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금요일,원래는 오래전부터 약속한 캐드펠님이 사는 곳, 부천에 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급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약속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고 그렇다면 미루고 있던 로뎅 전시에 가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었답니다.
길담서원의 책여세라는 제목의 수요 모임이 있어요. 한 달에 두 번 모이는 책읽기 모임인데요
날짜가 도저히 맞지 않아서 가볼 수는 없지만 이런 책모임이라면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은
그런 모임이라서 그렇다면 온라인상으로라도 참여해야지 그렇게 마음먹고 있는 중인데
마침 그 모임의 이번 달 읽을 책 제목이 리영희의 대화입니다.
리영희 프리즘을 읽고 나서 이번에는 대화를 읽어보자 마음먹고 있었지만 늘 그렇듯이 다른 책에 밀려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이번 모임을 계기로 책을 빌렸는데 상당히 두꺼운 책인데도 손에 잡고 나니
다른 책을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아서 며칠째 대화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중이네요.
그러니 같은 시청앞이라도 시립미술관이 아니라 자연히 덕수궁 안의 현대 미술관으로 가게 됩니다.

대화속에는 한 개인의 인생 역정뿐만이 아니라 신문사 외신부에서 일했던 기자 리영희가 바라본 국제 정세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 안에서 만나는 베트남 전에 관한 진실, 입이 떡하니 벌어지게 만드는 이야기숲을
들락날락하다보니 바로 이 전시를 찾아서 가게 된 것이지요.


국립현대미술관과 싱가포르 국립 미술관이 합동으로 기획한 이 전시회는 아시아 10개국의 근,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겨레신문에서 소개하고 있더군요. 무슨 작품을 만날까
기대가 되지만 오랫만에 온 덕수궁에서 바로 미술관으로 들어가기엔 조금 아쉽겠지요? 카메라도
들고 갔는데..

사실 더 찍고 싶었던 것은 고운 색의 양산을 쓰고 이 꽃색깔 앞에서 감탄하고 계시던 두 명의 할머니였는데
차마 바로 앞에서 사진기를 들이댈 자신이 없어서 그녀들의 감탄이 머물고 있는 자리에서 꽃만 찍었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속에는 그녀들의 소리가 머물고 있는 사진인 셈이네요.
혼자서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른 전시실에서 건너온 사람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네요. 반가운 마음에 저도 합류해서 따라다니면서 우선은 전체적으로 한 번 설명을 듣고
다시 방마다 다니면서 그림을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면 혼자서 모르고 지나간 부분에 눈길이
가고,그림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는 잇점이 있지요. 물론 도슨트는 전 작품을 대상으로 해설하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작품에 대해선 스스로 도슨트의 눈이 되어서 들여다보게 되기도 하고요.
한국화가로는 김관호의 해질녘을 오랫만에 새로 보게 되었고, 이쾌대의 두 작품을 새롭게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고희동의 자화상도 오랫만에 보게 되네요. 이종구의 속 농자천하지대본과 오윤의 작품, 신학철의 작품도
인상깊었습니다.
다른 나라 화가 이름은 다 생소했지만 (이러니 우리들에게 미술이란 완전히 서구미술와 동의어였구나
그런 부끄러운 깨달음에 얼굴 붉힌 날이기도 했지요 ) 한 번 두 번 자꾸 보는 사이에 화가의 이름은 모르지만
마음속을 건드리는 다양한 이야기들속으로 몰입이 가능한 날이기도 했네요.

전시장내 촬영금지를 어겨본 적이 없었는데 금요일, 마음 굳게 먹고 몰래 카메라를 들이댄 사연은
이 그림이 대화에서 존경받는 지도자상으로 소개한 호치민의 모습이라서 였을까요?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고 주위를 살핀다음 카메라에 담게 된. 한 권의 책의 위력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다 보고 나서 일층으로 내려오니 도록을 소개하는 곳에 전시된 시대별 중요 작품이 걸려있네요.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이 그림들을 보았더라면 느낌이 어땠을지 모르지만 전시장에서 나와서 보니
확 끌리면서 내용을 다시 읽어보게 됩니다. 마치 영화 스틸을 볼 때 영화 보기 전과 보고 나서의 느낌이
다른 것과 유산한 경험이었겠지요?

전시장 밖으로 나오니 이 건물의 주두가 눈에 들어오네요. 무심코 드나들던 건물인데 요즘 건축사 공부를
해서 그럴까요?

한 공간안에 이렇게 주두를 달리 한 사연은 무엇일꼬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지금 덕수궁안은 1901년대의 모습으로 복원이 한창 진행중이더군요. 덕수궁에 관한 역사적 사연이
설명되어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평소에 다니지 않던 길을 골라서 가보았습니다.



사실 이 길을 나서면 광화문에서 오랫만에 만나는 친구가 있어서 조금 서둘러야 하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풍광이 펼쳐지고 있어서요.

혼자서 두꺼운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일까 궁금해서 살짝 들여다보니
아시아 리얼리즘 전시 도록이네요. 반가운 마음에 몰래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대화에서 시작하여 아시아 리얼리즘으로 끝난 덕수궁 나들이, 앞으로 동아시아의 역사, 그 과정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더 깊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 날, 한 권의 책이 촉발한 변화에
감사하면서, 혼자만이 아니라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길담 책여세 모임, 직접 참석이 어려우면
온라인상으로라도 함께 하자고 권하고 싶은 마음이 불끈 일어난 날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