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수업이 끝나고 슈베르티아데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나서는 길
조주연씨가 보내준 메모에는 원래 12시까지 열지만 손님이 있으면 새벽 두시까지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무슨 곡을 들어볼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갔습니다.
제가 고른 두 장의 앨범은 호로비츠가 연주한 리스트,그리고 베토벤 첼로 소나타였는데요
역시 베토벤이구나 감탄하면서 소리에 귀기울이다가 함께 한 사람들과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다가
아무리 그래도 두시까지 젊은 주인장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서 첼로곡을 다 못 듣고 나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전 수업이 없는 금요일오전,제일 먼저 손에 잡히는 곡이 첼로였는데 이상하게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가
눈에 띄지 않아서 그렇다면 하고 카잘스의 곡들을 골라서 듣고 있는 중입니다.

카잘스곡을 들으면 공연히 손이 되는 화가가 제겐 마티스입니다.
사실은 어제 공부한 다비드의 그림도 더 보고 싶고,새로 읽기 시작한 재미있는 소설 빌라도의 아내 (성경에 나오는
바로 그 빌라도의 아내,역사 기록에 한 줄로 나온 이야기로 소설가는 한 권의 소설을 꾸렸더군요. 마침 아이들과
읽는 역사책도,수요일에 읽는 역사책도 로마시대를 읽게 되어서 빌린 소설인데 이야기가 바로 빌라도가
로마총독으로 온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주인공이 어린 시절,이모인 아그리피나 -아우구스투스의
손녀이자 게르마니쿠스의 부인인-와 게르마니쿠스 군단의 장군인 아버지와 더불어 갈리아에서 게르마니아로
그리고 로마로,그 다음에 티베리우스 황제의 견제로 게르마니쿠스를 따라서 로마제국의 여러 진영으로 다니고
있는 이야기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중이라 그리스,로마시대의 작품도 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음악의 힘이 더 강한 것일까,역시 마티스지 하고 골라서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제 오전 수업을 끝내고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사실 주부들의 모임에서 주로 본론에서 곁가지로 빠져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도서관의 수업이나 다른 모임에서도 그런 일이 별로 없어서 어떻게 보면 드라이한 수업이라고 보여지기
쉽다는 것을 어제 알게 되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먹고 난 이후 오고 간 이야기속에서 사람을 안다는 것은 마치 양파속을 벗기는 것처럼
한 번 다르고 또 한 번 다르고 그래서 정말 재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날,앞으로는 수업중에
다른 이야기속으로 빠지는 일은 어렵겠지만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개인적인 이야기,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것,지금 고민하고 있거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서로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날이기도 했지요.

다른 재주는 없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배우고 싶다거나 알고 싶다는 기분을 갖게 하는 일에는
열심이라서 어제도 일본어를 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었는데요 함께 밥을 먹은 사람중 두 명이 이학기때부터는
합류해서 함께 해보고 싶노라고 아주 수줍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사실 이미 시작한 사람들과의 차이라는 것은 각오를 하고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우리들은 기존의 모임에 들어가면서 바로 적응하려고 하기 때문에 마음속이 복잡하고
비교에서 생기는 어려움에 지레 겁먹고 도망나오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그러니 그것만 마음에 새기고
천천히 하면 된다고 마음을 담아서 이야기했는데 아마 그 마음이 통한 것같아서 공연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금요일 아침,설겆이 마치고 뜨거운 커피 한 잔 들고 컴퓨터를 켜니 쪽지가 왔다고 소리가 나네요.
들어가보니 웬디님이 다음 금요일 강남모임에 친구랑 함께 참석해보고 싶노라고 보낸 메모였습니다.
그녀도 그녀지만 그녀의 친구가 불어에 관심이 있어서 바벨의 도서관을 소개해주고,덕분에 다른 모임에도
함께 와보고 싶다고 한다고요.불어를 시작한지 아직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아도 그동안 집중해서 노력했더니
어느 날 글씨가 조금씩 글씨에서 벗어나 소리도,의미도 눈에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라
불어에 관심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에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를 하게 됩니다.

고3인 아들이 입시를 마치고 새로운 세계로 떠나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제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 어려우니
좋아하는 공부를 실컷 하면서 이 시기를 즐겁게 보내고,새로운 일,새로운 관심사는 내년부터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그랬더니 가까운 곳이라도 훌쩍 떠나서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생활에도 별 불만이 없이
잘 지낼 수 있게 되는군요.아들의 여름방학도 이미 끝났고 지금부터 일요일빼고는 매일 학교에 간답니다.
그래? 어차피 휴가는 겨울에만 쓰던 것이니,별로 새로울 것은 없지만 여름에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숙제로 남은 셈이군요.이왕 하는 일 기분좋게 해야하겠지요?

카잘스의 소리를 듣다가 어제 밤 듣던 베토벤의 첼로소나타 소리가 생각납니다.
아무래도 더 좋은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던 깊은 소리를 떠올리게 되는데,이번에는 혼자서 꼭 제대로 들어보고
싶은 음반을 챙겨서 슈베르티아데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잠시 쉬면서 빌라도의 아내를 따라 로마를 여행하는 시간,그런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