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아에서 산 책을 바로 앞인 민박집에 두고 다시 길을 나서서 찾아가는 곳은 산 마르코 수도원입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를 비롯해서 그가 수도사들의 방마다 그렸다는 그림을 보러 가는 길이기도 하고
도미니크 수도회의 일원이었던 사보나롤라의 흔적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비가 부슬 부슬 내려서 수도원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유한한 생명체인 인간이 무한의 존재인 신을 만나고 (어떤 식으로 만날 수 있을까 제겐 늘 미스터리이지만요)
신에게 삶을 통째로 헌신하기도 하는데 수도사들도 바로 그런 존재들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도 그 삶이 늘 축복이기만 했을까, 인간적으로 엄습하는 고뇌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엉뚱한 생각을 유발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산 마르코 수도원은 도미니크 회의 수도원으로 12세기말 완공되었지만 그 이후 메디치가의 코시모가
대대적으로 후원을 한 곳으로 자신의 개인 기도실도 그 안에 두고 기도하러 왔다는 일화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수태고지를 만나기 전 다른 곳을 먼저 둘러보고 있는 중입니다.



사진 정리하던 중 혼자 웃었던 적이 있는데요 어딜 가던 글씨가 있으면 꼭 찍었구나, 왜 나는 글씨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글씨가 그 곳이 어디인지, 운이 좋으면 영어로 다시 한 번 설명이
되어서 그것을 이해하는 경우도 생겨서 좋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심한 것 아닌가? 잘 모르겠네요.

아 이 복장 기억난다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네요. 성화를 보다보면 이런 복장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요.
도미니크 수도사들의 기본 복장이 아닐까 싶어요.

반대편의 그림도 유리에 비치고 사진을 찍고 있는 제 모습도 비쳐서 이상한 모습이 되어 버렸지만
사보나롤라의 초상화입니다.
그는 메디치 가문이 득세하던 피렌체, 그들이 후원하는 바로 이 수도원에서 머무르면서 메디치 가문을 질타하고
교황과도 불화했던 수도사로 한 때는 피렌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보티첼리의 경우는 설교에 감화되어
그 동안 그린 그림을 불태우고자 했던 시기도 있었다고요. 미켈란젤로도 그의 설교이후 더 종교적으로 변해
내면속으로 침잠했다는 이야기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 곳도 기본적으로는 촬영금지, 그래서 수태고지를 마음으로만 담으면서 여러 차례 보게 되었지요.
미술사 책 어디에서도 만나는 그 그림을 이런 식으로 바로 그 자리에서 보게 된 것에 기뻐하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코시모 데 메디치의 방이란 팻말을 찍었습니다.
각 방안에는 그림이 하나씩 있는데 피렌체에 관한 책에서 보니 나이가 많은 수도사들은 프라 안젤리코에게
자신이 원하는 그림 소재를 말할 수 있었지만 나이가 어린 아직은 수련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수도사들의 방에는
그런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요. 아하 그래서 어떤 방에는 조금 더 부드러운 소재가, 어떤 방에는 이런 소재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과연 마음의 평화가 올까 싶은 소재가 그려져 있었던 것이로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지요.


책이 대량으로 인쇄되어 나오기 전의 책이란 단순히 읽기 위한 수단을 넘어서는 공력이 들어가서
지금 보고 있으면 그 자체가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오래 전의 악보가 바로 이런 식으로 기록된 것 같네요.

당시에 물감을 만들어 쓰던 방식을 보여주는 것인데 파랑에서 눈길 거두기가 어렵더라고요.

사보나롤라와 관련된 기록이란 것 그리고 그것에 관련된 시기만 알 뿐 다른 것은 거의 그림에 불과한 것
그래도 찍어두니 다시 그 시기를 들추어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드네요.

2층을 둘러보다가 밖을 내다보니 꾸물꾸물한 날씨라 그런지 밖의 모습이 이전과는 달라보입니다.

이층에 있는 사보나롤라의 방까지 다 둘러보고 내려오니 역시 그 안의 샵에는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귀한
자료를 상품으로 만든 것이 가득합니다. 어느 샵이나 그 곳을 보면 이 공간안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 지가
가장 보편적으로 드러난다는 것, 그러니 이것이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인가 하고 혼자서 웃게 되네요.


한 장 구해서 프레임을 하면 어떨까 잠시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집에는 더 이상 공간도 없는데 욕심이다 싶어서
자석으로 만든 것 하나 구해와서 보고 있는 중이랍니다.

프라 안젤리코, 본명은 물론 아니지요. 그는 이 수도원에 기거하던 수도사이기도 한데 그의 붓질이 너무 아름다워서
안젤리코라고 불렸다고요. 그리고 프라는 수도사들을 부르는 명칭이겠지요? 수도원장을 하라는 권유에도
자신은 그런 그릇이 아니라고 사양하고 계속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를 읽으면서 자신의 본분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긴 의자에 앉아 있는 이 아이, 귀여워서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좋다고 합니다.

산 마르코 수도원의 사진을 다 정리하고 나니 프라 안젤리코 그림을 조금 더 보고 싶네요. 당연히!!

이 그림의 제목이 코스마스와 다미안이란 성인의 beheading인데요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두 성인이 의사로서 기적을 행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코스마스 성인을 따서 코시모라 이름지은 코시모 1세는
두 성인을 자신의 가문으로 수호성인으로 정했다고 하는데 아마 그래서 프라 안젤리코에게 부탁한 것이
아닐까? 조금 알게 된 지식으로 이 그림이 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신기합니다,프라 안젤리코를 찾아보던
그 이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림이라서요.


찾다보니 같은 화가에 의해서 이 두 성인에 대해 그려진 것이 여러 점인데요 제목이 눈길을 끄는 것 한 점
그들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고치는 장면이 있네요.

도미니끄 성인이 십자가를 붙들고 있는 장면이로군요.


예언자들 각각의 얼굴을 보는 일이 재미있는 그림입니다.제목 자체가 예언자들이고요.
산 마르코에서 보았던 가장 수수께끼같은 작품이었는데요 이 그림에 대해선 더 알아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제 눈길을 끌었던 그림을 도판으로 만났습니다.이러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오늘은 여기까지 보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