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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농부의 겨울먹거리

| 조회수 : 11,521 | 추천수 : 15
작성일 : 2015-01-13 04:21:07

 

올겨울은 초장에 눈이 참 많았습니다.

눈이 많지 않고 단지 기습폭설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니

연말까지 이어진 눈에 쬐끔은 긴장했던 겨울......

 

남들은 가족동반 해외여행을 꿈꾸는 시간에

당쇠의 팔자는 홀아비신세~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신 장인어른때문에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친정으로 향하고

같이 장인어른 장모님 찾아뵙고 건강상태를 살피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은

달구들 진지상땜시 미뤄야하는 안타까운 현실......

 

2014년도의 마지막 밤을 혼자 보내는 아쉬움에

뒤꼍에 나가 혼자 고기를 구워봅니다.

 

술안주로 먹을 삽겹살 여섯조각

+  어미개 두조각 + 강아지 한조각~

 

호일깔고 삼겹살에 굵은소금 앞뒤로 팍팍 뿌려주고

석쇠에 얹어 보일러 잔불에 잠깐 올려두면

방송에 나오는 숯가마삼겹살 못지않은 즉석 술안주가 마련됩니다.

 


그렇게 구운 삼겹살에 소주한잔 하면서

한해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데......

 

웬지 서글픈 마음이 듭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없는 텅~빈 집안에 들어서니

언젠가는 사랑하는 이들은 뒤로한채 떠나야하는

그런 슬픈 인간의 숙명~

 

화목보일러의 땔감을 마련하면서도 비슷한 감정입니다.

멋드러졌던 소나무들과 어우러진 숲이

한순간의 산불로 숯덩이가  되어버린......

 


연시의 첫 밥상은 어릴적의 기억을 쫒아가 보았습니다.

따끈한 밥에 버터 한조각 넣고 외간장넣어 비벼먹는......

 

어쩌면 어릴적의 기억은 머릿속에 각인되는 모양입니다.

어떤 여름날~

마당에 밀거적 펴고 앉아 부모님과 함께 먹던

버터와 외간장의 맛이 그리워지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첫 제사상을 받는 날에는

아내가 해주던 음식들이 그리워 질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저 파래~

어디서 어떻게 구해오는지 모르지만

어릴적 먹던 그 부드럽고 향긋한......

 

아참~  저 콩을 보니 이효리씨의 유기농콩사건이 떠오릅니다.

유기농인증~

그게 왜 필요할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웃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죽 속이는 사람이 많으면 인증까지 받아야 할까 싶은......

 

그냥 먹어보면 다 아는데......

 

얼마전 지인들과 점심도시락을 먹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유기농콩만 먹는다는 어떤분의 콩을 집어먹었는데

아니 이게 뭔 개맛이여~   아무맛도 없는 무늬만 유기농?

 

제 밥그릇의 콩을 한톨씩 주면서

그 유명한 유기농콩과 맛을 비교해보라고 했습니다.

 

인증받은 유명한 콩과는 차원이 다른 감칠맛에

모두가 놀랍다는 표정입니다.

 

콩은 그저 콩답게 키워야 제 맛이 나거든요.

맨땅에 헤딩하게 말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그렇습니다.

조금은 척박하게 키워야 진국이 우러나는 인간으로 성장할거라는 믿음입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시골 촌동네의 작은 초등학교~

방학식겸 학예회를 문예회관에서 개최했습니다.

 

거의 전교생이 석송챔버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어야만 하는

100명도 않되는 코딱지만한 학교지만

저는 강남의 저 스케쥴 빵빵한 아이가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그리고~

3억이 넘는 양육비용을 지출하는 부모들을 보면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세상이 참 미쳤습니다.

 

저렇게 키워서 그 아이가 뭐가 되는가 하면

코끼리 발톱이 코끼리의 모든것인양 주접떠는

자칭 전문가가 됩니다.

심지어 공학박사가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넣을줄 모르는......

 

아이들이 행복하지 못한 교육은 교육이 아닙니다.

스스로 느끼고 즐길때 그게 진짜 공부가 되는 것이죠.

 

출세해서 대기업의 경영자가 되거나

판검사니 의사니 유명인가사 되면 뭐하겠습니까?

인간성이 쓰레기라면 말입니다.

 

잘못된 경영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지 않고

슬그머니 아랫사람들에게 떠넘겨

구조조정이라며 가장들의 밥줄마저 끊어놓는 인간말종들같은......

