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째 금요일, 역사 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강남까지 버스로 가야 하나 지하철로 가야 하나 늘 고민하는 이유는 버스가 이동이 빠르지만
지하철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인데요, 어제는 이상하게 피아노앞에서 한 두 번이라도 곡을 치고 싶어서
꾸물대다가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시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꼭 읽고 싶은 책이 있었다는 것
또 한가지 문제는 버스에서는 이상하게 울렁증이 있어서 책을 읽기 어렵다는 것, 이 두 가지 부조화속에서 고민하다가
책을 읽다가 울렁거리면 쉬다가를 반복하데 만든 놀라운 책 그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신체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글읽기를 촉발하는 책이라니, 문제는 목적지에 와서인데요, 내려서 수업에 가야 하는데
갈등하게 만드는 책, 수업 내용은 혼자서 읽어도 되는 것이니 그냥 어딘가 한적한 곳에 들어가서 마저 읽고 점심 시간에 만나서
밥을 먹는 것으로 신년을 시작할까 하는 강력한 유혹을 느끼게 하는 정도였으니 이 책의 내용이 제게 얼마나 매혹적으로 다가왔는지요!!
사실 이 책은 존재자체도 모르던 것을 건축사 시간에 강사인 지혜나무님이 들고 와서 추천하길래 덥석 빌려온 것이었습니다.
목요일에 받은 다른 한 권은 바로 이 책, 사실 이 책은 일본에 가서 살게 된 보람이을 위해서 제가 선물한 책이었는데
아이가 별 관심이 없길래 엄마부터 보겠노라 읽던 중 일본에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미술관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지혜나무님에게
지나가는 말로 했더니 그럴리가 없다고 고개를 갸웃하길래 아니라고 실제로 책에서 보았노라고 하면서 책을 보여주다가
그렇다면 빌려서 읽고 싶다고 해서 엉겹결에 읽다 말고 빌려준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만에 제게 돌아온 것인데요
당시만 해도 도쿄에 갈 일이 그렇게 금방 올 것 같지 않아서 그저 미술관에 혹은 박물관에 무슨 작품이 있나 관조하는 기분으로 읽다 만
책이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올해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서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건축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시기에
읽어서 그런지 읽는 속도도 관심도 사뭇 달라져서 놀랐습니다.
목요일은 내내 이 책을 읽고 밤부터 르 코르뷔지예와 안도 타다오를 읽기 시작한 ,뭔가 스폰지로 빨아들이면서 한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을 느낀 이틀이었네요.
아무리 들고 간 책이 재미있어서 유혹을 느껴도 역시 모범생 기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저는 일단 수업에 참여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상당한 분량을 다 읽었다고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간 수업시간, 사실은 그 다음 한 파트가 진도였던 겁니다.
덕분에 판단을 제대로 한 것을 알고는 두 시간내내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요, 그것이 바로 2차 대전 이후의 냉전에 관한
것이었으니 할 이야기, 들을 이야기가 가득한 시간이었고 오늘 아침 신문을 펴드니 그 이야기와 연결되어 읽으면 좋을 두 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더라고요.
사실은 이 두 책 모두 어제 강남 교보문고의 가판대에 깔려 있는 것을 눈으로 보았지만 당시에는 살펴보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우선순위에 밀려 표지만 열어보고 만 책인데 아침 한겨레 신문의 책 기사에서 차분히 읽어보고 나니 어제 수업과 연결해서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 책이기도 하지요.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인 영어로 심리학 읽기 시간에 influence라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재미있게도 이 책은 마케팅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책이란 것, 그래서 덕분에 수업중에 이야기가 다른 길로 빠져들었지요.
그런 여파때문일까요? 평소라면 신문에서 잘 읽게 되지 않을 카피에 눈길이 갔습니다.
지름신 부르는 마케팅의 비밀이라니!!
아이들에게도 권하면 좋을 책이란 생각이 들어서 메모해두었습니다.
수업을 마무리하고 잠깐만 교보문고에 들러야지 하고 들어갔지만 역시 잠깐으로는 어려웠지요.
새로 나온 책을 둘러보던 중에 메일로 오는 아침편지에서 자주 인용되던 책을 만났습니다.
잠깐만 읽어보려다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다 읽고 거기다가 나중에는 눈물이 앞을 가려서 옆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이기도 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은 사라져버리고, 서점에 마음이 붙들려서
책을 보기 시작했지요. 여러 권을 마음으로 골라놓고, 다시 한 번 돌아다니다가 고른 세 권의 책
종이 책 읽기를 권함의 저자는 이 책을 천천히 읽어달라고 부탁했지만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결국 다 읽고 말았습니다.
물론 본문만 다 읽고 남은 각주는 찬찬히 읽을 예정이지만 처음 본 출판사의 책 만드는 정성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그런 작은 배려가 (예를 들어 각주를 아래가 아니라 옆 페이지에 따로 배치한다던가 종이의 느낌이 뭔가 달라서 손으로 쓸어가면서
만져보게 한다든가 하는 ) 그리고 제 경험과 비슷한 책읽기를 하고 있는 저자에게 와락 친밀감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도쿄에 가면 가보고 싶은 거리가 하나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진보초라 소리내서 발음을 해보기도 하고, 가면 어느 서점은 꼭 찾아서
가보리라 메모하기도 하고요.
지혜나무님이 빌려준 한 권의 책이 어제의 서점 나들이를 좌우했다는 것을 느낀 날
두 권은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다음 기회로 미룬 것인데요, 공간이란 말은 들고 간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들어와서 기억하고 있던 참에
공간 공감이라니 이 사람은 어떻게 글을 썼을까 궁금해서 처음에 골랐던 책, 그리고 안도 다다오란 이름에 끌려서 집어 들고 한참
뒤적인 것인데요 결국 이 두 책은 집을 순례하다에 밀려서 다음 기회로 하고 내려놓고 온 책이고요, 오늘 아침 책을 검색하다 보니
집을 , 순례하다의 저자가 다시 책을 낸 모양이네요. 다시 집을 순례하다라고
집을 ,순례하다는 일본에서 건축 사무소를 하고 있는 저자가 자신에게 도면으로 영향을 준 건축가들이 실제로 지은 집을
하나씩 찾아가는 여행을 순례라는 말로 표현했더라고요. 오늘 아침 한 편을 읽으면서 건축하는 사람이 이렇게 서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다니 하고 놀라고 있던 참에 2권을 만나니 당연히 기억을 해놓아야지 하는 마음에 책 표지를 올려 놓습니다.
목요일에 시작한 책읽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디로 가게 될지 이렇게 의외성이 마치 현대 물리학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읽으면서
매력을 느끼던 순간과 닮았다는 느낌이 드는 아침,
어제 밤 소리를 죽이고 들었던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소나타를 오늘은 조금 소리를 높이고 들으니 마치 다른 곡처럼 귀에 확 달라 붙는
음에 매혹을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