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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제 목 :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는 국(별거 아니오)

| 조회수 : 13,257 | 추천수 : 9
작성일 : 2019-01-12 08:25:08
제목이 꼬리하네요.
한참 책 좀 보던 젊은 처자였을때, 염세주의에 빠져
쇼펜하우어 책을 끼고 살고,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을 틀어놓고깜깜한 방에 앉아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던 시절에...

가끔 엄마가 끓여내던 우거지 국이 싫어서 밥숟갈을 내려 놓으면 좀 먹고 가라고 사정하시다 '썩을노무 가시내가 아침부터 지미 속을 쑤실래? 한숟갈이라도 뜨고 가야 뱃속이 따셔서 공부를 헐것 아녀! 빈속에 뭔 공부가 되겄냐. 긍게 쫌만 먹자' 하셨죠.
기어이 입 내밀고 안먹고
나가는 뒷통수에 대고 '저노무 가시내, 시집가서 저 같은 딸 낳아서 켜봐야 내 속을 알지. 모르겄다, 배고파 디지든지 말든지'

그렇잖아도 짜증나는 날들인데 모든게 엄마 탓처럼 소리를 빽 지르고 좋다고 따라오는 백구에게 저리 가라고 악을 한번 써주고 대문을 있는대로 쾅 닫고 집을 나오곤 했죠.
왜 그랬을까요?

며칠전 감기로 몸살로 힘이 드는데, 전날 물에 담궈둔 김장김치를 꺼내 듬성듬성 썰어 멸치육수 내고, 청양고추도 다져서
넣고 된장에 조물조물 해서 끓이다 들깨가루 풀고 대파 한줌 집어 넣고 끓여서 밥 없이 두그릇을 먹었어요.

아! 살겠다. 기운이 나네... 혼잣말을 하면서 일어났어요.
가끔은 사람의 위로보다 음식이 나를 달래 줍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자식이 농담처럼 하는 말에도 기분이 상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수시로 엄마에게 제 짜증을 풀곤 했는데 그때 참 속상하셨겠다 싶어요.

울 엄마가 늘 너같은 딸 낳으라고 악담을 하셨지만 전 딸이 없어요. 그런데 아들만 아들만 아들만...
오늘도 학원 나가는 막내 붙들고 삼겹살 구워줘? 닭날개 조림 줄까? 간장달걀밥 해줄까 물어도 눈 내리깔고 고개만 흔들고 나가네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라도 먹고 들어가라고 답도 없이 나가는 놈 뒤에 대고... 너도 장가가서 너같은 아들 낳아라 하려다가 말았어요.

키톡이 자게인줄...
죄송함다

2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꽃소
    '19.1.12 10:36 AM

    역시 글 좀 읽으신 분 같습니다. ^^
    사진이 없어도 너무 생생해서 굶고 학교가는 원글님 등뒤로 식어가는 우거지국이 보이는거 같아요.
    저도 사춘기를 겪는 딸아이를 보며 그시절 엄마에게 못되게 굴던 제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괴로운 이중고를 겪고 있어요.
    글 읽다가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울컥합니다.

  • anabim
    '19.1.12 1:28 PM

    다행히도 우리 엄마는 제 까칠을 기억하지 못하시네요. 제 여동생은 더 심했거든요.
    여동생 키울때 힘든 기억은 날을 새고 해도 모자란다시는데, 동생도 아들만 둘!!!
    엄마에게 지은 죄를 아들로 받았다고 우리끼리 웃어요.

  • 2. 후니밍구맘
    '19.1.12 10:41 AM

    원글님 저예요?
    씽크로율 백프로 우리엄마도..
    거기에 아들만 아들만까지 똑같아요..ㅜㅜ
    김장하러 친정갔더니 엄마가 무청 시래기 먹기좋게 잘라
    된장,버섯,땡초까지 버무려 우리식구 딱 한끼 분량씩 소분해서 주셨는데 물만 붓고 끓여 먹으라고..완전 맛있어서 먹다가 울컥울컥.
    예전엔 왜그리 소가지?를 부려댔는지 모르겠어요

  • anabim
    '19.1.12 1:32 PM

    언젠가 엄마가 폭폭하다며 넘의집 새끼들은 안멕여줘서 걱정인디 울집 새끼들은 하나같이 웬수라고 하셨어요.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야 겠어요.

