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밥상 앞에서

| 조회수 : 13,345 | 추천수 : 14
작성일 : 2018-03-18 12:20:04



50대 중반 딸과 80대 중반 엄마 밥상이야기 입니다.

엄마의  기억이 빠져나가는 것을 거의 매일 지켜봅니다.

약을 일년 여 복용하면서 치매의 속도를 늦추고 있습니다.

기억이 빠져 나간 자리는 지금만 있습니다.

시간도 날짜도 요일도 없는 지금


엄마는 제가 차려주는 밥상이 늘 거룩한 밥상이라고 합니다.

지금 먹는 밥상이 평생의 마지막 밥상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저녁밥도 내일 아침 밥도 그렇습니다.


엄마와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은

요즘 말로 미니멀리즘 VS 호더 기질이 있는 두 사람의 삶의 방식입니다.


20여평 공간에 한쪽은 거의 비어져 있고

한 쪽은 꽉 찼습니다.


같이 사는 일은 "치사함"이 동반됩니다.

엄마도 치사한 걸 참아야 하고, 나도 참아야 하는 데

둘 다 잘 못 참습니다.

참으면 병이 될 것같아 고함도 지르고 서로 팽팽한 신경전을 벌입니다.


버리는 게 아니라 더 꼭꼭 숨겨두고 저걸 여기로 옮기는

눈속임의 연속입니다. ㅎ


엄마와 한 바탕 싸우면서 속으로 '울엄마 아직 기운이 팔팔하네,

음 건강하시군 ㅎ'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저 욕심이 엄마를 살 게 하는 거라고.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셋째딸은 선도 안보고 데리고 가는 딸이 아니라

재앙이였습니다. 형제들도 있는데 왜 내가 엄마와 여태 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따라 가보면

딱히 제가 엄마를 사랑하거나 효도? 그런 거 없습니다.


총대를 맸으니 계속 매라는 형제들의 무관심, 자랄 때 받은 섦움, 소외감

그런 것들이 맺혀 지금의 상황까지 온 건 지

떠밀려 여기까지 온 건지

가족사의 소명인지

아직도 가물합니다.


잘하려고 하면 오래 못 삽니다.

엄마의 생각과 행동의 속도와 나의 속도는 시속 50키로 이상 차이납니다.

가끔 늦춰주고 기다려 주고 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 엄마한데서 자란  자식들이 부모가 되어

엄마처럼 안 살겠다고 다들  제 자식들한데  반동의 몸부림으로 사랑을 퍼붓습니다.ㅎ


그러다 어느 지점되면 엄마에게 돌아오겠지요.

연민의 눈으로 엄마를 통해 자신을 보게 될지도....


저는 그래도 희생하는 엄마보다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지금의 엄마가

더 편하고 만만하고 ㅎ

가끔 귀엽습니다.^^


................


키친토크에서^^

그늘에서 잘 말린 시래기를 얻어 와 수월하게 삶아

시래기밥을 했습니다.

엄마는 시래기를 보고 쓰래기하고 합니다.

시래기라고, 배추는 우거지고

다시 발음해보셔 시 래 기

그리고는 옛날 시래기에 얽힌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딸은 머리쳐박고 시래기 맛에만 충실하게 맛보고 있습니다.

음냐 너무 헹궜구만 하면서^^ 


2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오월이
    '18.3.18 12:56 PM

    아아ㅜㅜ
    잘 읽었습니다.

  • 고고
    '18.3.18 7:04 PM

    고맙습니다.^^

  • 2. 박가
    '18.3.18 2:05 PM

    같이 사는 일은 치사함이 동반된다는 말...정말 현실적이네요. 엄마와 좋은 시간 많이 보내시길 바래요. 멀리 계신 엄마께 전화래도 드려야 겠네요^^

  • 고고
    '18.3.18 7:06 PM

    남자하고는 더 치사해서 못 살것 같습니다. ㅎㅎ
    엄마는 다른 형제들의 전화 한 통에 하루의 기운이 쑥 올라갑니다.

  • 3. hoshidsh
    '18.3.18 3:42 PM

    거룩한 밥상, 맞습니다.
    정말...맛있게 드셨을 것 같아요. 어머님, 오래 오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고고
    '18.3.18 7:08 PM

