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신문기사를 보고는 델피르와 친구들이라니 참 이상한 제목이로군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한겨레신문에서 그 곳에서 주최하는 사진전이라 그런지 다양한 기사를 계속 내보내더군요.
읽다보니 아 델피르가 바로 사진의 역사를 바꾸었다는 사람이구나 관심이 생겨서 지난 금요일에 강남 역사
모임 끝나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임 끝나고 점심 먹고, 그리고도 2차로 남은 세 사람이 여러가지
이야기에 몰두하다 보니 도착한 시간이 5시 30분
시간이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물어보니 매표소에서는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래요?
일단 표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보니 시간이 모자랄 것이 눈에 보이네요.
그래도 일단 관심있는 것부터 보기 시작해서 안으로 들어가니 사라 문이 촬영하고 자신을 이야기꾼이라고
소개하는 인터뷰어가 로베르 델피르를 인터뷰한 동영상이 있었습니다.
팽팽한 인터뷰란 이런 것이로구나 매혹되어 그 안에서 정신없이 보고 있는데 갑자기 폐관시간이 되었노라고
나가달라고 하더라고요.뭐라고요?

매표소에서 1시간 30분 이면 본다고 해서 표를 구해서 들어왔는데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시간 아닙니까?
이렇게 귀한 자료를 많이 갖고 있으면 적어도 4시간은 보아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니 표에다 다음에
다시 와도 된다고 메모를 해주면 어떤가 물어보니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잠깐 기다려보라고 , 초대권을
한 장 주더라고요. 이렇게 전시를 마음으로 보아주시는 것이 고맙다고 하면서요.

여행을 함께 했던 친구중의 한 명이 지난 주 금요일 토요일에 서울에 올라올 일이 있다고 연락이 왔더군요.
무슨 전시가 좋겠는가 물어보길래 그러면 기다려보라고 델피르 전시를 보고 소감을 연락해주겠다고 했다가
바로 전화를 했지요. 그 전시 꼭 가보라고. 그랬더니 정말 토요일에 다녀와서 정말 좋았노라고 메시지를
보냈네요.

그 친구가 이번주에도 학회가 있어서 올라오니까 대학시절 친구들이 오랫만에 모이는 것이 어떤가
모여서 전시회도 가고 음악회도 가고 하룻밤 모여서 이야기도 하기로 갑자기 급조된 금요일 모임
원래는 시립미술관, 그리고 덕수궁 현대미술관의 전시를 본 다음 밤에 길담서원의 음악회에 가기로 이야기가
되었는데 한 친구의 사정상 아무래도 모임 장소가 예술의 전당이 낫겠다 싶어서 갑자기 장소를 변경하는 바람에
금요일 낮 시간 다시 델피르 전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2시에서 6시까지 4시간을 그 곳에 있었는데도 나오기가 아쉽다고 느낀 그런 전시였습니다.
더구나 지난 주에 제대로 못 듣고 나온 인터뷰, 다시 한 번 들었어도 그 자리에 다시 앉아 있고 싶은
참으로 인상적인 인터뷰였는데요 세 명이서 일치한 의견이 인터뷰 자체로도 훌륭한 전시가 되지 않았을까
그것이 이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었지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을 필두로 사진의 역사에서 언급되는 대가급의 사진들, 델피르가 창간한 잡지
그가 출간한 책들도 전시가 되었는데요 인상적인 것은 브레송의 사진을 22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한 것이었어요.
그 안에는 현대사의 순간 순간들이 한 마디로 말하면 사진작가의 말대로 결정적 순간들이 많이 있어서
갑자기 현대사의 한 복판으로 들어간 기분이 들기도 했고요.

더구나 전시장안에 델피르와 친구들 전시용으로 비치된 사진집이 많아서 평소에 보기 힘든 다양한 사진집을
앉아서 차분히 볼 수 있었던 것도 생각지 못한 호사였답니다.
여행지에 가서는 이렇게 긴 호흡으로 한 전시를 보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어서 대조적으로 더 이번 전시의
긴 호흡이 제겐 인상적이었던지도 몰라요.