  • 3. 쑥과마눌
    '19.1.12 10:43 AM

    아~놔~눙물이..ㅠㅠ
    딸 없이, 아들만..아들만..아들만..부분에선 콧물까지 ㅠㅠ

    와락~동지여~
    대중소 세 놈 키우면서, 제일 힘든 놈 있지요.
    새도 아닌데, 잘 울고, 비위도 약하고, 입도 짧고, 쉽게 넘어가는 거 하나 없는 놈

    그 놈한테 바닥에 깔구는 내 자존심
    소시적 시퍼랬던 그 자존심
    아들 놈한테 내려놓는 것의 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만 접었으면,
    진쫘로 쉽게 살았을 일생일텐데

    어느날, 너무도 노하여, 외쳤다죠
    너도 너 같은 아들 한번 낳아 봐라..그러다, 급 다시 정정하였다오
    아냐..아냐..취소..그라믄, 니가 너무 힘들끼다.
    넌 너 같은 아들 낳지마라..ㅠㅠ 나 하나로 족하다..ㅠㅠ

    그 다음부터 친정엄니께 말합니다.
    그래도 괜찮은 딸이였으니께, 니 닮은 딸..낳으라 외쳤던 겨..라고,
    쿨하신 엄니께서 답하셨다죠. 인정~어~인정~

    수필같은 좋은 글 잘 읽었고요. 자게 아니라도 키톡에 어울릴 글입니다. 감사^^

  • anabim
    '19.1.12 1:37 PM

    줌인줌의 스타께서... 감사합니다.
    쑥님 사설이 원작보다 낫기에 늘 챙겨보며 어쩜 이리 글을 잘쓰시나 감탄하고, 등단시인 아니신가 생각합니다

  • 4. 백김치
    '19.1.12 1:03 PM

    밥 없이 두 그릇~
    얼마나 맛나고 션했을지~!♡
    때로
    그 무엇 보다 음식이 영혼을 달래줄 때가 있는 것
    공감 백배로소이다~^^

  • anabim
    '19.1.12 1:39 PM

    나이들수록 엄마가 드시던 맛없는 음식이 맛있는지 모르겠어요. 울 아이들 질색하는데 갸들도 늙으면 그립겠지요?

  • 5. 백만순이
    '19.1.12 1:17 PM

    아~ 드라마 한장면 보는듯해요!
    저도 너같은 아들 낳아라!를 꿀꺽 삼키고 로민가서 얘기해요ㅋㅋㅋㅋ
    그러다 어느날 꿀꺽이 잘 안되는날은...............너니까 참아! 너니까 맞춰! 세상 아무도, 니아빠한테도 이렇게는 못해! 너라서 해!로 나머지말을 대신합니다

  • anabim
    '19.1.12 1:44 PM

    어제 제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 보니 로민에서 커피를 마실 때더군요.
    햇살 좋은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면 어찌나 행복한지, 백만순이님 처럼 따뜻하게 음식 사진 한번 찍어보고 싶네요.
    군대가면 효도하고, 제대하면 사나흘 효도하고 끝이지만 그래도 예뻐요. 무거운거 불끈 들어주고..
    로민에서 한번 만나지기를 고대합니다

  • 6. 해피코코
    '19.1.12 6:16 PM

    하아.. 저도 아들만 아들만...
    감기가 들거나 마음이 부대낄 때 김치 된장 멸치육수 청양고추 넣어 시원하게 먹으면 기운이 나지요. 진정한 소울프드♡
    좋은 글 감사합니다.

  • anabim
    '19.1.12 10:00 PM

    울 엄마가 전화만 하면 첫마디가 밥 먹었냐?가 인사예요. 밥 빼곤 할 말이 없는것 처럼.
    저는 칼칼한 국은 청양고추를 다지듯 썰어서 넣어요. 더 매운 것 같아요.

  • 7. 라떼
    '19.1.12 7:54 PM

    해외살이중에 김치를 못담그니
    비싼 종가집 김치 사다 아껴아껴 먹어요.
    그러다 진짜 열나고 입맛 없으면
    고기만큼 비싼 그 김치를 물에 헹궈서
    된장 들기름 넣고 지져먹으면 좀 살아난답니다.
    저도 까칠 지랄맞은 성격에
    맨날 너같은 딸 낳으라는 얘기 들었는데
    아들, 아들 이네요. ㅎㅎ

  • anabim
    '19.1.12 10:09 PM

    아는 분이 페루 오지에 살때, 리마에서 김치를 담궈 파시는 분께 주문해서 받았는데 오면서 익는 바람에 비닐이 팽창해서 터질것 같은 상태로 받았대요.
    우체국으로 찾아가니 조심조심 해서 얼른 가지고 나가라고 소리지르더래요.
    터진다고 생각하고요.
    그걸 받아서 돌아와 먹는데 미친듯 눈물이 나더래요. 그날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싶어 엉엉 울었는데 그 와중에도 김치는 어찌나 맛있던지 먹음서 울면서 했대요.
    가까우면 한통 드리련마는...

  • 8. 고고
    '19.1.12 9:00 PM

    저는 울엄니가 안목이 있으셨나 봅니다.

    거리구신이 들린 년이라고만 욕을 쳐들었습니다. ㅎㅎㅎ

    무자식이나 보살리는 아새끼들이 셋 있습니다.

