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기간동안 외동딸과 둘이서 뉴욕에 다녀온 지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뉴욕만이 아니라 사실은 아이에게 하버드 대학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인데 저랑 함께 공부하는
그녀의 딸은 뉴욕이 좋았어요라고만 간단하게 말하고 여행에 대해서 아직 구체적인 경험담은 늘어놓지
못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바로 닥쳐온 중간고사로 마음이 바쁜 탓이겠지요?
목요일 수업에서 만난 그녀 김미라씨가 제게 두 권의 책을 내밀더군요. 하나는 the art of renaissance라는 제목의 아주 두꺼운 책이었는데 겨울 여행 준비로 좋은 책일 것 같다고, 길게 잡고 다 읽고 돌려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기에도 책이 너무 이쁘다고 탄성을 발하게 만드는 마티스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선생님, 마티스 좋아하시죠? 이 책은 선물로 골랐어요.
보통의 판형보다 길쭉한 그 책은 손에 들어보면 들었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느낌이라서
놀랐습니다. 젊은 시절 책 만드는 일을 했던 지혜나무님에게 보여주니 그녀는 저보다 한층 즐거워하면서
종이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더라고요.

어제 밤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새벽에 일어나서도 아들이 학원 가는 새벽길 배웅하고, 이상하게 책에 신경이
쓰여서 (새벽에 영어로 씌인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은 참 오랫만의 일이로군요. 아직 몸이 깨지 않은
시간에 그런 일이 별로 없어서요) 바로 잠들게 되지 않네요.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라서 조금 더
조심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느낌이 들게 하는 것, 그것이 좋은 책이 갖고 있는 마력이 아닐까요?

젊은 시절 맹장염에 걸려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던 마티스에게 어머니가 소일거리로 건네 준 물감과 붓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하더군요. 한 번 그 마력에 빠지고 나니 벗어날 수가 없었노라고.


결과물로 놓고 보면 너무 간단해보이는 선으로 한 사람의 느낌을 이렇게 생생하게 살려 놓을 수 있는 !!
할 말을 잊게 만드는 능력이지요.

한 인간, 한 화가를 형성하는 것은 그 자신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물론 아니겠지요?
그가 파리로 가서 처음 간 아뜰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그 다음에 찾아 간 곳이 구스타브
모로가 운영하고 있던 화실인데, 그 때 루오도 그 곳의 학생이었다고요. 그는 구스타브 모로의 자유로운 방식의
가르침에서 크게 도움을 얻기도 하고, 세잔의 회고전에서 큰 자극을 받기도 하고, 앙드레 드랭등 앞으로
야슈파를 결성하게 될 친구들을 사귀게 되가도 하고 피사로에게서 영국 화가 터너의 그림을 보라는 권유를 받고
터너나 콘스타블의 그림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아나가기도 한다는 세세한 이야기들을 만났습니다.

물론 그림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책을 읽는 일은 그 나름의 장점이 있지요.
모르던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거나, 한 화가의 형성기에 대한 것을 읽으면서 한 시대가
그 시대의 다른 사람들이 한 화가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고, 그런 영향으로 형성된 화가가 다시 다른 동료들에게
어떻게 자극의 요인이 되는가, 개인적으로는 화가가 그 이전의 자신을 극복하거나 그 이전의 자신중에서
어떤 부분을 그대로 안고 가고 어떤 부분을 버리고 가는가에 대한 나름의 지도가 그려진다고 할까요?


그림을 보고 있자니 역시 미술관에 가고 싶어지네요. 그래도 아직은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몸이라서
그림속의 그녀처럼 일단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티스의 그림이 주는 유혹을 뿌리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