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 딸과 80대 중반 엄마 밥상이야기 입니다.
엄마의 기억이 빠져나가는 것을 거의 매일 지켜봅니다.
약을 일년 여 복용하면서 치매의 속도를 늦추고 있습니다.
기억이 빠져 나간 자리는 지금만 있습니다.
시간도 날짜도 요일도 없는 지금
엄마는 제가 차려주는 밥상이 늘 거룩한 밥상이라고 합니다.
지금 먹는 밥상이 평생의 마지막 밥상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저녁밥도 내일 아침 밥도 그렇습니다.
엄마와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은
요즘 말로 미니멀리즘 VS 호더 기질이 있는 두 사람의 삶의 방식입니다.
20여평 공간에 한쪽은 거의 비어져 있고
한 쪽은 꽉 찼습니다.
같이 사는 일은 "치사함"이 동반됩니다.
엄마도 치사한 걸 참아야 하고, 나도 참아야 하는 데
둘 다 잘 못 참습니다.
참으면 병이 될 것같아 고함도 지르고 서로 팽팽한 신경전을 벌입니다.
버리는 게 아니라 더 꼭꼭 숨겨두고 저걸 여기로 옮기는
눈속임의 연속입니다. ㅎ
엄마와 한 바탕 싸우면서 속으로 '울엄마 아직 기운이 팔팔하네,
음 건강하시군 ㅎ'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저 욕심이 엄마를 살 게 하는 거라고.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셋째딸은 선도 안보고 데리고 가는 딸이 아니라
재앙이였습니다. 형제들도 있는데 왜 내가 엄마와 여태 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따라 가보면
딱히 제가 엄마를 사랑하거나 효도? 그런 거 없습니다.
총대를 맸으니 계속 매라는 형제들의 무관심, 자랄 때 받은 섦움, 소외감
그런 것들이 맺혀 지금의 상황까지 온 건 지
떠밀려 여기까지 온 건지
가족사의 소명인지
아직도 가물합니다.
잘하려고 하면 오래 못 삽니다.
엄마의 생각과 행동의 속도와 나의 속도는 시속 50키로 이상 차이납니다.
가끔 늦춰주고 기다려 주고 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 엄마한데서 자란 자식들이 부모가 되어
엄마처럼 안 살겠다고 다들 제 자식들한데 반동의 몸부림으로 사랑을 퍼붓습니다.ㅎ
그러다 어느 지점되면 엄마에게 돌아오겠지요.
연민의 눈으로 엄마를 통해 자신을 보게 될지도....
저는 그래도 희생하는 엄마보다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지금의 엄마가
더 편하고 만만하고 ㅎ
가끔 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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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에서^^
그늘에서 잘 말린 시래기를 얻어 와 수월하게 삶아
시래기밥을 했습니다.
엄마는 시래기를 보고 쓰래기하고 합니다.
시래기라고, 배추는 우거지고
다시 발음해보셔 시 래 기
그리고는 옛날 시래기에 얽힌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딸은 머리쳐박고 시래기 맛에만 충실하게 맛보고 있습니다.
음냐 너무 헹궜구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