    사교욱비 안 들어가고

    반찬 투정 안하고

    하루 두 끼 같은 밥과 간식을 줘도 꼬리 흔들며 잘 먹고

    하루 20시간 자빠져 자고 ㅎㅎㅎ

  • anabim
    '19.1.12 10:26 PM

    거리구신은 또 뭐시다요?
    평화로운 풍경이 좋아 보여요.
    2019년엔 다 잘되시길...
    고고님이랑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것 같아요.


    제 엄마는 결혼전 제 남편에게 다른건 괜찮은데 찍소같아서 말을 안한다고 일렀어요.

    나는 미리 알려줬응께 살다가 도로 데꾸가라등가 이러지말어. 암때나 그렁게 아니고, 부야가 나면 입을 안열어. 저노무 가시나랑 살라면 한번씩 복장이 터질것여.
    자네가 예쁜딸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때 내가 속으로 클났네, 저거 승질을 아직 모르는개벼 했네...
    그 뭐시냐, 난 미리 알렸응께 알아서혀.

    가끔 남편이 장모님 머리 겁나게 좋으시다고 해요.
    사전고지라서 반품도 안된다고요.

    그런데 더 웃긴건 저희 시어머니도 제 손을 꼭 잡고 그러셨어요.
    쟈가 다른건 다 좋은디 기분이 상허믄 말을 안혀. 내가 별짓을 다해봤는디도 못고쳤어야. 니가 고쳐살등가, 애미 말은 안들어도 각시 말은 듣겄지야...

    그런데 아직 못고쳤습니다. 그냥 과묵하다 라고 포장해서 삽니다

  • 9. 딸기연아
    '19.1.13 9:53 AM

    제가 좀 그랬어요... 꼭 너같은 딸 낳으랬는데 저보다 더한 아들내미를 낳았네요;;; 그래도 제가요 저희 아들놈에게 그래요 난 내 아들 고생하는거 싫으니 넌 말 잘듣고 암거나 잘먹는 아들 놓으라고요^^
    울 아들놈은 엄마아빠처럼 자식한테 공들일 자신이 없어서 많이 생각해보고 놓을란다 하네요

    반전은 울 엄마 음식은 예전에도 지금도 진짜진짜 맛이 없어서 하나도 안그립고 아직도 입짧은 제가 잘 못 먹습니다요

    다행히 전 음식 솜씨가 장금이급인 외할머니가 키워주셔서 지금도 외할머니 음식이 너무 그리워요..
    문제는 입맛은 까탈스럽고 짧은디 솜씨는 울 엄니보다 좀 낫다는 거죠 뭐...
    해서 입짧은 울 아들 놈이 안쓰럽고 안되어 보여요..

    그래도 대학가서 일년 외지 생활하더니 엄마집밥 맛있다는거 보면 50다되어도 엄마집밥 못먹는 나보단 나은가 싶어 다행이예요^^

  • 10. 초록하늘
    '19.1.13 3:06 PM

    아이고 어머니 제 옆에서 말씀하시는 줄...

    그르게요.
    돌아보면 별것도 아녔는데
    아침부터 승질부려서
    엄마 속 긁고
    집에 가서도 미안하면서
    괜히 쌩하게 굴고...
    자식 낳고 나서 키우면서
    울 엄마가 그때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싶고...

    그래서 저는
    자식놈들 아침에 못되게 하고 나가면
    오후에 꼭 사과 받습니다. ㅎㅎ

  • 11. 눈대중
    '19.1.13 8:36 PM

    저도 그렇게 염세주의에 빠져 온갖 염세왕들의 소설을 끼고 울고 불고 난리를 쳤지만,
    뱃고동은 어찌나 삼시세끼를 원하던지, 전 진정한 염세주의자가 아니었나봅니다. ㅋㅋㅋ
    저도 감기 몸살로 겨우 살아나서 이제 대기업에서 만들어주신 황태해장국이나 한사발 할까 생각중이네요.ㅋ

  • 12. 테디베어
    '19.1.14 9:07 AM

    오~ 영혼을 깨워주는 엄마표 음식이 최고인 줄 나이가 들어가니 알겠습니다.
    수필 한조각을 먹은 듯 멋진 글입니다.

  • 13. 쑥S러움
    '19.1.15 1:17 PM

    글 좀 쓰신 분이시네요 ^^

    사진이 없는데도 왜 국사진을 보고 옆에서 먹은 듯한 기분이 드는건지...

  • 14. 예쁜솔
    '19.1.17 2:21 AM

    우거지 된장국과 철이 들어가는게
    어떤 상관 관계가 있을까요...
    어릴 때는 쳐다보기도 싫었던 그 음식이
    왜 영혼의 소울푸드가 되이 있는지...
    나가 살다 몇 달에 한 번 오는 막내 딸
    꼬기 반찬 없으면 밥술도 안뜨던 애가
    어느날 엄마 우거지 된장국이 먹고 싶어...하는데
    내가 눈물이 핑~하는건 또 무슨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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