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올빼미처럼 생활하다가 갑자기 밤 한시정도가 되면 졸음이 쏟아지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연히 새벽 6시 아들을 깨우기 위해 일어나면 몸이 덩달아 깨어버려서 다시 잠들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그 시간에 무슨 일을 하기엔 적응이 되지 않아서 괴로운 시간,그렇게 한 두 주일 지나다보니
기분이 가라앉기도 하고,뭐랄까 생활리듬이 깨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일정정도 시간이 지나니 그 리듬에 몸이 적응을 조금씩 하게 되는 것을 보니 신기하네요.
몸의 적응력이라..
수요일 아이들과 읽는 영어역사책 모임이 끝나고 잠깐 집에 와서 쉴 수 있는 시간
everymonth에 올라온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으면서 오랫만에 그림을 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오늘 고른 화가는 미로인데요,아마 마음속에서 겨울 여행지를 어디로 해야 하나 갈등하는 상황이라서
(바르셀로나,프랑스 남부 이런 코스로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마음에 품고 있는지 오래지만 아직도 실천하지
못하는 코스와 로마를 잠깐 들렀다가 베니스,피렌체,그리고 아시시를 들러보는 코스,이 둘중에서
보람이가 선택한 것은 이탈리아인데,아무래도 미련이 남는 바르셀로나,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미로의
그림을 고른 것일까 혼자서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유로가 많이 올라서 여행을 망서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집을 살 때 제 도움을 받았던 여동생이 선뜻
이번 여행경비를 대주겠노라고 말을 하더군요,한편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한편으로는 언니가 주는
것이라면 고맙다고 얼른 받겠지만 그래도 동생에게 받는 것은 조금 쑥쓰럽기도 하고 고민을 많이 하다가
그냥 기쁜 마음으로 받아서 여행을 가기로 정했습니다.
아무래도 6년간 계속 고등학생의 엄마노릇하느라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일로 지쳐있으니 (사실은
이전에 도시락을 싸던 세대의 엄마들에 비하면 세 발의 피에 불과한 일이지만 일을 하는 저로서는
새벽에 매일 일어나는 일만으로도 참 힘든 시간들이었거든요)

사실 여행은 실제 그 장소에 가는 것 그것도 좋지만 가기 전에 이것 저것 정보를 찾아보면서 무엇을 볼까
그 곳에서 무슨 역사의 흔적을 만날까 공상하는 것,그리고 실제로는 상상과 다른 여행이 되는 것
돌아와서 무엇과 다시 만날까,그런 것들이 주는 매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지요.
오늘 수요일 아침수업을 하다가 서고트족들이 스페인으로 건너가서 그 곳의 지배세력이 되는 것
그리고 그들이 결국 이슬람에 패해서 물러나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던 중
스페인에 갔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간에서 서고트족의 유물을 만났던 날,역사책속에서 글씨에 불과하던
나라를 새롭게 인식하던 날의 놀라움이 떠올라서 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야만족처럼 한 묶음으로 이야기되고 마는 책과는 달리 이번 지중해 문명사에는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가
되어서 엉성하던 코안으로 조금씩 살을 덧붙여가는 기분이 들기도 하네요.

여행도 인생과 마찬가지로 막상 뚜껑을 열면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다는 것,그 곳이 어디여도 그 곳에서
만나는 새로움이 있다는 것,그리고 돌아오면 그래도 집이 최고지 라고 생각하다가,시간이 지나면
또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소망을 지니고 뒤적거리게 되는 그 싸이클이 재미있게 느껴지네요.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을 찾아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가 실타래가 되어 풀려가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바뀌는 생체리듬에 조금은 적응이 된 것 같아서 기운을 차리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