    싸울 때,
    내가 오래 살면 안되는데 @#$%&*
    제가 엄마 이미 오래 살고 계시거든 @#$%^&
    이러고 삽니다. ㅎ

  • 4. 몽자
    '18.3.18 6:21 PM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난 여럿중 세째딸입니다. 한 때 부모의 희망(곧 실망으로) 이기도 했습니다
    이래저래 엄마랑 산 시간이 형제중 제일 깁니다. 기대에는 못미쳤겠지만 나름 애썼습니다.
    함께 사는 자식보다는 떠나 있는 자식에겐 주파수가 맞춰지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요
    부모도 성향차이가 오래 지속되니, 안되겠다 싶어 털고 떠났더니
    반년도 안되어 혼자되시어 근처로 오셨습니다. 요샛말로 좌고우면 하지 않고 같이는 못산다 했습니다
    형제들은 대놓고 얘기는 안했지만 그러려니 하며 이해하는 척 해주었습니다
    걸어서 5분 거리입니다. 혼자보는 것 별로 안 좋아하고 그리 자주 들여다 보지 않습니다
    정말 소소한 돈 부치며, 난 그래도 할만큼 했어 하며 약한 마음 달랩니다
    훌륭하십니다

  • 고고
    '18.3.18 7:09 PM

    5분 거리, 우와 부럽습니다.
    지나친 가족주의는 개인의 삶을 너무 힘들게 만듭니다.
    저 하나 희생 ㅎㅎ 으로 다른 형제들이 너무 자유로워 얄밉습니다.^^

  • 5. 와인과 재즈
    '18.3.18 6:31 PM

    오랜만에 로긴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많이 힘드실텐데
    타인의 눈으로 보는 듯한 덤덤한 말투가 더 슬픕니다...
    글 참 잘 쓰시네요...

  • 고고
    '18.3.18 7:10 PM

    가끔 엄마를 옆집 할머니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 6. 쩜쩜쩜쩜
    '18.3.18 6:35 PM

    나이가 드니 속은 오히려 좁아지고, 사는 건 자신 없어 지는데
    왜 짊어지고 가야할 것은 늘어나고, 주위의 기대는 버겁기만 한 지..
    고고님. 대단하세요. 모시고 계시고 있는 것만으로도 휼륭하세요.
    너무 잘하려 애쓰지 말고, 쓸데 없는 반성도 하지 말고
    그저 되도록 재밌고 편안하게 어머니와 하루하루 보내시기 감히 바래봅니다.

  • 고고
    '18.3.18 7:12 PM

    모시는 것보다 같이 사는 거지요. 지지고 볶아가면서
    주위 기대에 맞출려면 가랭이 찢어집니다. 적당히 뻔뻔하게 무시하면서
    살아야 삶이 가벼워집디다.
    하루가 무겁다가 가볍다가 그러고 저물어 갑니다. 감사합니다.

  • 7. 바람부는 날
    '18.3.19 9:54 AM

    저 하나 희생 ㅎㅎ 으로 다른 형제들이 너무 자유로워 얄밉습니다.^^

    일부러 로긴했습니다. 고고님께서 제 마음 속을 들여다봤나하고 깜짝했어요.
    저도 잘 몰랐던 요즈음 제 마음이었네요. 저는 1960년대 중후반 아들 많은 집
    외동딸입니다. 매일같이 엄마를 등에 업고 사는 기분이예요. 밤에 잠자리에서는
    좀 더 잘해드릴걸 하고 후회, 반성하고 눈 뜨면 또 반복이네요. 잠시 후 모시고
    병원갑니다. 함께 힘내요~^^

  • 고고
    '18.3.19 12:29 PM

    ㅎㅎ
    가끔 형제들에게 묻습니다.
    엄마하고 24시간 있어봤냐고?
    하루이틀이라도 숨 좀 쉬게 해주면 좋으련만 ㅎ
    우리 너무 착하게 살지 맙시다.^^

  • 8. 사랑
    '18.3.19 12:18 PM

    제 마음이랑 같으시네요~
    저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요.
    아직은 중간단계라, 오히려 수월하다고나 할까요?!

    등급판정받고 한 3년여를 그냥 지내시다가, 주간보호다닌지 4개월여 되네요.
    한 한달정도 잘 다니시다가 안가겠다고 뻣대시길래,
    아침출근길에 모셔다 드리고있어요.
    가끔씩 차량운행들어오는 차량 마주치는데,
    어른신들이 정말 표정이 없어요. 무서울정도로.....

    상상도안되는 온갖 사고는 다 치고, 안그랬다고 오리발내미는 선수지만
    그래도 웃으시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영혼없는 그 얼굴들을 볼때마다,
    가슴이 덜컹내려앉아요.
    많이 웃어야지.. 웃어야지...
    뭐한다고 그렇게 복닥복닥 할필요가 있나 싶을때가 종종있어요.

    매일매일 마음다스리기 합니다.
    그러면서도 또 안되서 한숨은 늘어가지만..
    에~~이공
    그래도, 우리 힘 내시죵!!

  • 고고
    '18.3.19 12:34 PM

    성질나면 이 구절을 떠올립니다.
    another fucking growth opportunity
    또 한번 빌어먹을 성장 기회

    고맙습니다.

