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학교에서 독감 환자가 속출하더니 저희 딸도 기침 감기로 며칠 학교를 쉬었어요.
더운 나라에서도 할 건 다 해요.
생강을 2킬로 사서 남편이랑 쭈그리고 앉아서 다듬고 껍질을 벗기고 갈아서 계속 저어 주며 내내 끓여요.
대추, 말린 레몬, 계피 등등 좋아 뵈는 것들도 같이 때려 넣었습니다.
다 된 생강청으로 차를 한잔 마셨더니 배 속이 후끈한 거이 몸에 좋다는 느낌이 절로 듭니다.
완성할 즈음엔 딸 감기는 다 나았고
남편이 해장용으로 매일 아침 장복 중이에요.
남편은 계획이 다 있어요?
동생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어요.
아빠 엄마를 초대해서 제부 지인이 올려 보낸 막회에 소주를 한잔 했다고 해요.
- 아빠가 막회를 그렇게 좋아하시는 줄 몰랐다니까. 접시가 아빠 쪽만 훅 파인 거 있지?
달랑 딸 둘인데 제가 없으니 혼자 수고가 많은 마이 시스터.
- 멸치 다시에 시금치랑 냉이 넣고 국을 끓였거든?
아빠가 한 입 드시더니, 완전 할머니가 해 주시던 맛이라고 감격하는 거야.
- 웬욜? 아빠가 그런 얘길 다 하셔?
- 어! 근데 엄마가 먹어 보더니 내가 끓인 거랑 똑같구만 뭔 소리냐고. 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못살아 진짜.
할머니의 시금치 된장국 맛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빠가 그 순간 얼마나 기가 막히셨을지는 알 거 같아요.
제가 누굴 닮아 이날 이때 정신승리 하나로 버텨 왔는지도 알 거 같고요.
동생이 굴전 반죽에 청양고추를 쪼사 넣으면 안 물리고 좋다고 알려 줬어요.
맛있긴 한데
굴전이 느끼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요긴한 방법인 거 같아요.
없는 굴을 쪼개 무침을 만들고 전을 부치는 사람이 굴전이 어찌 느끼하겠어요.
어쨌든 굴전과 굴무침과 차돌박이로
제게는 무척 호사스러운 술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곰솥 러버 저희 엄마에게도 필생의 비기가 하나 있어요.
그 어렵다는 파무침!
이게 웬 장어!
사랑하는 동네 언니가 한국에서 주문한 장어를 제 생각이 나서 맡겼다고 하셔요.
먹어서 맛이 아니고
받아서 맛이죠.
다정한 말 한 마디
어깨에 두른 격려의 팔
따뜻하게 다 안다고 바라보는 눈빛
이런 마음들 덕분에
가끔 치밀어 오르는 해외 살이의 울컥함도 잊혀집니다.
집게를 잡은 남편 손이 신명이 났어요.
껍질부터 조심조심 구워 보는데
뭔가 영 성에 안 차는 거 같더니
석쇠 대령!
그냥 장어 아니고
사랑을 담은 장어니까 대충 먹을 수가 없어요.
세상에
얼마나 촉촉하고 고소하고 쫄깃한지.
먹으면서 침침하던 눈이 점점 밝아지고
소주를 마시는데 깨는 느낌이에요.
장어를 처음 먹어본 딸은
생선인데 삼겹살 맛이 난다며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날립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장어를 배가 터질 때까지 먹다니.
살아 있기를 참 잘한 거 같아요.
집안이 장어 굽는 냄새랑 연기로 가득했는데
다음날까지 안 빠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유튜버 썰맨의 열렬한 팬인 어느 분이
짬뽕을 해 준다며
이것저것 재료를 주문했어요.
새우 조개 청경채까지는 사 놨는데
숙주를 깜빡했어요.
썰맨 아저씨가 내내 강조하던 말이
"짬뽕은 육수 맛이 아닙니다.
조미료 맛입니다."
오 제 요리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요?
남편은 짬뽕의 금과옥조를 간과하였으므로
밖에서 사먹는 맛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였습니다.
그냥 해물탕라고 생각하며 열린 마음으로 먹었어요.
남편에게 장 보라고 부탁했더니
육쪽이 아니라 육십쪽 마늘을 사 왔어요.
하아.
나 좀 편하게 살게 해 주기가 그리 어렵나.
마늘을 깔 때마다
마음수련하는 기분이에요.
아몬드랑 크기 비교.
진짜 잣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