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어떻게 그렇게 잘 쓰는가 하는 질문을 가끔 듣습니다. 혹은 일주일의 시간표를 제대로 알려달라
그 날 그 날 무슨 일을 하는가 궁금하다는 재미있는 요청을 받기도 하고요.
그런데 언젠가 제 동생이 제게 말을 하더군요. 언니,언니는 시간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할 일도 남에게
맡기고 하고 싶은 일만 하니까 시간을 잘 쓰는 것 아니야?
그 날 정신이 멍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시간을 잘 쓴다기 보다는 그렇게 쓸 수 있도록
나 대신 수고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그 날 이후로는 시간을 잘 쓴다는 말이 꼭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곤 해도 일반적으로 보면 시간을 잘 쓰는 편이긴 하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우선 버리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물론 이것이 하루 아침에 된 것은 아니고요
시행착오를 많이 거친 것인데 앞날 일에 대해서 걱정을 해도 소용이 없으니 지금 그 순간에 하는 일에
전념하고 그것을 즐기자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고 노력을 했지요.
하루에 해야 할 일이 여럿이어도 우선 그 일에 집중하고 그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즐기는 것
그리곤 그 다음에 그 시간에 대해선 잊어버리고 다른 일에 또 집중을 하고, 낮 시간에 꼭 조금이라도
잠을 잘 것, 그래야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기도 하고 기력을 회복해서 오후에 정말 중요한 아이들과의
수업에서 에너지 가득하게 출발할 수 있거든요.
무슨 일을 시작할 때 뜸들이지 않기, 예열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미리 지쳐버리는 경향이 있지요.
그래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라면 뜸들이지 않고 바로 하는 겁니다.
피아노를 연습하는 경우 옛날에는 시간이 넉넉해야 떡하니 자리잡고 연습을 시작했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 시간이 모자라면 아예 시작을 못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 마음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한 곡이라도 쳐보면 되지 않나,그러니 십분만 있어도
연습은 가능한 것이 되고, 그런 발상의 전환으로 하루에 피아노 바이올린 두 가지 악기 연습하는 일이
그다지 벅찬 일이 아니게 되는 즐거운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오전 수업이 끝나고 함께 밥을 먹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만약 이 시간이 한없이 길어지면 다음에
밥먹는 일이 아무래도 부담이 되겠지요? 그래서 어느 정도 놀면 이제 그만 하고 일어나는 버릇도 들였습니다.
흥을 깨는 것이 아닐까 처음에는 걱정을 했는데 그런 걱정으로 인해 다음 번에 다시 모이기 어렵다고 하면
그것이 더 불편한 일이 아닐까 싶어서요.
새로 공부하는 언어의 경우 책을 집에도 한 권 도서관에도 한 권 이렇게 분산해서 놓고 시간이 날때마다
뒤적여서 봅니다, 어느 날은 하루에 겨우 십분 정도 보는 날이 있다해도 그것이 양쪽에서 이럭 저럭 시간을
내서 보다보면 여기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저곳에서 다시 나오면서 아하 소리를 내게 되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공부하는 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읽는 것은 그렇다해도 일본어와 불어 듣는 것은 어떻게 처리하는가, 길거리에서 주로 듣고 다닙니다.
따로 시간내어서 듣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오고 가는 길, 혹은 멀리 가는 날은 조금 길게 잡고 복습도
하고요. 물론 기분이 내키지 않을 때는 다른 음악방송 틀어놓고 즐기기도 하고 아예 수면 삼매경에
빠지는 날도 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피로회복에 특효약이 되고요.
언제 사진 찍을 시간이 나는가 하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는데요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는 길
수업이 있을 때 조금 일찍 나서서 둘러보기, 혹은 음악회 가는 날, 역사모임인나 철학모임 있는 날
카메라를 들고 가다가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으면 멈추어 서게 되지요. 일부러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어도
조금만 부지런하면 (아니 그것보다는 사진에 홀리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 시간을 굳이 따로
못 내도 스스로 비집고 들어오는 시간을 발견하게 된답니다.
마지막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조금 먼저 해놓는 버릇을 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요
그것을 해결하고 나니 같은 일을 해도 상당히 한가로운 마음으로 그 일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벼락치기를 자제하는 것인데요, 학생도 아닌데 무슨 벼락치기냐고요?
아무래도 공부모임의 발제가 많다보니 읽어야 할 책이 많지요. 전날 시작하면 마음이 바빠서 제대로
그 책 읽기에 몰입이 불가능하고 공연히 짜증이 나기도 쉬우니 조금 일찍 시작하는 것, 그래서 그 과정을
통째로 즐기는 것, 그런 것이 쌓이고 쌓여서 대체로 하루에 다양한 일을 하면서도 별로 다급한 마음 없이
대부분의 과정에 몰입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갑자기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은 최근 여러 번 시간쓰기에 관해서 질문을 받으면서 저도 제 자신의 일상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고요, 수유너머 일본어가 방학이라서 조금 여유가 생겨서 바이올린 연습을 실제 연습해오라는
범위보다 조금 더 나가다가 드디어 G현을 소리내어보게 되면서 아하, 이것이 바로 하는 마음, 이렇게 조금
진도를 미리 연습해봄으로써 수업중에 훨씬 편한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여파이기도 하네요.몰라도 연습한 것 자체가 힘이 되어서 알아듣는 것도 빠르고, 반복하는 힘도 기를 여유도
생긴다는 것, 물론 말은 쉽지만 이런 과정이 절대로 한 번에 다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노력하다 보면
느슨하게 버리던 시간들을 주울 수 있고, 그것을 이용해서 조금 더 재미있는 일들을 해볼 수 있게 되니
해볼만한 작업이 아닐까 싶네요.
아니, 왜 그렇게까지 시간을 아껴서 살아야 하나, 생긴대로 느긋하게 사는 것이 좋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물론 있지요.그런데 그것은 또 그 사람 마음이니 무엇이라고 답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늘 시간이 모자라다고
느낀 제 나름의 고충에서 시간을 조각내서 쓰다보니 생긴 다양한 일들이 제 일상을 윤택하게 만드는 윤활유가
되어주고 있으니 제겐 이 방법이 맞는 것이 아닐까요?
아침의 화가는 뷔야르,,지금 본 화가는 보나르입니다. 두 사람은 물론 같은 유파의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지요.
나비파라고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나비야? 했지만 알고보니 히브리어로 선지자란 뜻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