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람이가 말을 합니다. 엄마, 바이올린 활이 망가졌나봐.
아, 그거? 망가진 것이 아니라 활을 풀어놓아서 그래. 쓰지 않을 때는 풀어놓아야 한다고 해서.
활을 풀고 조이면서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바이올린 활만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그런 조임과 푸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요. 한 번이 아니라 자주.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혹시나 하고 말을 했습니다. 혹시 집에서 쓰지 않고 묵혀놓는 보면대 있는 사람있나요?
한 번 찾아보겠노라고 하던 멤버가 지난 목요일 보면대를 들고 와서 빌려주었습니다.
마루에 보면대를 놓으니 공연히 뭔가 틀이 잡히는 기분이 들어서 신기하더군요.

오늘 수업을 하던 중 한 아이가 이야기를 합니다. 선생님, 저는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은데
아빠가 다시 한 번 생각하라고, 선뜻 찬성을 하지 않으신다고요.
그래서 제가 말을 했습니다. 꼭 피아노 선생님에게 배울 것이 아니라 친구중에 피아노 잘 치는 아이 있지?
그런 친구에게 한 곡이라도 제대로 배워서 즐겁게 치면 어떨까? 옆에 있던 여동생이 선생님 저는 기타를
배우고 싶어요 (자매가 함께 공부하러 오거든요 ) 그래? 그런데 기타를 칠 줄 아는 친구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글쎄요. 그래서 갑자기 영어 시간에 악기 이야기로 번지던 시간, 집집마다 시작했다가 그만둔 악기가
얼마나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을까, 그것을 재활용할 방도는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혼자서
슬며시 웃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새롭게 배우고 싶다고 생각할 때 너무 거창한 것을 꿈꾸느라 그 일에 달려들기가 어려운
경우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덩어리를 잘라서 쉽게 달라붙어본다면 거기서 방법이
생길 수 있을 것을 ..

지난 겨울 루브르 박물관의 어린이 서점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어린이 미술사 책, 나의 첫 미술 이야기라고
풀이 할 수 있는 불어로 씌여진 책을 만났습니다. 사실은 퐁피두 센터의 서점에서 처음 만난 책이지만
그 때는 불어라서 그냥 휙휙 넘기기만 했었는데 루브르의 어린이 서점에서 다시 만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고 아무튼 언젠가 읽을 수 있길, 못 읽는다 해도 그림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니까
그렇게 마음먹고 책을 한 권 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바라보기만 하면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철학수업 끝나고 잠깐씩 불어를 함께 공부하는 (함께란
말은 어폐가 있고 제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 조르바님이 생각났어요. 그녀에게 책을 한 권 선물하고
같이 읽자고 부탁해보면 어떨까? 보람이가 귀국하기 전에 그 책을 꼭 구해오라고 여러번 메세지를 보냈고
드디어 책이 왔지요.
이번 화요일부터 읽기로 약속을 정하고 나니 아무리 실력이 없어도 맨 손으로 가기는 체면이 서지 않아서
어제 처음으로 책을 펴들고 단어를 찾았습니다. 한 장을 거의 다 찾아야 하지만 문제는 동사변화의 경우
원형을 알지 못하면 못 찾는 말도 많다는 것, 아, 영어의 기초가 모자라는 사람들이 느끼는 어려움이
바로 이런 것일까? 드디어 거기까지 생각이 가는 것을 보니 동변상련인가요?

고민고민하다가 그 페이지를 복사해서 막내 여동생에게 전해주고 오늘 밤 전화를 통해서 번역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지요. 전화 통화로 일종의 사전 과외를 받고 나서 이렇게 이 주일에 한 번씩만
도와 달라고 하니 아니 그렇게 조금씩 진도를 나가는가 하는 뉘앙스로 말을 하더군요.
내겐 그것도 벅차니까 앞에서 배운 것 익히면서 나가면 될 것 같다고, 아무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현실적인 일에서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제가 이상하게 무엇인가 배우는 일에서는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이 신기하네요. 누군가 힘이 될만한 사람에게 부탁도 잘하고 저 자신도 누군가 곤란해하거나
도움을 받고 싶어하면 어떻게 하든지 방법을 만들어보게 되는 그런 순발력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참 이상하다고 할까요?
아무튼 그런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있으니 미술책 읽기를 버벅거리면서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조금 생긴 날이었습니다.
영국 화가 콘스터블의 그림을 챙겨서 보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난 금요일 전시회의 영향이겠지요?
그림 속의 무지개를 보고 있으려니 이런 저런 작은 일들이 제겐 현실의 무지개로 등장하는 해였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오늘 수업중에 번역을 해주어야 할 문장이 있었는데 그 안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정신 집중 시간이 많아야 6초에서 11초, (한 번에 ) 그런데 11초에서 6초로 줄어드는 것은
여러가지 영향으로 인한 것이라고, 그래서 집중력을 늘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질문하러 온 아이가 정말 이렇게 짧아요? 하고 놀라더군요. 11분도 아니고 11초라니
정말 저도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글을 보다가 생각난 것이 우리앞에 해야 할 과제가 없으면 더 지루하고
무기력한 이유를 뇌의 측면에서 소개한 글이었는데요 실제로 우리의 뇌는 한 가지 생각을 오래 하기 어렵다고요.
그래서 눈앞의 할 일이 없으면 생각이 다른 곳으로 번지기 때문에 차라리 숙제라도 과제가 있는 편이
그런 distraction (정신이 산만하게 분산되는 )을 막을 수 있다고 하던 구절이.

활이야기에서 시작된 오늘의 수다가 이리 저리 방향을 잃고 떠돌아다니지만 덕분에
콘스터블의 그림을 보면서 음악도 들었던 즐거운 시간이 되었답니다.제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