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아스 라인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세계를 보여준 감독과 대본을 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궁금했던 기억이 나네요. 인사동의 안토니아스 라인이란 제목으로 소개한 아원공방

남편의 폭력과 11명의 식솔을 먹여살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매년 채송화밭을 가꾸었다는 엄마에게서 태어난
7몀의 자매가 꾸려가는 공간이라고요. 손재주가 너무 없어서 나는 사실은 손에 일종의 이상한 마술이 걸린
사람이 아닐까,그곳으로 가지 못하는 에너지가 전부 머리로 옮겨가서 글씨만 보면 관심이 촉발되는 이상한
아이가 된 것이 아닐까, 그러니 지능검사에서 나오는 숫자도 사실은 문을 숭상하는 나라라서 가능한 숫자이지
사실 일상적인 생활의 지혜를 묻는다면 거꾸로의 결과가 나올 것이 틀림없을거야 그런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사라진 열등감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은 조금 떨어져서 그런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
차이라고 할까요?

70이 되어서 글을 배우기 시작한 그녀들의 어머니는 그 이후 계속 일기를 쓰신다고요.
딸들이 펼쳐준 장에서 어느 날 전시회를 연 어머니, 그녀의 작품앞에서 눈물을 흘린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꽃밭을 실크사로 수놓은 것인데요 이런 것은 사진으로 보아서는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기 어렵겠지요?
어느 날, 인사동에 가면 이 곳을 찾아보고 싶어졌습니다.

14명의 화가들 중 한 사람만 골라서 그녀의 작업을 보러가라고 하면 단연 이 사람이라고 마음에 꼽은
양광자님, 그녀는 지금 67세라고 하네요. 대지주의 딸로 태어났지만 여자라서 공부를 시켜주지 않자
어떻게 하는 것이 그런 상황을 넘는 것일까 스스로 길을 찾았다고요. 간호학을 공부하고 독일로 간호사로 간
다음 바로 간호사증을 반납하고 (바로 반납하면 벌금이 있던 시절이라고요 )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하고
직업을 구하고, 그림을 그린 사람, 그 사람안에서 얼마나 굉장한 분노와 열정,그리고 외로움이 소용돌이 쳤을까를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묘한 경험을 했습니다.

처음 찍은 그림과 두 번째 그림 사이의 변화가 눈에 보이지요?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은 그녀는 그림으로 자신을 치유했다고 합니다. 그 때 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고
결국 살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겠지요? 그래도 예술하는 사람들은 출구를 찾을 수 있는 좋은 방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만이 아니라 그 작업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길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결코 개인적인 길이 아니로구나 그런 것을 느끼면서 그녀의 작업을 보고 있습니다.

광화문 공사중에 강익중의 작업과 더불어 새롭게 눈길을 끄는 작업이 있어서 도대체 누구의 작품일꼬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바로 이 책을 보면서 풀렸는데요 색점 작업을 한 양주혜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색점이 탄생하게 된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요 프랑스로 유학을 한 그녀가 알아들을 수 없는 수업
읽을 수 없는 책에 절망하면서 과제를 내야 할 당시에 책에 색점을 가득 그려서 제출을 하게 되었다고요.
그 이후 색점 작업은 여러가지로 변형을 겪기도 하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고통에서 화가는 그렇게 길을
찾아가는구나 놀랍고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님의 글쓰기가 40에 시작되었듯이 역시 40에 그림을 시작한 윤석남님 그녀 작품 전시회에
모르고 갔다가 (다른 것을 보려고 갔다가 느닷없이 만났고 그 이후로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 받은 깊은
인상으로 마음속에 세워두고 작품을 찾아서 보게 되는 사람중의 한 명입니다.
버려진 개를 키우고 있다는 사람의 기사를 읽고 그 곳을 찾아갔고 그 다음 개를 깍는 작업을 계속 했다고요.
기무사 자리에서의 전시모습이라고 하는데요

제겐 이 작업도 버려진 개를 키우는 상황의 할머니도 제 상상력을 넘는 일이라서 언어가 되어 나오지
않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이해한다고 정말로 이해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요?