늦은 밤 하루의 일정이 끝나고 잠깐 커피 마시러 간 곳에서 한 친구가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무래도 혼자서 다시 와서 보고 싶은 전시라고요. 그러더니 다음에 여행을 함께 가게 되면 한 곳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무르면서 보면 좋겠다고 예를 들면 베네치아의 구겐하임 미술관의 경우 이틀 정도 연속해서 가고
그 안에서 조금 여유있게 하루 종일 그림을 보면서 쉬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하네요.
그게 바로 내 말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 곳에 가면 보고 싶은 것이 많아서 참 쉽지 않더라고 그래도
다음에 함께 가게 되면 그런 것을 고려해보자고 대답을 했습니다.

여행지에서의 그런 긴 호흡을 생각하는 친구가 생긴 것이 기뻤습니다.저도 가끔은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아직까지 시행을 못하고 있던 중이라서요.
2월달도 내내 하는 이 전시, 아직 너무 어린 아이들은 곤란하지만 그래도 중학생 이상이면 그리고 혹시
카메라에 관심이 있거나 사진 보는 것이 좋은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함께 동반해서 갈 수 있는 좋은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꼭 아이들과 동반할 필요는 없겠지요?
매일 매일 세 끼 밥 차리느라 방학이 조금 힘들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느 날 훌쩍
한 나절의 나들이로는 정말 좋은 상차림이 아닐까 싶네요.

1월말이면 인턴이 끝나는 보람이랑 2월에 사진전 함께 가자고 먼저 이야기 꺼내고 사정이 바뀌어서 혼자
가게 되었더라고요. 그래도 한 번 더 보고 싶은 전시라 2월에 짬을 내서 다시 보고 싶다니
참 힘있는 전시이기도 합니다.

대학시절의 네 친구, 각자 현장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빴던 시절에는 일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어려웠는데 어느새 아이들은 크고, 이제는 방학에는 아니, 두 달에 한 번은 모여서 전시회도 가고 음악회도
가고 가능하면 연말에 여행도 함께 가자고 이야기나누면서 ( 두 친구가 방학이 있는 직장을 다녀서요)
깊은 밤까지 이야기나누다 보니 마음속 고통을 함께 나누기도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함께 이야기하기도 하는
그 시간이 참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친구는 대학때 카메라를 즐겨 들고 다녔던 경력이 있는 친구라서 물어보았지요. 전시를 보고 나서
카메라를 다시 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 하고요.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어도 카메라를 한 대 새로
장만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네요. 조만간 카메라를 들고 등장해서 서로 이야기할 날이 오지 않을까
새로운 기대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사진전에 간다는 것, 혹은 미술전시회에 간다는 것, 그것은 교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곳에서 단 한 번도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시선을 만나게 되는 것, 그래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세계와
만나게 되면 잠깐 비록 순간이라도 제 안에 반짝 빛이 비추고 그 빛이 그 이전과 다른 어떤 것을 자극하게
되는 그 순간의 놀라운 만남을 기억하기 때문에 자꾸 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사진은 29일 피렌체에서 점심을 먹고 바르젤로를 찾아서 가는 도중에 만난 로비아란 제목의 상점에서
찍은 것과 (루카 델라 로비아라고 도나텔로와 동시대의 조각가인데 아주 예쁘다는 느낌의 조각을 해서
동시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조각가입니다. 브루넬레스키의 고아원 톤도안에 있던 아이들을 조각한
바로 그 조각가인데요 그의 이름을 딴 상점에서 주인장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해서
들어가서 한참 구경을 했지요) . 미켈란젤로의 승리가 있다는 베키오 궁을 슬쩍 들여다만 보고 바르젤로로
가던 길에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하루동안 본 것들이 많아서 여행기가 아직도 29일에 머물러 있어서
버리기 아까운 사진을 함께 올려 놓았습니다.
사진전에서 만난 한겨레 신문사의 한 기자의 강의, 그는 말을 하더군요. 사진을 찍으러 출사나간다, 사진을
건진다고 하는 말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진은 건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고민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담는 것이라고, 여기에 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가, 여러분이 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것이 무슨
의이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보면서 찍기 바란다고요. 생각지도 않게 강의의 말미만 들은 셈이지만 제겐
전시장에서 만난 참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대상이 있어서 찍는 사진작가와 나는 이라고 자신을 드러내는 사진 작가가 있다고, 그런데 정말 귀한 것은
나는 이라고 자신을 드러내는 작가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는 델피르의 인터뷰 대사가 겹치면서
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에 대해서 뒤돌아보게 된 시간이기도 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