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고향인 친정 엄마는 그 당시 대학을 서울로 진학할 만큼 열성적인 여학생이셨는데
그만 첫 발령을 경남 하동으로 받아서 시골 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외갓집 친척 중에 시골에 사시는 분이 없어 시골이라고는 기차를 타고 잠시 지나가다 감상하는
낭만적인 곳으로만 생각하다가 하동의 미래가 보이는 청년인 저희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시골생활을 체험하게 되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할아버지께서 선거에 두번 실패하셔서 몰락한 종갓집 종부로써의 일은 참 많이 힘드셨다고
가끔 얘기해 주셨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 부모님들이 다들 고생 하시면서 살림을 하셨겠지만 저희 엄마도 소위 교육자
집안이라는 간판 좋은 집안에 시집을 왔는데 선거에 실패한 할아버지께서는 사랑방에서 붓글씨만
쓰시고 할머니께서도 부잣집 마나님이나 어울리는 분이시라 당장 쌀은 없어도 유행하는 옷은
다 해 입는 분이셨습니다.
두분다 체면을 상하게 하는 일은 하지 않으시다보니 생활력이 없어셨어요.
게다가 아래 시동생들 공부시키랴...남편 유학 보내랴... 낮에는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밤에는
부업을 하신걸로 제가 기억합니다.
그렇게 엄마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저희 아버지도 대학에서 중책을 맡고 계시고 동생도 지난주에
힘든 레지던트 과정 다 마치고 전문의 시험친 후 군의관으로써의 국가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고생끝에 이제 살만하다 싶었는데 4년전 엄마의 위암 판정은 우리 가족에겐 충격과 아픔이였습니다.
그때 그 상황은 말로 다 표현을 못하고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 당시 생존율이 20%였는데 수술후 4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 가족 옛말하며 웃으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지극 정성인 아버지 덕분에 엄마도 힘든 항암치료 다 받고 잘 견디시더니 이젠 정상인의
생활을 하고 계시답니다. 아니 정상인 보다 더 부지런히 날아 다니신답니다.

오늘은 친정에 가니 막내 고모에게 보낸다고 산적을 하고 계시더군요.
우리 막내 고모와 엄마의 인연은 특별합니다. 엄마가 시집갔을때 어린 소녀였던 우리 막내 고모의
중학교 2, 3 학년 담임 선생님이 우리 엄마였다는것 아닙니까!!
우리 막내 고모는 도시락도 담임샘과 먹고 등교도 담임샘과 하고...숨도 못쉬는 학창 생활을 했을겁니다.
아빠가 일본으로 유학가셨을때 우리 막내 고모가 대학 간다고 하더랍니다.
아빠 뒷바라지도 힘든데...그렇다고 공부 잘하는 시동생 포기 하게 할수도 없고 해서 진학시켰는데...
역시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공부는 해야하나봅니다.
지금 우리 막내 고모는 의상디자이너 랍니다. 얼마전까지 대기업 디자인 부실장으로 계시다가
?? 골프웨어로 회사를 옮겼는데 이젠 그 회사 CEO 가 되었답니다.
고모 덕분에 백화점에 가면 구경만 하는 그 비싼 골프웨어를 우린 평상복으로 즐겨 입는답니다.
계절마다 몇 벌씩 보내주는 옷들을 볼때면 성공한 막내 고모가 자랑스럽답니다.
얘기가 삼천포라 빠졌네요....
하동으로 시집을 가니 부산에서 명절이면 차례상에 꼭 올리는 산적을 보기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그곳도 물론 산적은 있는데 해산물이 풍부한 부산의 산적과는 차이가 많이 나서 늘 부산의 산적을
그리워만 했었다고 합니다. 가끔 반찬으로 만들면 우리 막내 고모가 좋아했었다고 명절땐 이렇게
해서 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서울 막내 고모댁에 택배로 보내준답니다.
어쩔땐 땔레미보다 막내 고모를 더 챙기는 엄마에게 질투가 날때도 있지만 그래도 스승과 제자,
올케와 시누이의 인연을 부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산적 준비물: 홍합,문어,오징어,쇠고기,전복,소라, 물엿, 간장 참기름
♣ 오징어를 손질합니다.

♣ 전복, 홍합, 쇠고기, 문어, 오징어, 소라도 손질하여 꼬지를 꼽아 둡니다.

♣ 팬에 적당량의 간장과 물엿을 넣고 끓인다.

♣ 해산물을 차례대로 넣고 조려줍니다.



♣ 쇠고기는 해산물에 비해 물을 텁텁하게 하고 흐려지게 만드는 점이 있기에 마지막에 조려줍니다.
모든 재료를 건져내기 직전에 참기름을 두릅니다. 식용유를 조금 넣어주면 산적의 표면에 반짝반짝
윤기가 난다고 합니다.

♣ 이렇게 통에 넣어 통깨를 뿌려서 서울 막내 고모댁으로 보냈답니다.

<아래는 부록입니다>
♣ 선물하기를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흰나리도 이번 명절에 양갱 엄청 만들었습니다.
첨엔 재미있더니 점점 하기 싫어지면서 양갱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 제 자신이 미워지다가 택배 받고
감동하여 전화 하는 분들의 음성을 들을때면 보람 엄청 느껴진답니다.
제가 일주일 동안 열심히 만들어서 부모님 선물하게 드렸습니다.
저는 아직 인생을 많이 안 살아서 선물 할 곳도 몇군데 없는데 저희 부모님께서는 고마운 분들이
이렇게 많나봅니다. 아마도 딸레미 노고를 생각하셔서 이번 설 새뱃돈은 두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만든 양갱 한번 보실래요?

제가 이 박스를 스무상자 만들었습니다. 친정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제가 인사할 분들을 모두 합치니 스무 상자가 넘었어요.
내일부터는 몸살 모드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ㅎㅎ

양갱과 산적의 자세한 레시피는 http://hinnari.net 요리방의 검색창을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