사실 저는 저 자신보다는 딸아이를 통해 여자라는 것, 여자로 크는 것, 그리고 여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그 아이의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하다보니 비로소 여성주의자들이 말하던 문제들에 눈을 뜨게 되는 느낌입니다.
제 인생은 여자다 남자다 그런 카테고리 말고 제 멋대로 살아온 기분이라서 사실 여성학에서 말하는 것들에
별로 공감이 없었던 셈인데요 딸의 앞날을 생각하다가 정통으로 그런 문제와 대결하게 되는 묘한 상황이
되는 것을 보니 그냥 둘러갈 수 있는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요?
멀리서 보면 그저 핑크빛 소파인 것 같지만 그 소파에는 앉을 수 없게 못이 길게 나와있습니다.
섬뜩하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더 섬뜩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현실이니
현실이 더 그로테스크하다고 할까요?


날개는 어느 날 갑자기 솟아나는 것이 아니겠지요? 조금 더 단단하거나 조금 덜 단단해도 여성의 현실을 막고
있는 프레임을 혹은 벽을 뚫고 나가는 힘이 있어야 날개가 생길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그것은 과연 여성의 경우만
이겠는가 하는 것에 제 고민의 일단이 늘 놓여있다는 것,그리고 그런 힘은 과연 내면에서만 나오는 것일까
누군가와 접속하거나 어떤 단체와 접속하기도 하고 거기서 힘을 얻기도 하는 것 아닐까?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런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것을 잘 할 수 있을까? 외부에서 힘을 얻고 자신은 쏙 빠져나오면 되는 것일까
그렇게 받은 힘을 어떻게 서로 나눌까, 그런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요즘 특히

사르트르 대성당의 외벽에 조각된 성인들을 보면서 그녀는 그 작업을 한 석공들을 생각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자신의 작업을 통해서는 성인이 선 자리를 석공들로 바꾸어 놓고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담았다고요.
이 작품은 정말 실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마침 요즘 건축사를 공부하면서 건축기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성당 하나를 정해서 제대로
건축사의 설명을 따라가면서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거나, 아니면 그 시기의 석공들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라서일까요? 이상하게 이 작품이 마음을 흔들어놓는 묘한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거미여인 아라크네란 이름으로 소개된 함연주의 작업입니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소개받기 전 이미
덕수궁의 현대미술관 전시를 통해서 만났기 때문일까요? 14명의 명단에서 이름을 발견하곤 반가운 마음에
먼저 뒤적이면서 그녀에 관한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외국에 공부하러 간 그녀가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카락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그것으로
작업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머리카락 하나 하나를 모아서 이런 작업을 한다는 것의 노동강도를 생각하게 되네요.

이런 작업은 멀리서 보면 마치 크리스털 같은 느낌이지요?
아니 재료를 쓰다 쓰다보니 자신의 머리카락까지 그렇게 말하고 말 것은 아닐 것 같아요.
같은 재료를 보아도 같은 작업이 나오는 것은 아니고, 또 그 혹은 그녀인 예술가들이 그 재료로 자신의 절실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가를 보면서 결국 우리는 우리들의 문제를 그곳에서 발견하거나 우리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어렴풋이 느끼거나 아니면 발상을 전환해서 새롭게 보게 되는 힘을 얻거나, 아니면 눈물을 통해서
공감하는 과정,혹은 치유받는 과정을 거치거나 하는 것 아닐까요?

사실 책 속의 첫 화가 김원숙님의 작품은 사진을 찍는다는 생각을 못해서, 그리고 14명 중 빠진 몇 명은
앗 이 작품을 하다보니 벌써 순서가 넘어가서 못 찍고 말았습니다.
강의가 다 끝나고 강사에게 수업중에 사진 찍은 점 죄송하다고 그런데 사실은 이 강의에 관한 글을 쓰고 싶어서
찍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흔쾌하게 자신도 책에 대한 feedback이 있으면 더 좋으니 글을 쓰면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하네요. 앗 미리 말을 했더라면 그렇게 조바심 내면서 조심스럽게 찍지 않고
제대로 원하는 사진을 다 찍을 수 있었으련만 ,아쉽더군요.

마지막으로 강연을 들었던 민우회의 그 방 벽에 새겨진 말이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글귀라서
찍었습니다.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그리고 우리들의 커가는 아이들에게도 이런 말로 서로 격려하고
성장을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서요.
미술, 당장 우리에게 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밥보다 가끔은 더한 것을 줄 수 있는 것, 그래서 시간이 나면
저는 미술관을 기웃거리게 됩니다 .거의 늘 다녀오면서 뭔가 달라진 그래서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의 나와
들어갔다 나오는 순간의 내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 그것이 한 순간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신체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는 미술관에의 여행을 늘 설레면서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언젠가 책 속에서 만난 그녀들의 작업을 직접 만나게 되면 그 때 또 무슨 이야기로 소개글을 쓸까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