 수업중에 스페인어를 배우게 되었노라고, 그런데 하나도 모르니 질문에 답할 수 없어서 곤란을
겪고 있다고요. 그러면서 돌아오면 딸하고 둘이서 토요일 모임에 참석하고 싶다고 해서 막 웃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동기에 대해서 생각해본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녀의 부탁 덕분에 저도 새로 눈에 담아온 책이 여러 권이어서 역시 책 부탁은 즐거운 부담이로구나 느낀 날이었습니다.
몇 번에 걸쳐 머라여님의 발제가 이어지고 있는 강남 역사 모임, 그녀는 처음과는 달리 긴장감이 사라지고 덜 준비한다고 하지만
그녀가 우리 중의 가장 신세대이고, (나이만이 아니라 기기를 사용해서 정보를 찾는 것을 포함) 발제의 능력도 좋아서 2011년을
머라여의 해로 정해도 좋다고 우리들은 너스레를 떨었답니다.
지금 2차대전의 막바지를 향해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중인데 원자 폭탄을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한 내용중
물리학적인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 생기자 노니님이 칠판을 이용해서 설명을 합니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다른 길로 벗어나 중력을 이기기 위한 인간의 노력 ,그것이 삶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 거기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에 관한 것, 그런 이야기가 근대적 패러다임이 아닌가, 중력을 이기는 삶이 가능한가,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가
번지게 됩니다. 이 수업의 매력은 역사적 사실을 하나 더 알았노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런 이상한 길로 빠지는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하지요. 그런 이야기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게 되고, 우리가 함께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기도 하고요.
맛있는 점심후에 3시간 계속 되는 조지 오웰 읽기, 원래는 어제 책을 마무리해야 했지만
역사 시간에는 세월아 가라 하고 발제를 계속 하라고 하면서 영어 시간에는 너무 빠르게 나가는 것 아닌가
그러니 구애받지 말고 조금 천천히 나가자는 머라여님 지적에 따라서 2차대전 당시의 영국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발제를 세 사람이 맡았지만 결국 캘리님의 차례는 돌아오지도 못하고 끝났는데 , 그 몫과 새로 시작하는 50 psychology classics의
발제를 나누고 나니, 캘리님의 공고가 있습니다 . 마지막 금요일 길담에서 노성두 선생님의 정물화에 관한 강의가 있다고요.
그래요? 그렇다면 음악회를 다 같이 취소하고 한 번뿐인 강의이니 그 곳에 함께 갈까요?
그 때 밀크군이 저도 가고 싶다고 손을 드네요. 밀크군은 우리 모임의 유일한 청일점인 대학생인데 대학생이 모임에 참석한다는 말을 듣고
큐트폰드님의 아들이 엄마의 모임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고 해서 웃었습니다.
아줌마들이 모여서 무슨 공부를 그렇게 하나 그 정도로 생각하다가 대학생도 함께 할 정도의 모임이었나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지요?
아직 고등학교 일학년이지만 이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꼭 함께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여학생이 한 명 있습니다.
이팟이 이 모임에 들어오면 함께 과학사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금요일의 영어책 읽기 모임에 참석할 만한
대학생이 있다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니 이 글을 읽은 사람들중에서 우리 아이도 함께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든다면
소개해주시길!!
원래는 수업이 끝나고 러블리걸님 집에 잠깐 가서 피아노 악보중 모르는 것을 배우려고 책을 챙겨갔지만 호암가는 날이라
아무래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네요. 그것이 하나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서 마음을 접고
대신 조금 시간 여유가 있어서 광화문 교보에 갔지요. 일요일부터 읽자고 약속한 독일어판 어린 왕자를 구하러 간 길
동행한 캘리님과 미야님에게 한 눈 팔지 않고 책만 사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점에서 한없이 시간이 길어지게 되니까요.
이번 주는 일본어 판 어린 왕자를 시작한 주이기도 하고, 독일어판 어린 왕자를 맛보기 시작하는 주이기도 해서 상당히 특별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더구나 이번 주에 합류한 pinetree님,멀리 문래동에서 오신 분인데, 그녀가 참석함으로써 일본어로 말하기 수업까지 겸할 수 있게
되어서 여러가지 궁리를 하게 됩니다. 어떤 내용으로 말하기를 할 수 있게 될 것인가 하고요.
일산에서 펼친 장으로 여러 곳에서 오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니 제겐 그런 장이 풍성해지고 있다는 것이 감사할 일이랍니다.
금요일 하루 종일 즐거운 날이지만 한가지 흠이 있다면 낮잠을 잘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마지막 음악회에서는 처음에 살짝 졸기
쉽지요. 그러다가 잠이 깨면 그 때부터는 온전히 몰입이 가능한데, 어제는 2011년 시즌 제겐 마지막 공연인 일 트로바트레였습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트루바두르라는 음유시인의 이탈리아어인 모양이네요.
아라곤이 배경인 이 오페라에서 주인공 역 레오노라 소프라노의 기량이 너무 좋아서 테너를 압도하는 공연이었습니다.
미야님은 자신이 본 최고의 오페라라고, 기대밖이라서 더 좋았다고 흥분하고, 캘리님은 오래 전 이 오페라를 보러 왔을 때 집에 가는
길에 음반을 샀었노라고 하더라고요. 메트로폴리탄의 오페라를 직접 보는 것은 아니어도 영화로 보는 오페라도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모릅니다. 오페라를 즐기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강산이 바뀐 것인 셈이네요. 제겐!!
함께 본 그림은 루이스 브르즈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