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담서원에서 시작한 프랑스어 공부, 공개강좌 한 번, 첫 문법수업, 두 번째는 아파서 빠지고 어제가
세 번째이자 처음으로 어린 왕자와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한 글 읽는 첫 날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왕자는 교재로 선택된 이후 미리 여러 번 읽었지만 철학책은 도대체 무엇을 찾아야 할 지도 모를 정도로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로군 수준으로 ,준비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서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복습을 하는 방식으로 따라가보자 마음을 먹었지요.

사실 어린 왕자도 처음 시작때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직 걸음마도 떼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읽겠다고
덜썩 신청을 했지만 준비를 시작했을 때의 암담함이 생각나네요.
이런 상황에 처해 있을 아이들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수업시간이 얼마나 지옥같을꼬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의 공부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조금 더 신경쓸 수 있게 된
부수효과도 있었다고 할 수 있네요.
한 번 두 번 세 번 읽는 회수가 거듭될수록 함께 공부하는 문법과 어휘 덕분에 같은 책이지만 다르게 보인다는 것
어제 효은님의 강의로 어린 왕자의 첫 장은 이제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이해가 된 것이 신기했고
아우라님의 철학책 번역이 시작되자 검은 것은 글씨로군 하던 수준에서 갑자기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나가는
정말 놀라운 경험을 했지요. 아, 그래서 초보자에겐 선생이 그것도 훌륭한 선생이 필요한 법이로구나 !!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함께 격려하면서 공부하는 좋은 동료가 생겼습니다 .마리포사님인데요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시작한 프랑스어 왕초보 교실에 발을 담그는 것도 주저하던 그녀
목요일 0교시 불어수업이 끝나고 다음 시간 모임에 나오면 늘 궁금해하는 모습이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번 권했더니 드디어 어느 날 그러면 나도 함께 참여해볼까 하는 의사를 밝히더니
그 이후에는 불어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드디어 길담의 수업도 함께 하는 동료가 되었답니다.


수업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지하철역까지 동행한 캘리님, 철학책 집에서 공부할 때는 네이버에 고정해놓고
단어를 찾느라 고생고생했지만 도대체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던 것이 수업시간에 툭 건드려준 설명으로
갑자기 의미가 파악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노라고 ,네이버 사전을 이용하라고 강력히 권하네요.
네이버에서 찾는 단어가 편리하다는 말은 일본어 시간에도 여러 번 조조님에게서 들었지만 이상하게
아직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는데, 정말 시도를 해보아야 할 모양입니다.

일산가는 지하철에서 자리 잡고 앉아 저절로 마리포사님과 둘이서 우선 철학책부터 복습을 시작했습니다.
진도를 많이 나간 것이 아니므로 모르는 부분은 서로 물어가면서 조그만 목소리로 번역을 마무리하고
내친 김에 어린 왕자까지 복습을 시작했지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종점이라고 내리라는 방송이 나오더군요.
대화행이 아니라 구파발이 종점인 차를 탄 모양이었습니다. 불어수업에 대해서 이야기하느라
어디가는 차인지도 모르고 덥썩 올라탄 것이었지요.


무엇에 들리기라도 한 사람들처럼 다음 차를 기다리는 중에도 플랫폼에 서서 불어 번역을 계속 한 탓에
그 다음 차를 확인도 하지 않고 올라탔는데 (보통은 그 자리에서 타면 대화역으로 가는 방향이니까요)
한참 안에서 번역을 하던 중에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내리자는 겁니다, 마리포사님이
왜요? 다 왔어요? 그게 아니라 차가 다시 경복궁쪽으로 가고 있다고요.

거꾸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도 전혀 의식을 못 한 채 안에서 불어공부를 하던 어제 밤의 풍경이라니!!

덕분에 집에 오니 12시를 훌쩍 넘겼지만 다음 번 어린 왕자 진도까지 미리 예습을 마치고, 철학책 안의
긴 글은 읽을 엄두를 못 냈지만 각 철학자의 대표 인용구는 마지막까지 짐작을 더해서 다 읽어보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집에 와서 사진 정리만 간신히 하고 바로 잠들었습니다.
덕분에 아직 아침 8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조금 쌩쌩해진 몸으로 어제 하루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문맹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는 자랑을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