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면 고등학교 2학년인 아이는 학원에 간다.
놀토인 둘째, 넷째 주야 집에서 밥을 먹지만 학교 가는 주는 도시락을 챙겨야 한다.
계란말이 밥이다. 보기도 많이 보았고 먹어도 본 것 같은데 이거 말며 욕 나올 뻔했다.
아침에 김밥을 해먹은 지난 토요일, 김밥 재료 중 남은 당근, 시금치 따위를 넣고
최대한 얇게 부친 계란 지단으로 돌돌돌 말아가는 순간.
‘근데 끝단은 어떻게 붙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나름 모양 좋게 말리긴 했으나 계란지단의 끝처리는 대략난감…….
“이걸 뭘로 붙이지? 김밥처럼 지들끼리 붙는 것도 아니고 밥풀로 할 수도 없고…….”
“파 같은 걸로 묶을까? 아니 묶은 건 별로 본 기억이 없는데…….” 하며
쪽파나 미나리 있나 냉장고 뒤지다 괜한 일거리 더 만들 것 같아 포기했다.
이럴 땐 어머니 생각이 더 난다. 비록 “썩을 놈, 니가 그걸 왜 물어!”하고 욕부터 한 자락 하셨겠지만,
아니 “손녀 먹을 거다.”했으면 눈 정도 살짝 흘기고 마셨을까.
유부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기름기 좀 빼고 식초와 간장으로 주물주물 해 놓고
식초와 소금, 당근 따위를 섞은 밥을 채웠다.
모양은 그럭저럭 흉내를 냈는데 간장을 덜 넣었는지 유부간이 좀 심심하다.
그 순간 생각났다. ‘앗~ 유부는 내 입맛이다!’ 딸내미는 초밥은 잘 먹어도 유부는 아니다.
할 수 없이 나머지 밥은 그냥 주먹밥으로 뭉쳤다. 계란말이 밥 한줄, 유부초밥으로 또 한 줄,
주먹밥은 상추에 싸 한 줄씩 유리 반찬통에 담았다. 그럴싸하다.

담아 놓고 보니 양이 작은 것도 같고 왠지 유부는 손도 안댈 것 같고 ‘아무래도 뭘 좀 더 해야겠다.’
상추 부침개를 하기로 했다. 급히 상추 두어 장 씻어 잘게 찢어 밀가루와 버무렸다.
반죽해 놓고 보니 딱 한 장 나오겠다. 상추전은 먹기 좋게 가위로 잘라 담았다.
마실 거리로 제 어미가 만든 블루베리 즙까지 챙기니 아이 데리러 갈 시간이다.
어버이날 즈음, 술자리에서 어떤 얘기 끝에 “효라는 게 사람에게만 있는 것 같다. 동물의 왕국을 봐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새끼 챙기는 건 그냥 다 한다.” “그러게 동물이 어미 챙기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농경사회에서 가부장적인 질서나 이데올로기로서의 측면이 있지만 자식사랑과 다른, 사람관계에서만 볼 수 있는 고도의 뭐???인거 같다” 그때 어떤이 휴대폰으로 뭔가를 보는 듯하더니 “영어로는 duty 정도인데……. 인간의 보편적 뭐라기보다 동양적인 뭐 아닐까?” 하는 말들이 오갔다.
사랑은 아무리 내리 사랑이라지만 새끼 챙기는 건 왜 이리 신경이 더 가는지... 주말에도 동동거리며 학원가는 아이가 안쓰럽다거나 하는 이유만으론 내 도시락과 비교할 때 설명되지 않는 게 너무 많다.
그만큼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아버지의 삶이 이해된다.
“엄마 미안해! 사랑해요.” “아버지 그땐 제가 어렸어요. 죄송해요.” 이 말을 나는 온전히 하지 못했다.
두 분을 위해 도시락 준비한 기억도 없다. 그래서 더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