 

그런면에서 비춰본다면

저는 아이들이 다니는 이 시골학교가 너무 고맙습니다.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아니었다면

그저 성적표나 붙들고 흔들어 대는 선생님들이었다면

아이들이 언제 마음껏 음악을 즐기며

'우리' 라는 교향악단의 일원으로 연주를 해 볼 기회가 있겠습니까?

 

경쟁이 아닌 화합~

그것이 작은 챔버오케스트라가 아이들에게 주는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콩은 콩답게 키워야 하듯이

닭은 닭답게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개답게 크고 있거든요.

 

제가 견과(犬科)이다보니

닭밥이 아무리 구수한 냄새가 풍겨도 닭밥은 먹지 안습니다.

그저 저같은 견과류는 술이나 먹어야...... ^ ^

 



당쇠만 남겨두고 친정행을 하신것이 맘에 걸렸는지

아내가 동아(숭어새끼)를 사다가 숯불에 구워줍니다.

손수 소주한잔 따라 주시면서......

 

고향에서 갓잡은 동아는 김치에 싸서 통째로 회로 먹기도 하는데

저는 그게 별로라......

 

아이들이 집안에서 오두방정을 떨며 노는 사이에

모처럼 아내와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

 

당신덕분에 행복하다느니

나때문에 미안하다느니

쬐끔 닭살이 돋아나는 말들이 오가는 사이에 내린 결론은

 

조금 힘들어도 우리는 중심을 잡으며 살아가자~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호화스러운 비싼그릇에 가짜먹거리를 담지말고

싸구려 질그릇에라도 진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그런 혜안을 키워주자~

 

오래전에는 正道經營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었습니다만

묵묵히 정도를 걷다보면 주변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그래서 (팔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농장 땅값이 5년새 최소 5배이상 올랐다는거~

 

무늬만 찬란한 가벼운 재테크니 해봐야

아이들이 아닌 엄마 화장빨용으로 아이들 과외시켜봐야~

2%대 예금금리 세후수익도 밑도는 실적이거나

거의 대부분이 엄마 벤츠나 비엠따블유에 실려오는 비정규직 떠돌이 박사님정도......

 

화목보일러 숯불구이를 먹다보면 그런 말이 떠오릅니다.

꿩먹고 알먹고 둥지털어 불도 때고......

 

불피워 난방하고

고기굽고 생선구워 맛나게 먹고

다 타고난 재는 퍼다가 밭에 뿌려 거름으로 쓰고...... 

 

거참~  글쓰다말고 뒤꼍에서 잽싸게 삼겹살 구워 소주한잔 했더만

새벽부터 정신이 오락가락 하네요. ㅠㅠ

 

새해에는 복 많이 받을 생각말고

제대로 먹고 제대로 삽시다아아아아~~~~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소년공원
    '15.1.13 5:46 AM

    아,,, 마음 깊이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소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잘 키우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새삼 느끼구요.

    이야기가 있는 밥상...
    철학이 깃든 음식 이야기...

    제 목마른 갈증을 게으름과는 거리가 먼 게으른 농부님께서 채워주시네요.
    감사합니다!

    님의 농장에서는 개와 닭과 콩과... 또 무엇을 키우시나요?

  • 2. 우화
    '15.1.13 6:21 AM

    농부님 맞습니다!!


    새해에도 마당쇠의 본분 잊지마시도 몸바쳐 마님의 충성스런 "쇤네"로 거듭나시길 ㅎ

  • 꼬꼬와황금돼지
    '15.1.13 6:28 AM

    어머나 우화님~~ 반가워요~^^ 우화님 어떻게 지내시나요? 궁금했는데,..

  • 3. 꼬꼬와황금돼지
    '15.1.13 6:32 AM

    요즘 하루일과를 마치고 키톡에 들어오는 습관이 새로 생겼습니다.ㅎㅎ
    게으른농부님 글에 공감합니다.
    올 한해는 가정도 나라도 세계도 좀 제대로 평화롭게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 4. 열무김치
    '15.1.13 6:33 AM

    흐미...이 세벽에 안 주무시고....내일 일은 어찌하실려고요.... 닭들도 부럽고~ 화목 보일러도 부럽고~ 아이들 시골학교의 멋진 채임버 교향악단도 정말 최고입니다!!

    저도 이제 아이가 다섯살이 되니, 이런 저런 생각 일었다가 가라 앉았다 하네요. 새벽 두 시반이나 되야 잠을 잘 수 있다는 아이들...휴...세상에 자전거 타이어 바람 하나 못 넣는 공학박사나, 유기농 딱지만 붙여 놓은 맛없는 콩이나 제대로 된 것이 없네요. "정상적"인 엄마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내일 아침의 메뉴 빠다밥입니다^^ 저는 계란 후라이 하나 추가 하렵니다.

