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저녁을 차리면서...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난해 이맘 때에는 쓰던 김치냉장고와 새로산 대형김치냉장고, 이렇게 2대가 떠억 자리잡고 있어서,
요리할 재료나 김치가 아무리 많아도 겁나지 않았습니다. 얼마든 OK였거든요!!
그런데 헌 김치냉장고를 누구에게 주고나서, 여태까지 그리 아쉽지 않았는데,
김장을 해넣고 나서부터는 요리재료가 조금만 많아도 안절부절입니다.
냉장고는 비좁고, 김치냉장고는 김치로 완전히 차있어서 고기 한점 넣을 자리 없고...
게다가 며칠 있으면 시아버님 제사입니다.
지금도 냉장고 안에 파 한뿌리 꽂을 자리가 없는데...제수 장은 어떻게 봐야하는지..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녁을 하면서...냉장고나 김치냉장고를 좀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패한 것이 분명한 두가지 음식만 버려도 조금은 숨통이 트이겠다 싶어서...그 두가지를 꺼내봤습니다.
하나는 백김치입니다.
김장하고 오면서 얻어온 절인 배추, 무 배 밤 대추 파 마늘 생강 고추씨만 넣어 대충 담았었습니다.
백김치라는 거 먹어보기만 했지만 담아본 적이 없어서...
담그기는 했지만 먹을 수 있으리라 별로 기대는 안했습니다.
밖에서 익히다가 김치냉장고 안에 넣어뒀는데..그동안 꺼내볼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내버려뒀었습니다.
나름대로 밤이며 대추며 배를 넣고 했는데, 못먹게 되어있으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오늘..한번 꺼내 보고, 못먹게 됐으면 얼른 버려야지 하고 한포기 꺼내 썰었는데..
국물 한방울 남긴 없이 한보시기 모두 비웠습니다.
kimys가 평하길, "뭔가 부족한 맛인데..아, 단맛이 부족하구나, 단맛은 부족한데..맛있는 걸..."하네요.
단맛이 부족한 거야 당연하죠.
단맛을 낼 수 있는 재료라고는 배와 대추, 그리고 대추씨 달인 물밖에 안들어갔거든요.
백김치에 설탕이나 그린 스위트 넣으면 이상할 것 같아서 안넣었어요.
뜻밖의 성공에 사기충천입니다.
백김치의 성공도 기쁘지만...가자미식해가 먹을만하게 됐다는 게 사실은 더 기쁩니다.
어부 현종님의 가자미, 그냥 구워먹고 말 것을..가자미 식해를 담근다고, 무채, 엿기름물 등등에 버무려뒀습니다.
그랬는데...2주일쯤 지나서 먹어보니, 삭질 않았고, 또 2주일 지나서 먹어보니 비려서 먹을 수 없고...
진짜 속이 많이 상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양념을 너무 적게 했던 것 같았어요.
가자미식해를 했다고 하니까 쪽지로 몇몇분께서 레시피를 물어오셨는데..답을 못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사서 드시라고..권했다는 거 아닙니까? 어렵다고.
지난번에 김장하고 나서 쌈먹으려고 김치속을 싸왔었는데...이걸 좀 가자미식해에 넣어두면 어떨까 싶더라구요.
김치속이야 양념범벅이니까, 혹시 이게 들어가면 가자미식해가 먹을만해지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가 됐습니다.
그래서 다른때 같으면 김치냉장고 안에 넣어두고 굴과 버무려서 먹었을 김치속을 과감하게 가자미식해에 넣고 버무렸었습니다.
오늘, 식해가 담긴 통을 꺼내면서도 그리 기대는 안했었어요.
그랬는데...먹어보니...식해맛이 제대로 나는 거에요...앗싸!!
저희 집 가자미식해 먹는 사람 저 밖에 없거든요.
저기 담긴 가자미식해(아랫줄 맨 오른쪽), 저 혼자 다 비워냈다는 거 아닙니까?!
못먹게 됐다면 눈 질끈 감고 버리려고 했는데..이렇게 멀쩡하다니..
비록 냉장고를 비우지는 못했지만..기분은 억수로 좋습니다.
음식물 버리는 것처럼 두고두고 기분 안좋은 일도 없잖아요!!
제수용 재료는 또 어떻게 되겠죠...
아이스박스를 꺼내놓고 담아두던가...아니면...잼이며 피클병 며칠 꺼내뒀다가 다시 넣던가...
그때 일은 그때가서 걱정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