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번 어린이날이 제게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혼자 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많은 음식을 준비했거든요.




진짜, 아쉬움이 많네요.
저는 상차릴때 소세지 두 번 죽이느라고 구석에서 바빠서 신경 못 썼더니 너무 안 이쁜 상차림이 되어 버렸어요.
사진도 다들 정신없어서 별로 못 찍고.
그날 아이들이 풍선 머리띠 하고 정말 좋아했는데.
'꿈틀이'라는 이름이 썬팅된 정발산동 다세대 주택의 1층.
약간 낡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두 분의 선생님과 스무명 가량의 아이들.
고양시 민우회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 '꿈틀이'는 언젠가 나비가 되어 날개를 펼 아이들의 공간입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언니가 (학교 다닐 때 어찌나 자주 놀러갔는지, 그리고 지금도 자주 만나서 그집에서는 저를 2-1이라 불러요. 제 친구가 둘째거든요. 그리고 3은 2가 2-1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한답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교실에서 상근자로 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원래 훌륭한 언니였으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우연히 지나는 길에 꿈틀이에 놀러갔다가 아이들을 만나보고 나서 꿈틀이는 제게도 의미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자원봉사자가 부족해서 30개월짜리 말썽꾸러기가 딸린 제가 일주일에 한번씩 잠깐 도와드리기로 했는데
어린이날 메뉴 아이디어 좀 내보라고 해서 이것저것 82히트 메뉴를 읊었더니 모두들 눈을 빛내시며
저를 보고 씨익 웃으시더군요.
그래서 메뉴는
유부초밥 (당근,양파,우엉조림,표고버섯,잔새우 다져넣어서 속을 풍성하게 만들었더니 맛있었대요.)
칠리새우 (스위트 칠리 소스에 두반장이랑 토마토, 케첩섞어서 애들 입맛에 맞았는지 좋아했어요.)
닭강정 (원래 데리야끼치킨을 하려고 한 건데 튀길 엄두가 안 나서 그냥 삶아서 조렸어요. 간은 맞았는데 살이 좀 부서졌네요.)
과일꼬치 (여자아이들이 많아서 뭔가 좀 예쁜 것을 하고 싶었는데 머릿속의 비주얼과는 영 다른 결과물)
컵케잌 (예쁜 케잌 스탠드만 하나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그런데 이거 짜는 동안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던지요)
미니 핫도그 (기증받은 튀김기가 있어서 거기다 튀겼고, 속에는 소세지 대신 생협 치즈 스틱이 들어갔어요.)
식혜 한 잔씩.
82회원분 중에 몇 분만 있었어도 정말 멋진 상차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늘상 그렇듯이 차릴 땐 많은 것 같은데 차려 놓으면 초라하지요.
그래도 음식 남는 거 없이 잘 팔려나갔답니다.
아이들 사진이 별로 없어서 지난 3월 개소식 때 노래하는 거 보여드릴게요.


이 날 메뉴는 짜장밥이었네요.

주방은 이렇게 생겼어요. 이제 김치 냉장고도 들어오고 점점 살림이 늘고 있습니다.
(제 사진은 아니에요. 날씬한 자원봉사 선생님이시네요.)
아이들은 대부분 생활보호대상자구요, 형편이 어렵다지만 얼굴은 늘 밝습니다.
학교 끝나고 달려와서 인사하고 숙제 하고 놀다가 3시쯤 간식 먹고 그날그날 간단한 수업하고 6시에 저녁먹고 집에 돌아가는,
대부분 가정의 아이들 일과가 진행되는 이 공간을 아이들도 편안하게 느끼나 봅니다.
자원봉사자 분들이 대략 2시간 정도 식사 준비 해주고 가시면 6시경에 저녁 준비해서 먹이는데
예를 들면 지난 수요일 메뉴는 순두부찌개, 율무밥, 오이무침, 버섯 볶음 이었는데
현미가 반 넘게 섞인 잡곡밥을 아주 잘 먹습니다.
자기들끼리 식사 당번 정해서 상도 닦고, 수저도 놓고, 행주질도 어설프게 하고 꼭 먹은 그릇 씽크대에 갖다 놓구요.
아주 이뻐요.
이제 문 연지 두 달인데도 아이들이 밝아지고 잘 웃게 되었다는 말씀을 학부모님들이 많이 하십니다.
저희가 봐도 아이들 식습관 정말 좋아졌거든요.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민우회 생협의 유기농 재료들을 주문해서 급식을 한다는 것이구요.
1학년에서 6학년까지이지만 3,4학년이 제일 많아요.
어린이날, 사회복지학과 실습나온 선생님들이 풍선으로 머리띠랑 사과랑 만들어주시고, 구슬로 목걸이 만들기도 하고,
유기농면인형 수입하시는 분이 기증하신 인형 하나씩 선물받고
아이들 너무 행복해했어요. 이번 주에도 몇 번 얘기하더라구요.
언젠가 이 아이들이 자신의 날개로 세상에 나갈 때 이 기억들이 조그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