  • 9. 산수유
    '18.3.19 5:05 PM - 삭제된댓글

    저도 거쳐가야 할 길일지도 몰라서
    다 앍고나니 눈물이 뚝둑 떨어집디다..
    외동아들한테 유언 했어요.
    엄마 치매증상이 나타나면 무조건 요양병원으로
    보내 달라는.. 무조건 무조건.. 네가 떠안을 생각하지 말아라..

  • 10. 하비비
    '18.3.22 9:22 PM - 삭제된댓글

    또 한번 멋진성장기회...정말.. 속뒤집힐이 주렁주렁 열렸는데...원글님 글 수준보니...제 고민따윈 정말 ....네
    Growth opportunity로 여기겠습니다.

    저 말은 성경귀탱이에 있었을 법한말이네요

  • 11. 하비비
    '18.3.22 9:34 PM

    성장기회...정말.. 속뒤집힐일이 주렁주렁 열렸는데...원글님 글 수준보니...제 고민따윈 정말 ....네

    인생철학도 힘겨움도...근데 멋지세요

    '치사함'단어에 반했어요


    오늘을 Growth opportunity로 여기겠습니다.

    저 말은 성경귀탱이에 있었을 법한말이네요

  • 고고
    '18.3.23 1:02 AM

    사는 게 자주 치사함을 동반하면 안되는데 ㅎㅎㅎ

    치사함과 빌어먹을~

    어느 책에서 봤는지 가물가물혀요. 즉 제 말이 아니라는 뜻

    고맙습니다.^^

  • 12. 소년공원
    '18.3.24 5:59 AM

    ................
    (그냥 마음이 먹먹해서 달리 댓글을 달 말이 생각이 안나서 말이죠...)

  • 고고
    '18.3.26 6:56 PM

    ..... ㅎ

  • 13. 천사
    '18.3.26 10:33 PM

    참, 마음이 예쁘십니다.

    그리고 존경스럽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39741 맛있는 된장 담그기 20 프리스카 2018.03.28 11,931 6
39740 임금님 생일잔치에 올렸던 두텁떡 혹은 후병(厚餠) 31 소년공원 2018.03.26 12,752 9
39739 봄은 쌉쌀하게 오더이다. 11 고고 2018.03.26 8,087 6
39738 저 말리지 마세요, 오늘 떡 만들어 먹을 겁니다! 24 소년공원 2018.03.23 14,576 12
39737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말자 42 백만순이 2018.03.23 20,888 8
39736 이 날을 위해 20 고고 2018.03.23 7,959 14
39735 저 오늘 떠납니다 ^^ 37 시간여행 2018.03.22 12,374 5
39734 엄마가 주신 밥상 28 몽자 2018.03.21 18,153 15
39733 밥상 앞에서 22 고고 2018.03.18 13,345 14
39732 밥상대신 꽃상~ 대령합니다 22 쑥과마눌 2018.03.15 11,537 10
39731 봄맞이 오색무쌈말이 16 에스더 2018.03.10 13,144 4
39730 닭꼬치가 왔어요. 13 제닝 2018.03.09 9,900 6
39729 봄 입맛 돋구는 쪽파무침 무우말랭무침 배추속무침 6 이호례 2018.03.08 10,896 4
39728 97차 봉사후기) 2018년 2월 몸보신을 석화찜으로 !! 5 행복나눔미소 2018.03.08 5,410 4
39727 맛있다는 강원도 막장 담갔어요. 20 프리스카 2018.03.02 15,103 6
39726 겨울방학 끝나니 봄방학 그리고 설날 33 솔이엄마 2018.02.17 19,547 12
39725 겨울이 가기전에 .... 24 시간여행 2018.02.12 16,004 6
39724 96차 봉사후기) 2018 1월 사골떡국으로 튼튼하게!!| 18 행복나눔미소 2018.02.07 8,857 12
39723 수수부꾸미 만들기 21 소금빛 2018.01.26 15,704 5
39722 수수호떡 만들기 12 소금빛 2018.01.25 11,103 5
39721 겨울방학 네식구 밥 해먹기 & 이웃과 같이 먹기 39 솔이엄마 2018.01.24 22,836 8
39720 인내의 빵 20 몽자 2018.01.22 16,064 3
39719 95차 봉사후기) 2017년 12월 카루소식 감자탕 6 행복나눔미소 2018.01.10 10,054 5
39718 밥꽃 마중 오크라꽃 40 차오르는 달 2018.01.04 11,746 2
39717 오이선 레서피 추가했어요: 여러분의 상상력이 필요한 송년모임 음.. 31 소년공원 2018.01.03 21,789 9
39716 (오랜만에 와서 죄송~ㅎㅎ)탄수화물 폭탄!(스압 또 죄송!) 42 벚꽃11 2018.01.02 20,403 4
39715 밥꽃 마중 열두번째--깨꽃 6 차오르는 달 2018.01.01 7,317 2
39714 꼬막의 추억 37 쑥과마눌 2017.12.31 14,29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