  • 5. 순덕이엄마
    '15.1.13 7:26 AM

    ㅎㅎ
    장작 피워 부부가 한잔하고..이런저런 얘기 나누고..상상만 해도 좋은 그림이 나오네요

    가끔씩 가슴 속에서 치솟는 불 까지 다스릴 수 있다면 ... 그거슨 도인의 영역이겠지요 ^^;
    건강한 몸과 생각, 가족과 산에서의 삶. 용감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늘 그렇듯 행복하시길 바래요^^

  • 6. 면~
    '15.1.13 9:30 AM

    좋아보여요. 아이들 다니는 학교도 너무 좋은학교같습니다.
    아들이 이제 6살되었는데 도심에서는 마음을 다잡아도 주변의식을 하지않고 키우기란 쉽지 안더군요.
    농부님처럼 확고한 신념을 가지도 아이를 키우고싶은데 말이죠.

    귀여운(만나면 분명무서워하겠지만)달구드고 건강히 잘있는 모습에 방갑습니다.

  • 7. 마음
    '15.1.13 11:42 AM - 삭제된댓글

    산속에서 학교는 걸어다니나요?
    대도시 학교들은 저런 수고를 안하고 방학식과 한달후에나 먹게될 점심 먹고 집에와요
    근사하고 참 의미있네요.
    그나저나 저 삼겹살 주인인 돼지도 한점의 살코기 이전엔 행복해지고 싶은 꿈이 있었겠지요.
    사람처럼 일가를 일구고~

  • 8. 각시둥글레
    '15.1.13 12:55 PM

    잉걸불에 궈 먹는 삼겹살,
    석쇠에 얹은 삼겹살 각이 딱, 살아 있네요. ㅎㅎ
    챔버오케스트라 화목 보일러...... 왠지 따듯해집니다.
    따뜻한 세상이 얼른 와야 할텐데.....
    아직 겨울이 남았네요.
    콩 얘기하니까, 먹어봐야 유기농인지 안다는 말에
    백번 공감합니다.
    어제 오랫만에 월든을 다시 읽는데
    소로우가 콩밭을 매는 부분이 있더군요.
    콩밭매는 일의 어려움은 이미
    트롯 가락으로 알려진 바가 있어 짐작갑니다만,
    어쨌거나 그 어렵다는 콩밭매는 소로우를 그려보며
    한참을 미소 지었습니다.
    그게 바로 진짜 유기농이었겠지요?

  • 9. 시간여행
    '15.1.13 1:31 PM

    뭐든지 제대로 하는게 참 어려운 일인것 같아요...
    그래도 공감해주고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좋은 결실이 있으실겁니다^^

  • 10. 연이연이
    '15.1.13 3:10 PM

    언제나 마음이 훈훈해지는 글. 농부님 처럼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 11. 소연
    '15.1.13 5:37 PM

    ㅎㅎ 낮익은 장작불에 삼겹살..
    여전히 이스리랑 친하시네요..
    잘먹고 잘사는거 생각보다 힘들더라구요~

  • 12. 만년초보1
    '15.1.13 6:26 PM

    게으른농부님 글 볼 때마다 훗날 귀농을 꿈꿔요.
    정말 게을러도 저런 생활이 가능한가요? ^^;

  • 13. 수늬
    '15.1.13 9:42 PM

    마음은 늘 그래도 쉽지않은 현실에...행동도 못하면서
    눈으로만 보고 부러워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 14. 오늘
    '15.1.14 3:33 AM

    따뜻하고 푸짐한 밥상 만큼이나
    좋은글 맘에 콕 와 닿아서 배부릅니다.

  • 15. Smyrna
    '15.1.14 6:27 AM

    하시고픈 말씀은 잘 알겠고, 농부님이 사시는 방식을 존중하고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학박사 상처받고 가네요. 돈 못벌어도 과학을 사랑해서 공학박사가 되기도 합니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을 줄 몰라요.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도구와, 심지어 농부님이 타고 다니는 경운기도 돈.못.버.는 공학 박사들이 만든거라는거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 16. 장구봉
    '15.1.14 11:45 AM

    반갑습니다. 농부님

    여러님들의 댓글도 반갑고요

  • 17. 국제백수
    '15.1.14 6:48 PM

    늦게나마 댓글답니다.
    농부님! 올해도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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