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맡았던 파트 중 하나가 미술계 였습니다.
미술계가 단군 이래 최대호황을 맞았다는 89년부터 93년까지 미술기자를 했었어요.
기사 진짜 엄청 많이 썼었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전시회도 엄청 많이 열리고 미술과 관련된 사건사고도 많았어요.
새로 짓는 건물 마다 으례 1층은 갤러리가 들어앉는 가 하면 재벌가의 사모님들, 너나할 것 없이 미술관 관장 명함 들고 다니곤 하던 시절이었죠.
암튼 그때 해마다 봄가을, 전시시즌이 되면 책상위에 전시팸플릿이 어찌나 많이 쌓이는지 일일이 봉투를 열어서 팸플릿을 꺼내보는 것만도 큰 일이었죠.
어떤 때는 너무 바빠서, 제 책상에 팸플릿을 놓고 가는 사람의 기척을 느끼면서도 그 얼굴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일을 해야할 때도 많았어요.
하루에도 수십개씩 쌓이는 팸플릿 중 옥석을 가려내 소개하는 것이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 대목에서 참 맘 아파요. 모두 작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창작한 작품들을 玉과 石으로 분류를 했으니...
아무리 기자가 1차 비평가의 입장에 서서 독자들에게 소개해야할 것과 소개하지 않아도 좋은 것을 가려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많은 작가들에게 상처를 줬겠구나 반성도 해봅니다.
워낙 전시회가 많이 열렸으니까 하고 스스로 변명도 해봅니다만...
한정된 지면에 소개해야할 전시회는 많으니까 단신이라도 들어가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게다가 대형 상업화랑에서 기획해서 개최하는 저명 인기작가, 혹은 원로작가의 전시회라도 열리면, 무명작가, 비인기작가는 발붙이기 참 어려웠죠.
그때 일면식도 없는 작가의 작품이지만, 작품이 좋아서 소개를 하고나면, 수줍은 목소리로 감사전화를 하는 비인기작가도 있고, 아니면 손바닥만한 그림 하나를 들고와서 책상위에 놓고 가는 신인작가도 있고...
이 무렵 받은 선물이 문득 생각이 나네요.
한 한국화가, 그리 인기있는 작가는 못됐어요. 그런데 아마 그림이 좋았나봐요, 제눈에. 아주 짧은, 한 3줄짜리 단신을 쓰면서 작품사진을 게재했었던 모양이에요, 물론 기억은 나지 않죠. 그게 어느 해 이른 봄이었어요.
그랬는데 두어달 후 어린이날을 며칠 앞둔 날 한 여자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지하 다방에 있는데, 잠깐만 만나뵈면 좋겠다고...
내려가보니 아주 교양있어 보이는 제 또래의 여자분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가, 아무개화가의 안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더라구요.
'그저 장소와 일시만 소개돼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는데 작품사진까지 나와서 감격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전 기억이 나질 않더라구요.
그러면서 고맙다고 내미는데 쇼핑백 안에 들어있는 건 학용품세트였어요.
'별건 아니지만 받아주면 좋겠다'고 내미는 걸 선뜻 받았어요. 정말 기분 좋은 선물이더라구요. 그분도 큰 돈 쓰지않고 준비한 것 같고, 저는 제 자식을 챙겨주는 마음이 고맙고...
그 작가의 부인이 그로부터 제가 미술기자를 그만둔 그 다음해까지 해마다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그해에 남편의 전시회가 있던 없던 처음 받았던 딱 그만큼의 학용품을 사가지고 찾아오곤 했어요.
일년에 두번 만나서 서로의 자식들 이야기와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하면서 차 한잔을 나누곤 했어요.
부탁할 일이 있을 때 선물을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죠.
그렇지만 당장 부탁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해마다 두차례 남의 아이를 기억하고 학용품선물을 한다는 건 보통 정성이 아닌 것 같아요.
가끔 그 작가 부인 생각을 해봐요.
만약에 내가 그 입장이라면, 그렇게 정성들여 선물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저라도 부탁할 일이 있을 때만, 속이 들여다 보이거나 말거나 좀 번듯한 걸 들이밀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 선물은 정성인데....
이제 얼마 안있으면 어린이날에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선물때문에 머리가 뽀개지도록 아픈 계절이 돌아오죠?
게다가 저는 kimys생일에 친정아버지 생신까지 겹쳐있는 출혈의 계절이죠.
아무리 재정압박이 만만치 않은 달이라고는 하나 정성이 담긴 선물, 정말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정성껏 마련한 선물을 주고 받아야 하는건데...
그런데 선물 준비하기 귀찮다고 흰봉투에 현금이나 상품권 조금 넣어서 내밀지는 말아야할텐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