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for 1의 음반중 8번째,모짜르트의 fantasia베토벤 소나타 32번 ,그리고 슈베르트의 소나타 한 곡
이렇게 한 피아니스트가 계속 연주하는 피아노곡만 들어있는 조금 특별한 음반을 만난 아침
피아노소리속으로 녹아 들어갔다가 한 번 다 연주를 보면서 들은 다음에는 소리만 켜놓고 빌라도의 아내라는
제목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작가는 마태복음에 단 한 번 언급된 빌라도의 아내 이야기를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거대한 팩션의 세계를
창조했는데요,덕분에 티베리우스가 통치하던 시기의 로마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하나의 통로를 발견한
기분입니다.
더구나 연말 여행의 행선지를 이탈리아로 정하고 나니 로마,그 이후를 읽는 일에 탄력이 붙어서 무엇을
새롭게 읽고 ,무엇을 다시 읽어볼 것인가,어디서 무엇을 보고 싶은가 , 그 곳이 처음인 딸에게는 무엇을
보여주면 앞으로 혹시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게 도울 수 있을까 그런 공상도 하게 되는군요.

음악을 들으면서 문득 로스코의 그림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연상이 재미있다고 느끼게 되네요.어떤 때는 음악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이 되고 어떤 때는
여기에 그림을 덧붙이면 더 즐거울 것 같고 ,어떤 때는 소설을 읽고 싶고,또 어떤 때는 이 음악을 여럿이서
함께 듣고 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하고.

그림을 고르고 있는 중에 어제 밤 한 남학생이 한 말이 떠오르네요.
선생님,저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요?
그런 말을 하게 된 사연은 저녁밥을 먹으러 집에 다녀오겠다고 간 녀석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아홉시를 훨씬 넘긴 시간에 도착을 했습니다.왜 이렇게 늦었니? 물어보니 잠깐 컴퓨터를 하고 와야지 하다가
그냥 눌러붙어서 못 일어났다고요.
어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았니? 아니요,계셨지만 그냥 모른채 하고 계속 했어요.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어? 그리고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으셨니?

방학중에 어느 집에서라도 벌어질 만한 광경인데요,대응도 각각이겠지요?
그 녀석은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조금만 쉬다가 한 달간 등록한 독서실에 가려고 마음을 먹지만
조금 있다가 조금 있다가 하다보면 벌써 6시가 넘어서 마음이 서늘해지곤 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가버린 시간에 대한 자책으로 자신에 대해서 막 화가 난다는 아이를 보면서 귀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아직 고등학교 일학년인데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화가 나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하더군요.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가 저도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선생님도 공부는 스스로 잘 하겠는데 운동이나 피아노
연습은 아무래도 더 즐거운 일이 있으면 자꾸 미루게 되노라고,그러니 네 나이에 스스로를 제대로 잘
다스리지 못한다고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요.그렇다면 어떻게 도우면 도움이 될지
서로 연구해보고 내일 만나서 더 이야기하자고 달래서 보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이렇게 저렇게 그래야 한다고 제 나름으로 설정했던 기준이
강한 족쇄가 되어 실제의 아이들을 제대로 못 보고 대처한 적이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다 끝난 것은 아니고 고3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 아들과 시간을 쓰는 방식때문에 충돌하고
있는 중이지만 이제 제가 깨달은 것중의 하나는 고3이니까 이래야 한다는 논리로는 아무것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마음이 쓰리긴 하지만 (이렇게만 하면 이러 저러한 결과가 나올 것이 불보듯 뻔한데) 정작 공부하는 당사자는
제가 아니란 것,그래서 물러나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가 되지 않는 점이
있어서 마음이 괴롭지만 이제는 덜 고통스럽게 지켜보게 된다는 것 정도일까요?

방학중에 아이들을 지켜보느라 심신이 피곤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 시간을 조금만 줄여서
시선을 자신에게 향하라고,그래서 본인이 즐길 수 있는 일들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다시 힘을 얻어 아이들과 더불어 즐기는 시간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네요.
너무 철이 없는 소리라고요? 과연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