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출판되었으나 곧 절판되어 아쉬움을 남겼던 그녀 요리책, 그 개정판을 내는데..
그 개정판이라는 것이, 말이 좋아 개정판이지, 새책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이 많습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아예 새로 쓰는 것보다 더 힘이 들 때도 있어요.
아무튼, 원고 마감했다고 하길래, 그간의 노고를 위로할 겸,
원기도 보충할 수 있는 보양식을 사주려고, 일산으로 떴습니다.
그동안 제가 바빠서..'그녀'의 생일도 놓쳐버리고 말았더랬습니다.
파주의 장어집에서 장어를 먹고, 헤이리쪽으로 향하는데...
'그녀', 길가에 쑥이 지천이라며 너무나 뜯고 싶어하는 거에요.
솔직히...전 평생 쑥을 두어번밖에 직접 뜯어보지 않았고,
제가 알고 있는 풀이 쑥이 맞는지 조차도 의심스러운데.., 이 쑥을 두고 갈수 없다며..., 이 쑥을 두고 가는 건 죄악이라며...

그래서 헤이리의 좋은 사람들 창고 근처에 차를 무단주차해놓고,
차에서 비닐봉지 하나 찾아가지고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연하디 연한 쑥이..널려있는거에요.
한 10분 뜯었나? 제법 큰 비닐 봉지의 절반 이상이 찬거있죠?
이런게, 수확의 기쁨인 모양이에요, 고사리를 꺾는 것 못지않게 너무 재밌는 거에요, 쑥 뜯는 것이..
암튼 저 봉지를 꽉 채워 왔습니다.
이렇게 오늘 둘이 뜯은 쑥을 1:3( 아니 1:2인가?)로 나눴습니다.
'그녀'보고 더 많이 가져가라고 했어요. 왜냐면 전 잘 해먹을 줄 모르거든요.

가지고 와서 손질하니..이렇게 이쁜 거 있죠?
돌아오는 길에, 쑥버무리며, 쑥갠떡 등등, 쑥떡 만드는 법을 '그녀'에게 배워가지고 왔습니다.
한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쌀가루는 있으세요?"
"밀가루처럼 생긴 쌀가루 파는 거 있잖아? 그거 있어. 거기에 소금 좀 넣고 물 좀 준 다음 하면 되는 거야?"
자신있게 말은 했습니다.

쑥버무리를 해보겠다고,
쌀가루에 물 좀 준 다음 쑥을 넣어 버무렸는데...
쌀이 좀 많았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사실, 저 한번도 쑥버무리를 해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먹어보지도, 실물을 본 적도 없습니다.
TV에서 얼핏 본 것이 고작...그래서 완성된 것이 어떤 상태인지 잘 모릅니다.

물오른 찜솥에,
대나무찜기에 담은 쌀가루에 버무린 쑥을 넣어 쪘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윗부분은 가루가 익긴 익었는데, 푸실푸실하고, 아래쪽은 질쭉한 거에요.

'그녀'에게 들은 소리는 있어가지구, 쑥버무리를 절구에 넣고 찧었습니다.
그리고 동글동글 빚어서 거죽에 살짝 참기름을 발라 줬습니다.
보기는 이래도, 맛은 꽤 괜찮아어요.
쑥이 아직도 남았는데..이 쑥을 뭘할까 궁리중입니다.
쑥버무리에 다시 도전할까?
아니면, 말릴까, 아니면 데쳐서 얼릴까...
아무래도, 다음주 어느날 또 들판으로 뒤쳐나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자외선차단크림 두껍게 바르고, 머리에는 선캡을 쓰고,
한손에는 검은 비닐봉지와 다른 한손에는 과도를 들고...
다음주 어느날, 파주나 일산 어디께, 완전 뚱뚱한 여자 하나와, 그 여자의 ⅓밖에 안되는 여자 2인1조가 되어,
정신없이 쑥 뜯고있는 사람들이 있다면..저희인줄 아세요.
제가 '그녀'를 알게된 건 지난 2003년.
벌써 햇수로 7년, 이렇게 짧지않은 시간, 때로는 자매처럼, 때로는 모녀처럼(^^), 때로는 인생의 선후배로 지내오면서,
오늘처럼 둘이서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것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무슨 용건이 있어서 만났거나 같이 어딜 가야하기 때문에 만나지 않으면, 여럿이서 모일 때 봤거든요.
쑥도 쑥이지만....
화창한 봄날의 하루를, 제가 좋아하는 '그녀'와 작은 추억을 하나 만들어...더 좋았습니다,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