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사람들 모두 친절하지만
그중에서도 당신이 가장 친절합니다.
나와 결혼해 주셨으니까요
...
사진속의 당신은 늘 웃고 있습니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계속 보고 있는 사이 당신이 좋아졌습니다.
...
나중에 당신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 당신을 사랑해도 되나요?
- 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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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송해성 / 출연 최민식, 장백지, 공형진 / 2001년작
거의 10년전 이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하자마자 첫날 달려가서 보고 후회없는 선택에, 무척 좋은 영화를 골라봤다는 생각에 가슴마저 뿌듯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이 영화가 기억이 나서 TV를 켜고 VOD서비스가 되는지 찾아봤는데...
...있었습니다.
당시 흥행에도 실패하고 많은 사람들이 외면했던 이 저주받은 걸작이 왠일인지 무료로 서비스 되고 있었습니다.

10년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보고나니 우리 시대에 이런 걸작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아쉬움과 함께 이런 수작들이 점차 관객들에게 외면받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점점 좋은 영화보다는 단지 보는 동안만 눈을 자극하는 쓰레기같은 영화들만 양산하게 되는 우리네 영화판 현실이 더욱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아사다 지로의 원작 소설 "러브레터"를 각색한 이 영화는 21세기의 벽두부터 어쩌면 향후 우리 사회에 가장 심각한 문제로 제기될 해외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과 삶의 질에 대한 혜안마저 가지고 있는 듯 살짝 풍겨지는 위기의식마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주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는 문제는 결코 그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영화를 통해 투영된 사회상을 살펴볼 때 은유적으로, 비유적으로 보여지는 모든 현상은 이미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회속 구석구석 널리 퍼져있음을 상기한다면 그 또한 쉽게 지나쳐버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강재(최민식扮)는 조직안에서 후배들에게조차 형님소리 제대로 듣지 못하는 밑바닥 3류 양아치.
그와 함께 조직생활을 시작했던 용식(손병호扮)은 어느덧 조직의 보스가 되어 있었고 동기에게 '형님~ 형님~'하며 굽신대던 강재.
어느날 술에 취한 용식이 자기 구역을 넘보는 라이벌 조직중 누군가를 살해하게 되고 그 살인 누명을 강재에게 한번 쓸 것을 부탁합니다.
고향에 돌아갈 때 배 한 척 살 돈 만들어간다던 그의 꿈을 기억하고 다른 조직원들에게도 그를 형님으로 부르게 하면서 살갑게 굴며 그 돈을 만들어줍니다.
강재는 어쩌면 자기의 처지가 더이상 희망도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고 스스로 자학하며 그 길을 선택했을지 모릅니다.
하루동안의 고민끝에 그 일을 수락하려는 때, 느닷없이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없는 아내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단지 돈 몇푼 필요해서 위장 결혼했던 그 중국인 아내의 주검과 장례를 찾아가는 여정 동안 어쩌면 그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도데체 누가 나같은 3류 양아치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어떻게 들을 수 있단 말인가?
누가 나를 친절하다고 칭찬할 수 있단 말인가?
마지막, 파이란의 유골함을 안고 어느 포구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못난 울음을 터뜨리는 최민식의 그 연기력은 어쩌면 우리 시대 최고의 비극적 카타르시스를 안겨줄 명장면으로 꼽히기에 전혀 부족함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최민식의 연기를 말할 때 "올드보이"의 그 모습들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 최민식의 연기는 바로 이 작품 "파이란"에서 단연 최고였습니다.
그의 연기 경력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 개봉시에는 당시 중국에서도 꽤 유명한 배우 "장백지"의 출연으로 상당한 화제를 모았었습니다.
그 이후 최근 유출된 섹스비디오 파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 좋지 않은 기억이 각인되었지만 10년전 이 작품에서 보았던 장백지는 깊은 내면의 연기와 함께 최고의 여배우로 꼽히기에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얼굴도 예쁘고 연기력도 출중하고 참 나무랄데 없는 배우였지만 이후로 장쯔이의 유명세에 밀려 지지부진하더니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적어도 이 영화에서 슬픔을 간직한 파이란을 완벽하게 연기한 그녀의 매력은 그런 좋지않은 이미지의 소문들 전부 잊어버리게 할만큼 탁월할 뿐입니다.
이런 영화가 또 나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