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강남의 역사 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아침에 나가면서 보따리를 주렁 주렁 챙기게 되는 데요
제가 나눌 수 있는 것을 ( 그 이상의 것을 왜 나는 못 하나, 이런 자학적인 생각을 버리고 할 수 있는 것만
즐겁게 하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요즘 ) 챙겨들고 카메라도 챙겼습니다.
버스 타러 나가는 길, 관리실 아저씨의 등이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곳에서 수고하시는 분들로
인해 우리가 사는 삶이 훨씬 빛난다는 생각이 든 아침이었지요.


요즘 길거리에 나서면 우선 빛이 어떤가를 보는 묘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아네모 모임 첫 날 안나돌리님에게서
빛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나서는 그렇게 살피다가 빛과 그림자가 조화를 이룬 곳을 보면 저절로
카메라를 빼들게 된다는..
늘 활기 넘치는 역사 수업, 그리고 어제는 아템포님의 따님 취직 기념으로 맛 있는 점심을 얻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헤어져 저는 선릉에 가게 되었지요. 약속을 강남역 근처로 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오랫만에
선릉에서 맑은 기운아래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정한 약속 장소인데 참 오랫만에
들러보는 곳,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서 놀랐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 물론 세월의 흔적이나 세월의 힘이 강하지만 과연 세월만으로 사람을 잘 알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혼자서 선릉을 찍으려고 돌아다니면서
건진 몇 점의 사진입니다.


사람들은 서울이 삭막한 곳이라고 말하지만 제게 서울은 볼 거리도 만날 사람도 그리고 곳곳에 자리한
좋은 공간이 많은 곳이랍니다. 그래서 삭막한가 아닌가는 단순히 지리적인 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하지요.



다양한 형태로 모여서 이야기하거나 혼자서 앉아 있거나 졸고 있는 사람들,아예 벤취에 누워 있는 사람
기체조 처럼 몸을 움직여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 회사에서 잠시 빠져나와 담배 한 대 꼬나물고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은퇴한 노부부처럼 보이는 사람들,어딘가 수상한 기미를 풍기면서 야릇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 사람들, 그 안이 바로 한 사회를 축소해놓은 공간이란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더군요.



이 곳은 사람들만이 오는 곳이 아니야,사실은 우리가 이 곳의 주인이야 이렇게 뽐내듯이 다양한 포즈의
이 녀석들을 만날 수 있었던 날이기도 하지요.



아직도 카메라를 제대로 숙지하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지난 시간 그린님에게 배운 지식이 참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우리가 어떤 대상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조금씩 드러나는
새로움이 참 신기하구나 그런 느낌을 받은 날이기도 했네요.

선릉에 더 오래 있고 싶어도 약속이 있어서 광화문에 가야 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을 넘어서 뒷 공원길로
가다가 나를 보러 오라고 선전하는 음악회 이야기들에 눈길이 가서요.


약속한 선배랑 만나서 교보문고가 없으니 불편하다고 느끼면서 영풍문고까지 걸어가 보았지만 이상하게
그 곳은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라 무슨 책이 나왔는지 요즘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서로 이야기나누다가
몇 권 메모만 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책의 하단에 있는 각주를 글씨가 너무 자잘해서 못 읽게 되는 것
그것이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징표처럼 보여 가끔 서글프다는 이야기를 하니 좋은 확대경이 있다고
일본 사전의 후리가나를 볼 때 그 확대경을 이용하니 좋더라고 소개를 받기도 했네요. 그렇다면?

겨울 나그네를 들은 날, 오랫만에 만난 선배랑 그동안 밀린 수다를 마음껏 늘어놓고 헤어지고 나서
집에 오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야경모드가 생각나서 카메라를 돌려놓고 한 장 찍어보았습니다.
(그린님,감사,감사) 마음속의 장벽을 한꺼번에 다 들어낼 수는 없지만 하나씩 하나씩 부수다 보면
언젠가 훤해진 공간이 된 마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공연한 자신감이 생긴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